[세정칼럼] 심재형 (NTN 주필)
지난 5일 서울 삼성동 소재 코엑스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된 금년도 납세자의 날 기념식도 예년처럼 성대히 치러졌다. 모범· 성실납세기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훈· 포장 등이 서훈되어 잔칫날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단상· 단하 납세자들의 표정도 이날만은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허기야 납세자를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세상이니 찡그릴 이유도 없었을 게다. 정부당국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가 하면 국세당국은 ‘따뜻한 세정’ 구현을 국세행정의 제1덕목으로 삼고 있는 터다.
납세자들의 오금을 시리게 한다는 세무조사에 있어서도 ‘조사 연장을 받지 않을 권리’마저 부여돼 있는 요즘이다. ‘납세자 권리 헌장’에 그렇게 명문화 되어 있다. 납세자들에겐 참으로 살맛나는 세상이며 금석지감(今昔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오늘이다.
잔치도 좋지만 납세자 권익부터…
지금의 납세자의 날은 원래가 ‘세금의 날’로 출발했다. 그러니까 1967년 전통적인 권위주의적 세정에서 탈피, 국민의 성실납세에 대한 감사와 함께 건전한 납세의식 고양을 위해 매년 3월 3일을 ‘세금의 날’로 선포한 것이다.
그러다가 1973년 세금의 날과 ‘관세의 날’을 일원화, ‘조세의 날’로 개칭되더니 2000년부터인가 다시 ‘납세자의 날’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이다. 제1회 때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에서 참으로 성대하게 기념식을 치렀다.
아마도 4회 때까지 대통령이 직접 참석함으로서 수상자들의 긍지와 보람을 한껏 심어줬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납세자의 날’이 올해로 41회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 매년 납세자의 날을 맞을 때 마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의 감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웬일일까.
이 날의 주인공인 납세자들이나 세정가 모두의 감회가 해가 갈수록 별로 인 것 같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다. 상(賞)을 받는 납세기업들도 그다지 달가워하질 않는다는 것이 일선 관계자들의 말이다. 서로가 상을 타려고 선의의 로비를 펼치던 과거의 분위기는 이제 옛말이다.
稅心에 멍이 들면 百藥이 無效
납세자들의 일반적인 정서는 거창한 외양적 우대 보다는 ‘단 한 건의 소중한 권리구제’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1년에 한번 잔치를 해 주는 것도 좋다마는 납세자 권리구제에 보다 신경을 써 주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과세행정이라는 것은 태생적으로 아전인수 성격이 강한데다가 세법해석 마저 기기묘묘하니 억울한 납세자 발생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잘못된 과세에 대해 자체시정이 인색한 현실에서 ‘납세자의 날’은 공허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요즘 TV 개그프로에서 유행하는 말처럼 “납세자의 날이, 납세자의 날다워야, 납세자의 날이지…”라는 우스개 말로 이 날의 의미를 풍자하는 납세자들도 있다.
납세자 권리 보호가 아직은 일천한 현실에서 떠들썩한 행사는 마치 ‘립 서비스’처럼 여겨진다는 얘기다. 세심(稅心)에 멍이 들면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런 관점에서 이제껏 내려오던 ‘조세의 날’ 명칭을 ‘납세자의 날’로 바꾼 것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느낀다. ‘조세’라는 신성한 주체가 ‘납세자의 날’이라는 이벤트성(?) 행사에 가려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납세자의 잔칫날을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조세라는 주체를 놓고 정부와 납세국민 모두가 한번쯤 생각을 해보는 그런 ‘날’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납세자의 날’ 이대로 좋은가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의 납세의식 제고라는 미래의 세원배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이며 납세국민은 그들대로 세금이 공동사회의 공동비용이라는 평범한 이치를 되새기는 그런 날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이 날의 행사가 격조(格調)있는 장(場)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해가 바뀌면 기계적으로 치러지는 ‘연례행사’라면 이 날의 의미가 너무 아깝다. 정부도 납세자의 날을 너무 안이하게 운영 할 것이 아니라 조세에 대한 국민의식 고취 차원에서 그 득·실을 따져 봐야 한다. ‘납세자의 날’, 이대로 좋은가.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볼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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