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논설위원
큰 눈덩이가 작은 눈덩이보다 구를수록 더 빨리 덩치가 커지는 이치처럼 부와 소득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우리는 경제학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안다.
이런 현상을 두고 1968년에 컬럼비아 대학교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 교수는 마태복음을 인용하여 소위 ‘마태효과’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사회학적으로나 경제학적으로 볼 때 선취한 우위가 더욱 우월한 우위로 자가증식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돈이 돈을 번다’,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는 이론이다.
각종 통계를 보면 마태복음의 이 예언이 불행하게도 고착화되고 있다. 현재 지구상 최상위 부자 계층 2퍼센트가 세상 부의 5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지구 인구의 반절은 고작 세상 부(Wealth)의 2 퍼센트를 나누어 갖는다. (UN 통계).
한 나라의 경제적 불평등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지니계수(Gini's coefficient)라는 게 있다.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뜻인데 0.4를 넘기면 매우 심각한 상태로 본다.
목하 한국의 지니계수는 1997년 0.264에서, 2010년에는 0.315으로 치솟아 마(魔)의0.4를 목전에 두고 있다. 상대적 빈곤율도 계속 악화 일로이다. (97년: 8.7%, 2003년: 12.1%, 2006년 14.3%, 2010년 14.9%)
부의 불평등은 부자 나라 모임인 OECD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니 계수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부유층의 불로소득에 경과세(15%)는 미국은 1980년에 이미 0.4를 넘겼고 지난해에는 0.457에 달했다. 중국도 0.5를 넘어섰다. 우리도 양극화의 그림자가 점점 더 진해지고 있다.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예고적 통계치들이 풀뿌리 서민들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앙시엥 레짐(ancient regime)으로 보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 나서도록 등을 떠밀고 있다.
그 증거는 가까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2040이 제도권 정당의 후보를 버리고 한 시민운동가를 선택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세계 도처에서 일고 있는 반금융시위(Occupy Wall Street)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일이다.
반값 등록금 공약을 지키라고 외치는 대학생들과,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졸업생들, 그리고 직장생활 30년을 넘겨서야 비로소 집 한 칸 장만하는 현실 앞에 낙담하는 숱한 월급쟁이들은 내년 선거의 해에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마태효과가 작용하는 경제영역 중 하나는 조세이다. 조세감면의 남발은 상위 소득계층에 역진적인 혜택을 제공하여 빈부격차를 키우는 마태효과를 강화시킬 것이다. 반면에 누진세의 보강은 양극화의 진행을 감속시킬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국내에서도 부유층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는 이른바 ‘버핏세'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여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현행 누진구조의 꼭대기에 소득세의 최고 구간과 최고세율을 하나 더 신설하고 사실상 비과세되고 있는 증권소득과 이자소득 등을 모두 합산해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원래 ‘버핏세'는 미국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 부유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라고 촉구하면서 생긴 신조어인데 우리 여당 역시 버핏세 도입이 여당의 부자정당 이미지 탈피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모델도 실패하였고, 자유방임적 시장숭배의 신자본주의도 금융위기와 양극화 등의 심각한 모순을 노정하고 있다. 이제 정책의 선택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도록 압력을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본주의 4.0(아나톨 칼레츠키), 생물사회학적 공정사회모델(피터 코닝) 초자본주의(라이히) 등 다양한 대안들이 부상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둔다면 자본주의 경제는 현재 증명되듯이 지나치게 이익을 추구할 것이다. 탐욕의 열광자가 생길 것이 분명하다. 이 열광자들은 결국 파국을 맞고 곳곳에서 실업자가 속출할 것이다. … 주택과 주식 가격뿐만 아니라 결국 유가까지 오르다 못해 폭발할 지경에 이를 것이다. … (정부는) 자본주의를 완벽하게 통제해야 한다. 또 (인간의) 동물적 충동에서 발생하는 탐욕을 상쇄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는 ‘야성적 충동의’ 저자 조지 애커로프와 로버트 쉴러의 적확한 예언이었다. 사회학자들은 예언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작동하는 자본주의와 이기적 사회를 치유할 치료사로 정부를 지목하고 있다. 우리 역시 역전의 안타를 쳐줄 현명한 역할을 늘 정부에 기대하게 된다.
[주: 문제해결을 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하여는 라인하르트와 로고프의 ‘이번엔 다르다’, 갤브레이스의 ‘약탈국가’, 크루그만의 ‘불황의 경제학’, 스티글리츠의 ‘끝나지 않은 추락’ 등을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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