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형 본지고문
대표적 케이스가 지나간 세무조사 때 별 문제없이 종결됐던 특정 사안이 또 다시 들춰지는 경우다. 기업들의 불만이 없을 리 없지만 ‘그것은 당시 사정’이라는 듯 고집스레 현미경을 들이댄단다. 이래서 업계에 새롭게 등장한 유행어가 “꺼진 불도 다시보자!”다. 한번 세무조사가 스쳐 갔다 하여 마음을 놓지 못한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다.
‘들출 것 안 들출 것’ 구분 못 해서야
납세상황에 있어 문제의 소지가 없다면 깨끗이 돌아 서는 것이 세정의 정도(正道)이건만 아직은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네 현실인 모양이다. 납세도의에 별다른 하자가 없는 것을 인지하고도 무리수를 둔다면 세정의 신뢰성만 손상될 텐데 아무래도 손익계산을 잘못 튕기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요즘 법원 판례를 보면 ‘세정의 강공(强攻) 운영’에 경고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세무조사 자체도 행정소송 대상’이라는 대법원 판례가 그것이다. 세무조사를 벌이겠다는 세무서의 결정 자체가 적법한 지를 행정소송으로 다퉈볼 수 있다는 게 판결의 요지다. 하물며 ‘중복 세무조사’는 보다 엄격히 규제돼야 한다는 소리 없는 메시지가 동시에 담겨있음을 느끼게 된다.
지금 세정가 주변에는 오랜 세월 국세공무원으로 봉직하다 퇴직,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가고 있는 세정 숙련공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기업의 중량감 있는 세무 고문으로 직분이 바뀌었지만 국세행정에 대한 애정만은 변함이 없다. 기업이 합리적인 납세의사를 결정하도록 조언을 해 주는 일이 본업이지만 때로는 현직 후배들의 직무상 소양능력을 더 걱정하고 있다. 특히나 조사요원들의 설익은 실무적 감각이 그들을 매우 우울하게 만들고 있단다.
이는 대형로펌, 회계법인, 세무법인 등지에서 몸담고 있는 국세청 출신들의 공통된 우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걱정 속에는 국세행정 발전을 위한 염원과 현직 후배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어우러져 있다.
흠결 없으면 손 터는 게 정도세정
어느 원로의 얘기를 들어 보자. 국내 유수 기업들은 국세청의 정기세무조사에 앞서 자체 시뮬레이션에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름 하여 ‘모의(模擬) 세무조사’다. 이때 자문 계약 관계에 있는 로펌의 조세팀이나 회계 또는 세무법인의 내놔라하는 조세전문가들이 이에 관여한다. 실제상황에 버금가는 도상훈련을 통해 세무회계상의 쟁점소지를 조목조목 들춰내어 기업 측에 ‘요(要)! 주의항목’임을 환기 시킨다.
다시 말해 실제 세무조사 시 이 부문에 대해 조사공무원이 물고 늘어지는 경우 상당한 부담을 안을 수 있는 ‘아킬레스 건(腱)’이다. 한번은 모의 세무조사를 통해 핵심 문제부문 10여 가지를 적출, 기업 측에 의견서를 냈단다. 기업 경영진들에겐 떨떠름하고도 예민한 사안을 꼭 찍어낸 것이다.
헌데 결국은 그 고문의 모양새만 구기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실제 세무조사 과정에서, 앞서 지적된 10여 가지 문제 항목 모두가 ‘조사의 손길’이 미치기는커녕 그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고문은 공연이 기업 측에 공포감만 심어준 결과가 된 셈이다. 물론 이 같은 사례는 하나의 작은 케이스일수 있다. 하지만 기업 세무조사에는 일련의 흐름과 감(感)이란 것이 있는 법인데 정예조직을 자랑하는 조사공무원들의 실무적 감각이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꺼진 불도 되 지펴 ‘친 기업세정’ 무색
들추지 말아야 할 것은 들추고, 정작 잡을 것은 놓치는 ‘정예(?) 요원’이라면 그 명예가 무색해 진다. 납세기업에 불만을 최소화 하면서 소리 안 나게 과세행정을 펼치려면 뭐니 해도 직무 능력이 앞서야 한다. 특히나 조사행정이 그렇다.
“기업이 세금에 신경 쓰지 않고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세정지원을 펴나가겠다”― 요즘 이현동 국세청장은 친 기업 세정 발언을 입에 달고 다닌다. 하지만 ‘꺼진 불도 다시 봐야’하는 기업 입장에서 과연 이 같은 메시지가 어떻게 들릴까. 국세청 당국이 곰곰이 되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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