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載亨(顧問)
해마다 납세국민들의 무관심속에 갖가지 세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나든다. 모두가 이유 없는 법안 없겠지만 너무 지나친 감을 지울 수 없다. 법은 언제나 필요에 따라 개정할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 세법은 조세정책 외적 요인으로 순수성을 잃어간다는데 문제가 있다. 우는 아기 젖 주는 격으로 바깥여론에 휘둘리기 일쑤다.
카드공제 연장 판단은 ‘정부의 몫’
요즘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둘러싼 거센 여론을 접하면서 긴 한숨을 내쉬는 조세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하고픈 말이 있을 법도 한데 입을 다물고 있다. 진실을 알면서도 여론을 너무 의식한 때문일까.
필자 역시 봉급생활자기에 제도 폐지 시 직접적인 세부담 증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러기에 근로소득자들의 반발여론에 공감을 하며 그 심정 또한 같은 처지다.
하지만 욕먹을 작정하고 쓴 소리 몇 마디를 하고자 한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는 근거과세체제를 확립하고, 자영업자의 과세표준 양성화를 위해 지난 1999년 3년간 한시적으로 도입됐다. 정부가 현금수입업종의 과표양성화를 촉진한다는 차원에서 신용카드 소득공제라는 ‘빅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세원이 양성화되는 만큼 소비자에게 ‘일정기간’ 조세 일부를 포기하겠다는 일종의 ‘윈윈’정책이자 서로의 약속이었다.
이후 2002년, 2005년, 2007년에 각각 3년과 2년, 다시 2년이 연장되어 금년 말로 시한종료를 앞두고 있다. 이제 신용카드사용이 활성화되면서 자영업자의 과표가 양성화되어 신용카드 소득공제 목적이 상당부분 달성됐다는 판단에서다. 바로 이런 것이 조세정책이다. 이 시점에서 소득공제 시한을 또 한 차례 연장하느냐 마느냐 하는 판단도 당연히 정부 몫이다.
여론에 밀리면 ‘조세 정의’ 훼손 돼
그런데 지금 시민단체는 물론 언론들도 앞 다퉈 신용카드 세금공제 혜택을 지속해야 한다고 당국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신용카드소득공제 폐지서명 운동’이 지난주 현재 5만명을 넘어섰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제도를 없애려면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언론도 한 수 거들고 있다. 심지어 카드 소득공제가 폐지될 경우 자칫 자영업자의 탈세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등장한다. 공제 혜택이 없어지면 사업자들이 현금결제 조건으로 가격을 할인해주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이미 신용카드사용이 생활화 된지 오래며 그 편의성에 너무나 익숙해 있다. 또한 음식 값 몇 푼 할인에 현금 결제를 선호할 시민의식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당국은 이것만은 늘 염두에 둬야 한다. 납세자들은 감세 맛에 한번 빠져들면 그 단맛의 혜택을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의 대체적인 심성이다. 조세특례제한법을 보자. 그 많은 감면조항이 생겨날 때는 아주 조용한 가운데 만들어진다.
하지만 없어질 때에는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래서 감세정책은 신중해야 하며 ‘조세의 기본정의’에 어긋나는 정책만은 피해야 한다. 속된 말로 납세자에게 깔보이면 올바른 정책 수립이 어렵게 된다. 때론 사회여론이라는 법(法) 밖의 정의(正義)가 세정을 굴절시킬 만큼 위력을 떨치기도 한다. 국세청의 특정 그룹 세무조사 내용을 공개하라고 압박을 한다. 현행법에는 분명 그 공개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이 모두가 진실보다는 여론에 허덕거리는 뒷심 없는 정부 탓이다.
좋지 않은 先例 이젠 끝을 내야
지금 정부 여당은 거센 여론에 밀려 ‘소득공제 기간 연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여론을 등에 업고 소득공제를 연장해야 한다는 세법개정안도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세제가 일부 군(群)의 주장에 좌지우지 되는 좋지 못한 선례(先例)를 또 하나 남기려는 모양이다. 여론에 끌려가는 나약한 모양새가 언제나 끝이 날 것인지 참으로 암담한 심정이다.
조세정책이 정치논리에 훼손되고 여론에 마저 휘둘린다면 이 땅의 조세정의 구현은 기대가 어렵다. 이 모두가 정부의 인과응보요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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