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昌泳(본지 편집국장)
새해 들어 물가가 초비상이다.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성장위주의 다양한 메뉴를 운영했던 경제정책에 물가불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고환율·저금리 정책을 기조로 오직 성장에 매달렸던 정부는 급기야 허둥대며 이제는 물가에 총력을 쏟고 있다. 이미 물가의 큰 축이 움직였고, 웬만한 대책으로는 ‘약발’이 어렵게 됐다는 전망도 어색하지 않게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물가를 잡기 위한 정부의 부담이 훨씬 커진 양상이고, 목표가 정해진 만큼 이명박 정부 특유의 ‘쏟아 붓기’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어렵게 이룬 성장이 물가불안으로 훼손될 경우 그 폐해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모범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가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국민생활이 불안해져 경제 이상의 문제로 대두될 것이 뻔하다.
당연히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가 물가안정으로 정해졌고, 신년벽두부터 화려하고 매서운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Ⅱ
일부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물가를 잡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나서고 있다. 공정위는 스스로 ‘물가관리 기구’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했고 위원회 창설 이후 최대 규모로 설 관련 농산물과 주요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가격 담합·부당인상 여부에 대한 직권조사에 착수하고 있다.
김동수 위원장 취임 이후 사무처장을 단장으로 핵심부서가 참여하는 ‘가격불안품목 감시·대응 대책반’이 구성되고 설 이전까지 일차적인 조사를 완료한다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공정위 고유업무를 전제한다면 ‘특별하게’ 나서는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가 않다. 당장 전 공정위 사무처장을 지낸 허선씨는 공정위가 직접적으로 물가에 관련된 정책수단을 갖고 있지 않고 기업에게 가격을 내리라고 지시할 권한도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공정위가 실정법에 위반되지는 않더라도 가격거품 현상과 원인을 분석하고 사회적 공론화를 추진하는 정책을 쓰겠다는데 대해서는 기업에 대한 명백한 공갈이며 협박이자 민간사찰이라고까지 질타했다.
또한 공정위가 물가관리에 전력을 쏟을 경우 기존 사건처리 기준이 흔들릴 수가 있고 결국 기업의 투자계획, 마케팅전략 등에 불확실성이 커져 비용만 늘어나게 되는 부작용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정위는 이번에 아주 각별한 자세로 물가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신임 김동수 위원장이 ‘살벌할’ 정도로 의지가 강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비단 공정위 뿐만이 아니다. 마치 두더지 게임하듯 튀는 물가를 때려잡을 태세가 강력하다. 정부 내에서 물가를 잡는 것은 확실한 화두가 됐다.
이쯤 되면 세금도 나설 때가 됐다. 사교육 문제가 나오면 고액과외·학원·스타강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등장하고, 서민금융이 사회문제가 되면 불법 고리대금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역시 뉴스의 윗자리를 차지한다.
경제·사회 현상에 대해 세무행정이 대응하는 것이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다. 현실을 기반에 두는 행정이기 때문이다. 시류에 몰려 다니지 않고 일정수준 도만 넘지 않는다면 책임을 다하는 행정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경제 사회적 문제가 대두됐을 때 국세청이 나서면 국민들이 다소 안심하고 마음 든든해하는 것도 사실이고, 긍정적 효과의 하나로 볼 수 있다.
Ⅲ
문제는 도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데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물가를 챙기면서 정부 각 부처는 말 그대로 물가에 시선이 꽂혀 있다. 낼 수 있는 정책은 다 동원하는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는 올해 개인서비스 요금 안정을 위해 물가 모범업소에 대해 인센티브를 집중적으로 제공하고, 가격을 크게 올리는 업체에는 단속·행정처분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런데 제공을 검토하는 인센티브에 부가세 신고를 면제하는 방안도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가 모범업소에는 부가세 신고를 면제, 음식 가격에 부과된 세금을 덜 내게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뒤 늦게 주영섭 세제실장이 부인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물가를 잡는데 세정이 아닌 동선이 아주 느린 세제를 동원한다는 얘기인데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문제점과 부작용은 살펴봤는지 궁금하다.
부가세는 세법에 따라 부과되는 세금인데 밥값 안 올렸다고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이 과연 세법 논리에 맞는 일일까. 또 내용을 떠나 만약 시행을 한다면 어떤 근거로, 어떤 형태로 진행할 것인지 ‘그림’이 나오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시행을 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과 가뜩이나 예외 문제로 누더기가 된 부가세제가 안게 될 충격은 물가안정에 기여하는 효과를 무색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무슨 일이 발생할 때마다 쏟아 붓듯 몰리는 현상이 쉽게 나오는 현실이지만, 아무리 급해도 가릴 것은 가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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