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鎭雄 本紙 論說委員
[빅뱅과 신] 한편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우주물리학자로 평가 받는 스티븐 호킹(68) 영국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는 “우주는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으며, 신까지 빌려와서 이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하여 기독교계가 발끈하였다. 호킹은 지난 9일 출간한 ‘거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를 통하여 “빅뱅(우주를 창조한 대폭발)은 신의 손이 아니라 중력과 같은 물리적 법칙에 의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이기적인 유전자’나 ‘만들어진 신’을 통하여 조목조목 신의 존재를 부인한 리처드 도킨스 옥스포드대 교수에 이어 무신론자와 유신론자들 사이에 논쟁의 불씨를 다시금 지폈다.
[문명의 충돌] 하버드 대의 헌팅턴 교수는 일찍이 문화와 종교 차이가 냉전시대 이데올로기를 대신해 국제분쟁의 요인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1993년 ‘호린 어페어스’ 학술지를 통하여 세계는 향후 서구와 라틴아메리카, 이슬람과 유교권 등 7∼9개의 문명권으로 분열될 것이며, 이들 문명권 간의 경쟁과 충돌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1996년에는 ‘문명의 충돌’을 발간하면서 기독교적 서구와 이슬람 세계의 충돌을 예언하여 주목을 받았다. 헌팅턴은 위에서 언급한 문명의 주요 특성에 의거하여 세계를 중화, 일본, 힌두, 이슬람, 정교, 불교, 서구,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아홉 문명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문명권간의 관계는 우호적이거나 교류와 협력을 추구하기보다는 상호 배타적인 갈등관계의 원리를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원칙하에 내부의 결속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하랄트 뮐러] 한편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하랄트 뮐러 교수는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 반론을 제기하며 갈등이 아닌 대화와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대안을 주창한다. 헌팅턴이 주장하는 서구를 위협한다는 적대적인 문명의 존재가 실제로는 설득력 없는 환상이므로 ‘우리 대 너희'식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문명간에 차이가 있다면 전쟁이 아니라 대화만이 세계 공동체의 평화로운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특한 나라] 한국은 수출로 지탱하는 나라이다. 내수시장으로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외국시장에 내다 팔아 먹고 사는 나라라는 뜻이다. 반면에 내수시장에 외국기업이 들어오는 것 역시 지구촌에서 우리가 공존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국내 시장에 들어온 외국기업들이 어려워하는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까다롭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소비자성향이다. 이는 여성용품이나 명품류에서 두드러진다. 둘째, 트렌드가 눈 깜작 할 사이에 바뀌는 통에 도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단다. 셋째, 노동시장의 경직성에 놀란다. 이 모든 것들이 나라마다 다른 문화가 주요인일 것이다.
[행정은 서비스] 주한 외국기업들이 한국의 세무행정에 대하여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행정은 굳이 말하면 서비스이지 재화는 아니다. 정부는 시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이다. 행정의 소비자는 납세자이다. 자연 서비스의 품질과 내용에 대하여는 소비자의 품평이 있게 마련이다.
외국에 살던 교포가 국내 재산처분 등으로 한국에 와서 관공서를 드나들더니만 입에 침이 마르게 달라진 관공서를 칭찬하였다. 친절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보다 정확히는 외국기업에 근무하는 외국인(Expat)들은 직책상 국내 세무관서를 드나들 위치에 있지는 않다. 그들은 주요 의사결정과 상황판단을 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죄와 벌] 따라서 그들은 민원실의 친절도에는 관심이 없고 세제나 세정방침에 대하여 보다 관심이 많다. 의사결정시 그들이 묻는 질문들을 모아보면 우리 세무행정이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를 알 수 있다. 가장 자주 접하는 대표적인 질문은 가산세이다. 세무조사상 서로 이견이 있어서 고지를 하는 경우 가산세를 반드시 내야 하는지를 묻는다. 물론 조사관들에게는 생경한 질문임에 틀림이 없다.
외국 CFO의 입장은 이러하다. 추징이 법령해석 차이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그 것은 고의가 아닐뿐더러 회사는 나름대로 그렇게 회계 처리한 주장과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그 갈등의 부담을 꼭 납세자측에만 전가시켜야 하느냐는 것이다. 외국인들 대부분이 고의성이 없는 경우 가산세(penalty)를 부과하는 건 부당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자국에서는 그러한 경우 페널티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나라가 그러하다.) 백 번 양보하여 과소납부 가산세는 몰라도 무신고 가산세는 더욱 그러하다는 거다.
회사가 회계처리에 그럴만한 믿음(belief)이 있었다는 것이 합리적으로 추정되고, 고지서를 받고 본세는 물론 이자(과소납부 가산세)까지 납부하면 정부가 손해 보는 것이 전혀 없는데, 납세자의 무고한(innocent) 믿음을 죄(sin)로 승화(?)시켜서 벌(penalty까지 내리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거다.
[큰 귀와 여유] 초일류 세정을 향해 질주하는 우리 세무당국이 이제는 이러한 의견에도 ‘큰’ 귀를 기울여 줄 때가 된 것 같다. 요즈음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원시적으로 매출을 누락하여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고도의 세법 해석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발생하는 해석의 차이가 5~7년 뒤의 세무조사에서 갈등으로 불거질 경우를 기업의 세무 담당자가 어떻게 모두 다 예견할 수가 있겠는가? 물론 수년 전 국세기본법에 가산세의 감면조항(제48조)이 도입되긴 하였다. ‘납세자가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데 대한 정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해당 가산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는 있으나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지는 묵언수행 중이니 실무 담당자들은 알 수가 없고, 사후감사에 책임이 예상되니 가산세 감면조항을 선뜻 적용할 형편이 아니다.
물론 가산세만이 대안을 요구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사절차에 대한 보다 여유 있는 개선도 포함된다. 특히 외국계기업의 경우 세무조사시 제출요청 받는 핵심적인 자료들이 모두 외국의 본사나 해외 모사로부터 상당 기간 준비되어야 하는데 한국의 세무조사를 위하여 해외에서 기다렸다는 듯 모두 걸기(올인)하여 줄 리도 없지 않은가. 이런 경우 기계적으로 내외국기업을 ‘차별 없이’ 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적어도 조사예고통지기간을 합리적으로 달리하여야 할 것이다. 하랄트 뮐러 교수가 처방하듯이 서로 다른 갈등에는 대화와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대안을 찾는 여유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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