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沈 載 亨 (本社 顧問) -
그는 청장에 부임하자마자 옳고·맑고·바르고, 당당한 정도세정 구현을 국민에게 약속하면서 이른바 ‘제2의 개청’을 선언한다. ‘국세청’이라는 간판만 빼고 모든 것을 바꿔 놓겠다는 이른바 국세행정의 일대 변혁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당시 작은 정부 지향이라는 정부정책을 감안, 전국 134개에 이르던 일선관서 중 무려 35개 세무서를 단칼에 통폐합시킨다.
세정운영, 검찰·경찰과 ‘장르’ 달라
그 뿐인가 이 땅에 경성세무서가 탄생한(1927년) 이후 73년간 계승돼 오던 직세, 간세, 소득, 법인 등의 업무조직 체계를 송두리 채 바꿔 버렸다. 선진국 ‘직위 분류제’라는 것을 우리 것으로 업무 매뉴얼 화(化), 이른바 기능별조직 체계로 틀을 바꿨다.
그는 세정 본연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통일자금’ 마련의 필요성까지 역설 했다.
국세공무원들에겐 “조세정의를 실현시키는 기술자가 돼 보자”고 호소하면서 그동안 성역으로 인식돼온 언론사에 대해 집중적이고 대대적인 세무조사의 칼을 빼 들었다. 누가 봐도 고독한 결단에 용기 있는 결행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언론사에 대한 무차별 세무조사로 대표되는 첫 작품(?)은 그 평가가 엇갈린 가운데 총체적인 조세정의 실현 작업 역시도 지지부진하게 끝을 내고 만다.
세정가 사람들은 당시 국세청장의 의지가 조세정의 보다는 시대상황에 더 민감했던 흔적이 엿 보였다고 술회하고 있다. 정치논리에 국세행정이 굴절됐다는 뜻이다. 그의 개혁 매뉴얼은 여기서 끝나질 않았다.
인사행정에도 향피제(鄕避制)라는 낮선 제도를 도입, 지역의 토착 세무비리 근절이라는 명분하에 지방국세청장 인사에 향피제를 적용했다. 지역 세정책임자에게 ‘안면몰수(顔面沒收) 세정운영’을 주문한 셈이다.
얼굴 붉히며 세금거둘 필요 있나
하지만 향피제는 초장부터 어느 특정인을 겨냥한 ‘타깃 인사‘라는 혹평으로 얼룩이 진다. 당시 TK(대구·경북)출신의 맏형격인 이재광(李在光) 국장을 광주청장으로 발령 낸 것이다.
이 국장은 누가 뭐래도 부산국세청장 영(零)순위에 올랐던 인물이다. 하기야 광주로 발령 내지 말라는 법은 없겠으나 굳이 낯설고 물 설은 광주청장으로 보낼 일은 아니었다.
광주청장으로 부임한 그는 지역 상공인들과의 서먹한 마음의 벽을 특유의 친화력으로 걷어낸다. 지역 상공인들과의 첫 세정간담회에서 “나는 비록 출신지가 대구지만 광주에 있어야 할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자신의 이름(在光)을 재치 있게 풀이, 광주와의 인연(?)을 강조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이런 수고까지 해야 했을까. 재임 중 그의 마음고생 몸 고생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앞서 1월 4일자 국세청 고위공무원 전보 발령 직전, 국세청 내에는 잠시나마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인사뚜껑이 열릴 즈음 때맞춰 대통령 지시사항이 나온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구랍, 검찰·경찰 그리고 국세청직원들의 연고지 근무 관행과 관련,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바 있다.
지금처럼 연고지인 고향으로 내려가 1년 단위로 근무해서는 지역 현황을 다 파악하지 못할 뿐 아니라 토착비리 척결이라는 개혁과제를 손도 대지 못하고 돌아오게 될 것“이라며 사실상 ‘향피제’도입 검토를 지시한 것이다.
국세청은 오히려 ‘향피제’ 피해야
이번 1월 4일자 국세청 인사에서도 초임서장 인사의 경우 향피제가 적용됐다는 후문이다. 토착비리 근절 차원의 연고지 배치 제도 개선책 마련을 언급한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한 것 일게다.
검찰·경찰·국세당국은 모두 법을 집행하는 기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법 운영에 있어서는 장르가 다른 것이 국세행정이다. 지역 특성에 맞는 세정 운영을 위해서는 그 지역 납세 풍토라든가 세원 특성에 밝아야 한다. 그래야 지역 납세자들이 국세행정에 순응을 한다.
이런 점에서 국세청 인사만큼은 향피제를 오히려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세정파트너인 납세자들에게 웃는 낯은 못 보일망정 얼굴 붉히며 세금 거둘 일이 뭐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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