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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리사의(見利思義)
견리사의(見利思義)
  • jcy
  • 승인 2005.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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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손에 논어, 한 손에 주판 -
안중근 의사가 여순 옥중에서 휘호(揮毫)한 몇 작품 중에 “見利思義”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안 의사가 한 말은 아니다.
논어에 있는 말로 공자의 경제사상을 한 마디로 표현한 名言이다.
“이익을 보면 義로움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흔히들 공자는 윤리도덕만을 강조하는 순수 도의론자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경제나 民生을 아주 중시하였다.
우선 백성을 잘 살게 하고 다음에 가르치라고 하였는데, 학자들은 유식하게 先富後敎라고 칭하기도 한다.
논어를 읽다가 보면 때로는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말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서 논어가 만고의 古典이고 더욱 유명한지도 모른다.
“見利思義”도 그렇다.
누가 그걸 모르랴.
그러나 당장 눈앞의 利을 보면 의로움, 곧 義를 잠시 유보하고 우선 이익부터 챙기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공자가 그것을 경계한 것이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먼 것을 ‘見利忘義’라고 하는데 그것은 일시적으로 이익이 될지 모르나 결국은 자신을 망치는 화근이 된다.
공자도 利를 배척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정당한 이익 즉 도리에 맞는 이익활동을 긍정하고 권장하였다.
공자는 나라에 道가 있는데도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나라에 道가 없는데도 부자인 것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였다.
공자 자신도 “富를 만약 구해서 될 수 있다면 비록 말채찍을 잡는 일이라도 내 또한 하겠다”라고 하였다.
실제로 공자는 창고의 물품관리도 하였고 목장에서 말을 기르는 일도 하였다.
다만 의롭지 않은 富(이익)을 배척한 것이다.
물질적인 利보다는 정신적인 義를 중시하고 우선하였을 뿐이다.
義가 행위의 동기에 초점을 둔다면 利는 그 결과를 따진다.
18세기 말 영국의 벤담이나 밀에 의하여 주창된 功利주의는 善惡의 기준을 功과 利에 두고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목표인데 인간의 고통과 쾌락을 그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레서 요즈음 학자들은 孔孟의 경제사상을 反功利주의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행위의 결과보다는 그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맹자는 당시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이라는 두 사상가를 비판하고 반대하였다.
楊子는 “털 하나를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하더라도 하지 않는다”(拔一毛利以天下不爲也)는 것이고, 반대로 묵자는 “머리부터 발꿈치까지 갈아서라도 천하를 이롭게 한다면 하겠다”(摩頂放踵利天下爲之)는 것이다.
楊子의 극단적인 이기주의는 맥이 끊어졌지만 묵자의 겸애(兼愛)주의는 아직도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묵자는 義와 利의 合一을 주장하였는데 義와 不義의 기준을 백성에게 이로은 것을 義, 백성에게 해로운 것은 不義로 보았다.
결국 묵자는 義는 利에 의하여 규정되기 때문에 義로써 利를 다스려야 한다(以義制利)는 공맹의 사상과는 다른 것이다.
사업을 하고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이익의 창출에 목적이 있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건 진정한 이로움(利)이 될 수 없다.
공자가 見利思義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원칙이고 기준이다.
하지만 利로움을 보는 순간 義로움을 잊어버리는 이른바 見利忘義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개인이고 기업이 패망하는 것이다.
정당한 방법, 즉 義로움으로 利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지레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信義가 없으면 개인은 물론 기업이고 국가는 지탱을 못한다.
일본의 근대경제에 제일 영향력 있고 크게 존경받은 인물로 ‘시부자와’(澁澤榮一, 1840-1931)가 있다.
경제각료 출신이면서 성공한 기업인이다.
일본주식회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는 “한 손에는 論語 한 손에는 주판”이라고 그가 쓴 ‘논어강의’에서 기술하였다.
그의 저술을 직접 읽어보지는 못하였으나 간접적으로 접한 바에 의하면 500여 기업을 일으키면서 이익 여부는 둘째이고, “이것이 꼭 필요한 사업인가? 번창하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업인가? 道義에 맞는 일인가?”를 먼저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주판(珠板)은 서양의 과학기술과 관리방법이고, 논어는 바로 義에 근거한 利를 창출하는 경영철학일 것이다.
다시 말해 선비의 혼과 장사꾼의 끼(그는 士魂商才라 함)가 합일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라고 한다.
義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윤리규범이다.
義가 밖으로 표현된 것이 禮이고, 義와 禮는 仁을 근거로 하여 성립된다.
義는 그 功을 따지거나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안중근 의사가 죽음을 앞두고 쓴 것이 “見利思義”이다.
누구나 그 깊은 뜻을 새겨야 한다.
아무리 물질문명(利)이 판을 쳐도, 정신문명(義)을 벗어나지 않으면 건전한 사회는 유지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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