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鄭昌泳(본지 편집국장) -
국세청이 권력기관에서 벗어나고, 국세행정이 서비스 행정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가시화되면서 납세자들이 세정에 관심을 갖는 분야는 단연 세무조사로 쏠리고 있다.
세무조사에 대한 관심은 비단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세정의 태동단계부터 계속돼 오고 있지만 최근 납세자들이 세무조사에 대해 갖는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편이다.
국세청은 지난 달 ‘획기적으로 개선’된 내용의 법인 정기조사대상 선정방향을 발표했다. 특히 이번 조사선정 방향에서 관심을 끈 것은 신고납세제 아래에서 세무조사의 역할에 대한 개념을 국세청 스스로 정리한 대목이다.
국세청은 신고납세제 하에서 세무조사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납세자의 세금 신고내용을 검증해 탈루나 오류를 시정함으로써 성실신고를 담보하는데 있다’고 정리했다. 납세자가 자신의 세금을 스스로 확정해 납부하는 신고납세제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이 것 이상 정리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국세청은 그동안의 기업 세무조사가 납세자 입장에서 객관성이나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오해와 불만을 받아왔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개선된 기업조사는 법에 따른 원칙에 의해 객관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납세자간 형평에 초점을 맞춰 운영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조사대상 선정기준도 공개하고 기준 마련단계에서부터 외부 위원이 다수 참여하는 조사대상선정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한다는 내용도 공표했다.
Ⅱ
국세청은 올 연말부터 내년에 걸쳐 착수하는 법인 정기조사 대상을 선정하면서 기본 원칙으로 외형 5000억원 이상 대기업에 대해 4년 주기 순환조사제를 도입했다. 매출 규모에 관계없이 4년 이상 미조사법인을 선정하던 기준을 폐지하고 형평과 예측가능성을 전제로 4년주기 순환제를 선택한 것이다.
국세청이 형평을 맞추고 언제 조사받을지 모르는 납세자에게 안정감을 주기위해 도입한 법인 4년주기 순환 조사제도에 대해 정작 당사자인 대기업들은 의외로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다. 억울하거나 배 아프지 않게 해주고, 갑자기 조사대상에 선정하는 불확실성을 없애주겠다는 국세청의 공개적 방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던 대기업 관계자들이 왜 입을 다무는 것일까.
국세청이 신고납세제 아래서 법인 세무조사는 신고내용을 검증해 탈루나 오류를 시정하는 역할이라고 철저하게 개념까지 정리해가면서 내놓은 작품에 대해 일단은 ‘박수’는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4년 주기 순환조사제가 적용되는 기업의 담당 임원은 “무엇이 진정으로 신고납세제 취지를 살리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신고납세제 하에서 기업이 정확하게 신고하려고 막대한 비용을 써가며 신고한 것을 단지 주기적·기계적 기준으로, 형평과 예측가능성을 내세워 무조건 4년마다 조사에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업의 임원은 신고납세제 아래서 조사대상을 선정할 때는 기업이 스스로 신고한 내용이 성실한지 불성실한지 분석한 뒤 불성실 신고혐의가 있을 때 조사대상으로 선정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주장했다.
Ⅲ
그러나 국세청의 법인 정기조사와 관련해 기업들은 “과연 그렇게 할까”라는 의문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다. 4년 주기 순환조사제의 경우 만해도 ‘국세청의 현재 능력으로 차질없이 수행이 가능하겠는가’라는 되물음이 돌아온다. 원칙은 정해 놓았지만 진행과정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균형이 깨질 경우 최대 장점으로 내세운 형평과 예측가능성의 실종은 불가피하다. 이 경우 ‘당하는 곳만 당한다’는 불신이 당연히 따라 나온다.
요즘 대기업 조사에서는 소위 원초적·일방적 탈세를 찾기는 어렵다. 그만큼 철저하게 세금신고를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국세청이 스스로 밝혔듯이 대부분 누락금액이 손익귀속시기의 문제이거나 기업회계와 세무회계와의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런데도 세무조사에서 일단 부과되는 세금규모는 결코 외형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여기에다 탈세를 전제로 매겨지는 가산세는 가혹하리만치 강화되고 있다.
무리한 조사로 부과된 세금에 대해 불복과 소송에서 대기업이 되 찾아가는 세금 규모가 천문학적 숫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없다.
세무조사건 검증이건 기본적 전제와 설정이 공감을 얻으려면 실행과정에서의 신뢰가 우선 확보돼야 한다. 이것은 기준을 기준답게 인식시키는 정확한 코스이기도 하다. 어이없이 맞았던 매는 징그럽게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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