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조항과 비슷한 유형의 범죄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다수 있었다면 하급심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 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지난달 11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씨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이틀 앞둔 2021년 4월 5일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면 지역 재개발이 활성화된다는 내용의 문건 300장을 건물 우편함 등에 살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씨에게 적용된 옛 공직선거법 93조는 선거일 180일 전부터 후보에 대한 지지·반대 의사는 물론 정당 명칭이나 후보자 성명이 들어간 인쇄물·사진·벽보·문서 등을 살포하거나 게시할 수 없도록 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이 조항을 적용해 김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결이 잘못됐다며 파기했다. 해당 조항과 관련해 다수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었던 점을 하급심 법원이 심리 과정에서 고려해야 했다는 취지다.
헌재는 공직선거법 93조와 그 처벌 규정 255조 중 벽보·인쇄물·광고·문서·도화의 게시 및 인쇄물의 살포를 처벌하는 부분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장기간 지나치게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김씨에게 적용되는) 문서 살포에 관한 부분은 헌법재판소 결정의 심판 대상이 되지 않았지만 헌법불합치 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밝힌 이유와 같은 이유에서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평가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원심으로서는 구 공직선거법 93조·255조 중 '문서 살포'에 관한 부분의 위헌 여부 또는 그 적용에 따른 위헌적 결과를 피하기 위한 공소장 변경 절차 등의 필요 유무 등에 관해 심리·판단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서 살포와 유사한 인쇄물 살포 범죄에 대해 이미 처벌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단이 있었던 만큼, 2심 법원이 이를 고려해 문서 살포에 대해서도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거나 검찰이 공소사실 자체를 변경하도록 조처해야 했다는 취지다.
헌법불합치란 법률을 위헌으로 보면서도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입법 기한을 정해두고 그때까지 효력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국회는 헌재의 결정 취지를 받아들여 180일이던 제한 기간을 120일로 줄이는 개정안을 작년 8월 입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