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연간 수급 이탈자 비율 40% 넘어 불가피…선진국도 우리처럼”
- 납세자연맹, “분식회계”…정창수 소장, “현행제도 유용하지만 진화돼야”
근로빈곤층 지원책으로 지난 2008년 도입된 근로장려세제는 명백히 복지정책인데 조세지출로 분류되는 것은 문제라는 예산 전문가의 지적에 대해, 정부는 대상자 변동이 심해 복지정책으로 예산을 책정해 놓으면 제대로 지급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국책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가구 중 빈곤가구는 근로장려금을 받더라도 이를 통해 추가 근로유인을 제공받지는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고위공무원은 30일 “근로장려금을 조세지출로 분류하는 현행 제도에 비판적 지적이 있다”는 본지 취재에 “수급자 변동이 심해 만약 사전 책정해놓은 장려금 예산이 고갈되면 굉장히 큰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이 고위공무원은 “사실 장려금 예산 방식을 조세지출로 할 것인가 재정지출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제도 출발 초창기에 이미 있었다”면서 “장려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선진국들도 우리와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점 등을 고려해 현행대로 가야 된다는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시행 후 기초수급자도 장려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는 등 제도변경으로 지급액이 확대되면서 당초부터 안고 있었던 수급 대상자 변동 폭이 더 커졌고, 이에 따라 조세지출 방식이 불가피하게 굳어진 것으로 풀이됐다.
국세청 김진호 소득지원국장은 이날 본지 확인 요청에 “장려금을 받다가 못 받거나 못 받다가 받는 비율을 가리키는 비수급 이탈률이 해마다 40%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국세청 김진현 기획조정관은 “장려금 예산회계 방식을 조세지출로 할 것인가, 복지(재정)지출로 할 것인가는 세제와 예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가 검토한 것으로 안다”고 확인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최근 연구소가 발간하는 <나라살림 뉴스레터>에서 “근로장려금은 명백히 복지정책인데 조세지출로 분류되고 있다”면서 “국세청이 담당부서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한번 자리 잡으면 바꿀 수 없는 관료제에서의 경로의존성 때문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정 소장은 이날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근로장려세제 자체는 대상자의 신청과정을 통해 소득파악 투명화에도 기여하는 만큼, 단순 복지정책을 넘어 유용한 제도”라면서도 “실상은 국가가 걷은 세금으로 세금 안내는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것인데, 세금을 안 걷은 것으로 회계처리 하는 잘못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또 “사실상 조세감면을 뜻하는 조세지출보다는 ‘수입대체경비’처럼 돌려쓰는 재량 예산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정 소장은 정부가 제도운용의 현실론으로 제기하는 ‘급격한 수급대상자 이탈율’에 대해서는 “각종 통계와 세원 분석을 통해 세입과 세출을 정하는 예산이 계획대로 집행되기 어려운 것은 지극히 일반적”이라며 “예산이 남으면 불용처리하고 부족하면 더 끌어다 쓰면 되는 것이지, 조세지출이 아닌 것을 조세지출로 처리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장차 근로장려세제가 더 좋은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내놨다. 정소장은 “지금 추세로 가면 향후 4~5년 이내에 장려금 규모가 기초생활수급 지급금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면서 “차제에 기초수급을 없애고 일하는 사람은 월 200만원 수준, 일 못하는 사람은 월 60만~70만원 수준으로 지원하고, 노인 등 아픈 사람은 건강보험에서 책임져주는 새로운 복지정책으로 진화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매년 노사가 극한 대립을 반복하는 최저임금제 역시 이와 같은 ‘전국민 최저소득제’ 개념으로 진화시켜 나가면, 이런 사회보장을 받기 위해 사회보험료도 잘 낼 것이고, 결과적으로 전 부분에서 촘촘한 복지 체계가 갖춰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소장은 다만 “국회의원들에게 이런 구상을 설명하면 고개만 끄덕일 뿐, 한명도 나서는 사람이 아직 없다”고 덧붙였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장려세제는 영국과 미국 등 일부 영미식 자본주의 국가들만 시행하는 제도로, 제도 초기부터 조세지출 방식 문제 때문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왔다”면서 “수조원의 복지지출을 조세지출로 회계처리 하는 것은 국가 예산체계와 국가통계를 왜곡하는 분식회계”라고 혹평했다.
한편 근로장려금 예산회계 방식과 별도로 근로장려금이 저소득층의 근로의욕을 북돋워 일을 더 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지 여부가 10여년이 지나도록 불분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근로빈곤층에 대한 근로장려세제의 효과 분석’이라는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가구 중에서 근로장려금을 지급받는 빈곤가구는 받은 장려금이 일을 더 할 계기로 작용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조사 대상 기초생활수급가구 중 80% 이상이 빈곤가구에 해당되는데, 기초생활수급가구에서도 상대적으로 근로능력이 의지가 높은 그룹에서만 근로장려금이 노동시장 참여율 증가 가능성을 보였다”고 밝혔다.
근로장려금 제도는 기초수급자에 머물던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저소득자로 넓힌 대표적인 사업이다. 점차 대상자가 많아지면서 2020년에만 해도 568만 가구에 5조가 넘는 재정이 투입됐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근로장려금 중복 수급이 허용된 이루에도 지속 개편돼 왔다. 2020년부터 기초생활수급가구 선정 때 산출하는 소득인정액에서 근로 및 사업소득에 대해 30% 기본공제가 적용된다.
연구팀은 이런 잦은 제도 변화가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근로장려금의 노동공급 유인효과(causal effect) 분석을 어렵게 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이번 연구보고서에서는 장려금과 기초수급을 동시에 수급하는 가구와 기초급여만 받는 가구를 단순 비교, 집단간 노동시장 참여확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를 검증한 수준에 그쳤다.
연구팀은 “기초생활수급자중 일부 수급자가 적용받는 것으로 판단되는 근로장려금과 근로소득공제의 노동공급효과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전년도 근로장려금 수급 경험이 당해 기초수급 빈곤가구원의 노동시장 참여 여부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못주니, 근본적 근로유인 제고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