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투기와 부패 고리 과감하게 도려내는 정당에 국민들 흔쾌히 지지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국민권익위원회의 전수조사 결과와 관련한 국민의힘 지도부의 24일 ‘동료 의원 봐주기’ 징계 조치는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부동산 불법의혹 의원 12명 가운데 6명은 소명이 완료됐다며 무혐의 처분했고, 나머지 6명에 대해서는 강제성 없는 ‘탈당 권유’에다 비례대표 의원은 의원직 유지용 ‘제명’ 조치를 결정했다.
실소를 감출 수가 없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그동안 권익위 조사 결과가 나오면 “민주당보다 더 강하게 대처하겠다”고 거듭 밝혀왔다. 권익위 발표 하루 전에도 “공언했던 입장을 지키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러나 약속한 엄정조치는 고사하고 지난 6월 민주당이 취한 ‘전원 탈당권유’에도 못미치는 경징계 조치를 내렸다.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채 해당 의원들의 해명만 듣고 이런 결정을 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권익위가 수사 의뢰한 국민의힘 의원 수는 지난 6월 수사 의뢰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수 12명과 같지만, 비율은 11.7%로 민주당(6.9%)의 2배에 가깝다.
정부의 부동산 투기 대책을 격렬하게 반대해온 국민의힘에 부동산 불법투기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수치로 보여주는 것이어서 내부적으로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듯하다. 부동산 투기에 민감한 국민 정서상 지탄의 수위가 높아질 것이 뻔한 상황에서 이런 경징계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고육지책이 짐작은 된다.
부동산 불법거래 의혹이 있다고 발표한 권익위 명단에 대권후보자와 유력후보자의 캠프 소속 의원들이 상당수 포함돼 대선판도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것이다.
지난해 여당이 추진한 임대차 3법을 반대한 ‘저는 임차인입니다’ 연설로 스타덤에 올라 현재 국민의힘 대선주자로 뛰고 있는 윤희숙 의원이 포함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캠프의 부동산정책본부장 송석준 의원, 조직본부장 이철규 의원, 홍보본부장 안병길 의원 등도 명단에 올라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직책을 사퇴하는 등 즉각적으로 여파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불법의혹 의원들에 대해 이준석 대표의 약속대로 민주당의 탈당 권고를 넘어서는 조치를 취할 경우 개헌저지선(100석)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참으로 한심한 발상이며 국민은 안중에 없는 정치권 몰염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더구나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에서 나오지 않은 세금탈루 의혹 2건도 확인됐다. 권익위는 “실제로는 자녀에게 증여해놓고 매매한 것처럼 형식을 갖춘 뒤 증여세를 내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수사를 통해 세금탈루가 사실로 드러나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고위공직자 모두에 대해 부동산투기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며 목청을 돋우고, 공직후보자 청문회 때마다 세금탈루 의혹을 들먹이며 호통 치던 국회의원들이 ‘세금도둑질’에 나선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부동산 민심 악화로 민주당이 4월 초 권익위에 조사를 맡길 때에도 ‘권익위를 믿을 수 없다’며 여론과 달리 나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12명의 투기의혹이 드러난 지난 6월에야 직무감찰 권한이 없는 감사원에 투기의혹 전수 조사를 의뢰했다가 감사원이 난색을 표하자 마지못해 권익위로 방향을 틀었다. 국민의힘이 이런 버티기 ‘꼼수’를 부린 이유를 권익위가 이번 부동산 불법투기 의혹 발표를 통해 밝혀준 셈이다.
국민의힘이 약속과 달리 해당 의원들에 대해 전혀 엄정하지 않은 조처를 취한데 대해 국민 여론은 싸늘하다. 소명으로 해명이 됐다며 넘어가고, 일부 의원에 대해서만 민주당처럼 ‘탈당 권유’라는 구속력없는 조치를 던져놓고 여론이 가라앉기를 기다리자는 안일함이 놀라울 뿐이다.
앞서 민주당의 경우도 소속 의원 12명에게 자진 탈당을 권유했지만 실제로 탈당을 한 의원은 없다. 비례대표인 윤미향·양이원영 의원만 의원직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명을 받아 출당 조치됐을 뿐이다.
20대 대통령선거를 6개월여 앞두고 대선 레이스가 한창인 시점에서 국민의힘 지도부가 부동산 투기의혹 의원들에 대해 출당이나 제명 등의 강력한 징계를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당사자들이 반발하는 등 당이 시끄러워질 경우 지지율을 깎아 먹고 대선후보 경선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가장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비난에 나서면서도 수위 조절에 나서는 얄팍한 ‘정치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치 쟁점화해 사안을 키울 경우 자칫 ‘내로남불’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이제 국민의힘의 결단이 남았다. 국민이 납득할 엄정한 조치를 내놓기 바란다”고 압박했으나 “약속을 지키는 제1야당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는 원론적 수준으로 마무리했다.
지난 6월 3기 신도시와 관련한 LH사태로 촉발된 국민 분노를 의식해 부동산 불법의혹 전수조사와 수사의뢰를 외치며 호들갑을 떨던 정치권이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이 연루된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 분노가 점차 사그라들자 탈당 권유 등의 요식행위로 사태를 수습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료 감싸기나 대선국면의 유불리에만 집착해 얼렁뚱땅 넘겨볼 심산이라면 큰 착각이다. 지지자라 하더라도 부동산투기를 용인해 줄 사람은 없다. 그만큼 부동산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감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부동산 투기와 부패의 고리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정당에 대해서는 읍소하지 않아도 흔쾌히 지지를 보낼 것이다. 정권재창출이나 정권교체를 바란다면 여야 할 것 없이 썩은 환부를 과감히 도려내는 내적 쇄신에 주저해선 안된다. 대충 얼버무리려 하다가는 역풍만 맞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