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세자연맹, “고시‧특수대학 폐지 마땅…임용 후 교육으로 전문성 보강”
집권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23일 “행정고시와 경찰대학, 공무원호봉제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하자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납세자들은 반가움을 표했다.
특히 고시제도는 부르주아 혁명을 거치지 않은 한국에서 지구촌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봉건시대 잔재로, 공무원의 개념과 지위를 ‘국민과 국가를 위한 봉사자’가 아닌 ‘개인의 입신출세 수단이자 벼슬’로 이해하게 만든 제도적 악습이라는 지적이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24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고위관직 지름길인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도 조선시대 과거제도와 같은 한국의 고시제도와는 다른 관료선출 방식이며, 전 세계에 한국과 같은 고시제도는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국립세무대학이 폐지된 것과 마찬가지로 국립경찰대학도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회장은 “공직을 잘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전문성은 임용 후 자체 교육기관에서 수행하면 된다”면서 국세청 예하 국세공무원교육원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국립특수대학을 반대하는 이유는) 같은 방식으로 공직 임용된 사람들이 패거리를 형성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며 “그런 특수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의 공직임용 기회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직업선택의 자유가 침해되는 경향도 있다”고 밝혔다.
가뜩이나 혈연‧지연‧학연 등 전근대적 인간관계가 아직도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주된 원리로 작동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특수대학 인맥은 불가피하게 국가의 근간을 해치는 파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1980년 8월27일 제11대 대통령으로 권좌에 오른 전두환 전 대통령과 집권 민주정의당은 당시 부족했던 세무공무원을 양성하기 위해 경기도 수원시에 2년제 국립세무대학을 설립했다. 이후 2001년 19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국립세무대가 폐교됐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조건 중 하나였던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1999년 단행되면서 폐지에 이르렀다. 국립세무대 전체 동문은 5099명에 이르며, 아직도 국세청과 관세청의 주요 부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세균 전 총리는 5급 행정고시를 폐지하는 대신 5급 공채인원의 절반 정도를 7급과 9급의 내부 승진으로, 나머지 절반은 민간 부문의 전문 경력자를 채용하겠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정 전 총리가 여당 대선후보로 선출되면 국세청 내에서는 실무와 법령정책에 두루 밝은 국립세무대 출신들이 지금의 경찰대학 인맥들처럼 국세청의 최고 인텔리그룹이 된다.
정 총리가 행정고시를 없애겠다는 이유는 고시에 합격하려면 경제력이 뒷받침 돼야 하는만큼, 더 이상 신분 상승의 사다리라는 장점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 총리는 특히 “관가는 고시 출신 중심의 폐쇄적인 조직문화로 고시 출신 이외에는 고위직 승진 기회가 거의 원천봉쇄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몇 년간 국세청 고위직들은 대부분 행시 출신들이 독차지 하고 있다.
정 전 총리는 공무원의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급제로 전환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지금처럼 나이 중심, 연공서열 중심 구조에서는 ▲세대 간 갈등 ▲개인의 의욕 감퇴 ▲경제적 생산성 저하 등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임금과 보상 체계의 변화를 통해 공공부문의 위계적 업무 구조를 개혁하고 조직문화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다.
김선택 회장은 “정부 신뢰도가 높은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는 공무원을 원칙적으로 기업처럼 ‘직무별 수시채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천에서 용(龍) 나기’가 어려워져 교육격차가 신분격차, 부의 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정착된 한국사회. 공직을 ‘출세’의 수단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대표 제도인 행정고시가 사라지는 것이 시대정신이라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