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토부 신설 의무…전산신고 익숙치 않은 노년층 대부분 주민센터서 현장신고
— 전문가, “국세청으로 신고일원화→국세청 국토부에 필요데이터 제공→세금절약”
“납세자의 신고 의무를 지우는 정책 목표가 다섯개면 각각 다른 5개 부처에 똑 같은 신고를 5번 해야 하는 거야? 이 나라는 정부 부처끼리는 협력을 안 하는 거야? 그런 거야?"
국토교통부가 투명한 임대차 시장 조성과 임차인의 권리 보호 강화를 위해 최근 시작한 ‘주택 임대차 신고제’가 시행 한 달여 지난 가운데, 납세자들은 새로 생긴 의무에 따른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국토부 소관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에 임대차 현황을 온라인으로 신고하고 나중에 임대소득세 신고납부를 위해 또 국세청 홈택스(Home Tax)에서 같은 정보를 다시 일일이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이중 발품을 판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개업한 김집중 세무사는 5일 본지 통화에서 “전자신고가 가능한 임대인이라고 하더라도 국토부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에 한 번 입력한 뒤 나중에 임대소득 신고납부를 위해 국세청 홈택스에서 한 번 더 입력해야 한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김 세무사는 “납세자 눈높이에서 보면 주민센터에 가서 임대물건 현황과 임대수입 등을 단순 입력하는 절차이지만, 나중에 세금 신고를 염두에 둬야 하는 데다, 똑 같은 신고를 국세청에도 한 번 더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같은 납세자가 ‘투명한 임대차 시장 조성’과 ‘임차인의 권리 보호 강화’라는 국토부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지자체(또는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에 한번, ‘임대소득세 과세’라는 정책목표를 위해 국세청 예하 세무서(홈택스)에 또 한 번 주택임대차 신고를 이중으로 해야 하는 셈.
납세자의 품은 몇 번이고 아무런 보상 없이 팔아도 되고, 국세청은 부처마다 정보 권력을 지키기 위해 칸막이 행정을 해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국가우월적 적폐행정이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세를 놓는 임대인 대부분이 전자신고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이라 주택 소재 읍‧면‧동 신고관청에 방문 신고하는 경우가 많은 점도 문제다. 주민등록등본이나 인감증명을 떼 주는 공무원들이 하루 종일 단순반복 업무를 하고, 누런 시험지 신청서 2장에 똑 같은 내용을 기재해 법원 민원실에 제출해야 공탁금을 찾을 수 있는 현실이 4차 산업혁명의 선봉 한국에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인 대부분은 스스로 임대소득신고를 할 수가 없다. 주택임대소득세를 계산하려면, ▲임대사업 등록을 했는지 ▲1, 2, 3주택인지 ▲연간 주택임대수입금액이 연간 2000만원 이하인지(넘으면 종합과세) ▲그 2000만원 안에 관리비로 받은 돈이 포함되는 지 등을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임대인들은 임대소득세 신고납부를 앞두고 거의 100% 세무사를 찾게 된다. 세무사 사무실에 가면 세무사가 임대인의 주택임대차현황을 다시 국세청 홈택스에 꼼꼼히 입력해야 한다.
김 세무사는 “국토부는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에 입력된 해당 임대인의 임대금액과 임대수입금액 정도만 자동으로 홈택스에 제공한다”면서 “결국 홈택스를 이용해 주택임대소득세를 신고・납부하는 경우 주택임대차 현황을 빠짐 없이 다시 입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부동산중개인이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에 임대 대상 주택 정보를 입력할 수 있고, 세무사는 ‘세무사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해당 용역을 대리할 수 없다”면서 “부동산중개인은 주택별 건건이 입력할 뿐이기 때문에 2주택 이상인 납세자는 세금 문제 때문에 결국 세무사를 찾아 절세 방안을 찾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임차인들의 관리비를 걷어서 납부하는 경우도 임대수입으로 신고해야 하는데, 일부 임대건물에서는 임대인이 공용시설 관리비를 월세로 걷을 수 없어 순수하게 갹출하는 경우도 있다. 홈택스 입력 땐 이런 문제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임대인이 법인일 경우 이런 문제는 훨씬 더 중요해진다.
결국 세금 전문가들이 대리하는 주택임대차 신고 사항이 더욱 자세하고 정교하며, 정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택임대차 현황 신고를 국세청 홈택스로 일원화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 세무사는 “홈택스의 경우 임대인의 의뢰로 간단히 접근할 수 있지만, 국토부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은 반드시 본인이나 가족들이 인증을 거쳐 직접 신고하거나 주민센터에 가서 신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홈택스로 한 번만 신고하고 국세청이 ‘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토부 정책목표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별, 전자적 방식으로 국토부에 제공하면 문제될 게 없다. 이 법은 한국사회에서 고질적인 부처간 칸막이 행정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특정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데이터 제공과 이용 활성화에 관련 사항을 규정했다. 다른 부처나 공공기관 등에 자체 보유한 공공데이터를 많이 공유한 부처는 기관평가에서 높은 점수도 얻는다.
결국 납세자(임대인)들은 굳이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과 홈택스에 임대차 관련 현황 정보를 두 번 입력할 필요가 없어 납세 편의가 증대되고, 지자체 주민센터 행정인력 낭비도 막아 혈세를 아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김영한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6월1일 ‘주택 임대차 신고제’ 시행을 앞둔 지난 5월 “새 제도는 시장투명성과 임차인 권익보호를 위해 시행되는데, 기본적으로 임대소득 과세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면서 “임대차신고제에 따른 정보를 과세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 없다는 것은 국세청 등 과세당국에 확인했고, 국세청은 자체 보유 정보를 통해 부과가 이뤄지고 있어, 새 제도로 추가 과세정보 활용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세무사는 “시장투명성을 위한다는 국토부가 납세자로부터 받은 정보를 과세 정보로 제공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라고 반문하고 “납세자가 저마다 다른 부처 목적을 위해 똑 같은 신고의무를 지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밝혔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 “행정 편의성을 생각하면 홈택스로 주택임대차 신고를 일원화 하는 게 맞지만,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본지에 밝혔다. 국토부를 의식한 조심스런 발언이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그러나 “국민, 납세자에게 국가는 한 팀이지, 복수 팀이 아니다”면서 “한국에서는 왜 국민들이 정부 부처간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용인해 주면서 자신의 돈으로 행정협력비용을 충당하는가”라고 되물었다. 김 회장은 “국가는 행정부처 전체 이해관계를 총화한 단위로,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행정시스템을 운영할 책무를 갖는데, 한국 공직사회는 부처가 납세자에 지우는 규제비용을 너무 쉽게 당연시하고 공무원 늘리는 데도 저항가미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임대 대상 주택 소유주가 보증금 6000만원 또는 월세 30만원을 초과하는 주택을 지난 6월 1일 이후 임대할 경우, 임대차 계약서 또는 계약 관련 금전거래내역이 적힌 통장사본 등 계약을 입증할 서류를 갖고 직접 주민센터에 가서 주택임대임대차 신고를 해야 한다. 서류를 촬영하거나 스캔해서 국토부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에서 전자신고를 할 수도 있다.
신고 때는 당사자 인적사항과 임대차 주택 소재지, 종류, 건물명 및 호수, 임대면적, 방의 수 등의 목적물 현황과 보증금과 월세, 계약기간, 계약체결일 등 임대차 계약 내용을 반드시 신고 서식에 적어 제출해야 한다.
만약 30일 이내에 주택 임대차 신고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기한이 지나 늦게 신고하면 지연 과태료가, 지연 과태료를 안 낼 목적으로 거짓신고한 경우 거짓신고 과태료가 각각 부과된다. 다만 2022년 5월까지는 제도 홍보기간으로 설정,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