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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餘白] “미워도 다시 한 번 믿어보자”
[경제餘白] “미워도 다시 한 번 믿어보자”
  • jcy
  • 승인 2008.06.1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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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永哲 편집국 부국장
   
 
 
100만개의 촛불을 보았는가. 민심의 장강(長江)을 보았는가.
민주화를 요구했던 21년 전의 거대한 함성이 2008년 6월10일 쇠고기수입 반대 촛불로 승화되어 활활 타 올랐다.

남대문에서 세종로까지 60만명(경찰추산 10만)의 서울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섰다. 촛불은 꽃이 되고 사랑이 되어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에게 민심이 천심임을 알리기 위해 청와대앞 까지 진입하려다 ‘명박 산성’에 가로막혀 더 나아가지 못했다.

세종로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 컨테이너 박스를 겹쳐 용접작업까지, 철옹성을 축조해 놓아 시위대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흥분하지 않았다. 철옹성 컨테이너 벽에 ‘명박산성’이라고 별명을 표기하고, 전경버스엔 ‘곧 대통령을 태울 차니까 파손하지 말자’는 펼침막을 걸어 놓고 웃고 떠들며 즐겼다. 전경들에게는 “수고 합니다”라며 다가가 초콜릿과 물병을 건네주는 모습도 눈에 띠였다.

일부 흥분한 시민이 컨테이너 철벽을 타고 오르자 “내려와”를 연호하며 폭력시위를 스스로 자제하도록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리고 “‘명박산성’ 너머는 미국 코리아 주(州)니 진입하지 말라”는 코믹한 표현에 모두가 폭소를 자아냈다. 어느새 우리 시위문화는 선진국 수준 이상인데, 정치는 후진만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진짜 시위현장은 창조적 공연장이고 열 받아 뿔난 시민들이 스트레스를 확 푸는 놀이 장 같았다. 앞서가는 드럼행진 팀은 순식간에 퍼레이드를 펼치고 구호는 랩이 되어 촛불과 함께 잔잔한 강물의 여울이 된다.

사랑과 배려도 물결친다. 어떤 아저씨는 한 광주리 빵을 사서 학생들에게 나눠 주고, 어떤 아주머니는 김밥과 물을, 정신없이 바쁜 의료봉사단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흐르고, 스님과 수녀가 나란히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386과 소녀시대가 다 함께 노래를 불렀다.

주최측이 마련한 민주화 무대위에는 70년대 가수 양희은이 ‘아침이슬’을 80년대의 안치환이 ‘광야에서’를, 월드컵의 상징 윤도현이 ‘아리랑’을 노래해 민주화운동 21주년을 기렸다.

참으로 놀라운 시위문화는 계속 되었다. 성숙한 시민정신은 꾸준히 쓰레기를 주워버리고, 과격한 행동과 싸움은 말리고, 노래하고, 토론하고, 사랑하고, 웃고, 울고 즐기는 시위현장은 새벽까지 축제장으로 승화 됐다.

누가 이들을 ‘사탄의 무리들’이라고 돌을 던지랴. MB는 이제 민심수습을 위해 국정쇄신이라는 새 카드를 뽑아 들었다. 내각과 청와대 측근 중에서 ‘고소영’ ‘강부자’를 털어 낸다고 하고, 내각도 총 사퇴를 선언했다.

인적 쇄신이 성공적이든 쇠고기 추가협상이 재협상 수준이든 민심이반을 되돌려 놓기엔 너무 멀리 온 느낌이다. 새 정부 취임 100여일 만에 마치 정권말기의 레임덕 현상을 보는 것 같다. 마침내 터져버린 여권 내부의 분열과 파워게임은 어찌하랴. 사면초가의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기엔 대통령의 힘이 역 부족인 것 같다.

경제 5단체는 실정을 개탄하며 경제난국을 돕는 배려로 촛불시위를 자제해주고 야권도 장외투쟁을 접고 국회로 돌아가 민생국회를 개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우리들이 뽑은 대통령을 다시 한 번 믿어보자.

이 길만이 위기의 한국을 구하는 애국이고 구국의 길이다. 성숙한 시위문화는 외국에다 수출하고 이제 학생은 학교로, 직장인은 일터로, 주부는 집으로, 그리고 촛불은 가슴속에 간직하고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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