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는 최근 회계법인의 부실감사로 인한 피해자가 속출하자 관련 민·형사 사건에서 회계법인의 부실감사에 잇따라 법적 책임을 묻고 있다. 특히, 법원은 회계법인의 외부감사 과정에서 고의성이 없어도 부실감사로 판정해 투자자들의 피해를 인정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서울에 사는 이모(37) 씨는 코스닥 상장업체인 A 기업에 약 1억 원을 투자했다. 당시 이 씨는 A 기업의 외부 감사를 맡았던 S 회계법인이 A 기업의 재무제표에 대해 2년 연속 ‘적정 의견’을 낸 것을 중요한 투자 근거로 삼았지만, 불과 8개월 후 A 기업이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되면서 투자금 전액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알고 보니 S 회계법인의 적정의견과 달리 A 기업의 재무제표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증권선물위원회는 2010년 12월 S 회계법인에 대해 부실 감사의 책임을 물어 76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결국 A 기업이 이듬해 1월 상장폐지되자 이 씨 등 투자자 6명은 “회계법인의 부실 감사로 2억2000여만 원의 피해를 봤다”며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법원은 회계법인의 책임을 20%로 인정하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1서울중앙지법은 지난 5월 주식투자자 강모 씨 등 124명이 “부실 감사로 손해를 봤다”며 또 다른 S 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낸 25억 원대 청구소송에서 회계법인 측의 20% 책임을 인정하며 5억1000여만 원의 배상판결을 내렸고, 2월에도 황모 씨 등 33명이 같은 이유로 D 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회계법인 측의 20% 책임을 인정하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비록 고의성이 없었다 하더라도 회계법인이 성실하게 감사를 하지 않아 투자자들이 손해를 봤다면 회계법인이 그에 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다. 회계법인의 부실 감사에 대한 이 같은 사법부의 경고는 민사사건뿐 아니라 형사사건에서도 잇따르고 있다. 5월에는 부산저축은행의 감사를 담당한 회계사들에 대해 분식회계 등의 부실 감사를 회계사가 알 수 있었음에도 모른 척했다는 ‘미필적 고의’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하나의 강신업 변호사는 “지난해 저축은행 사건 등에서 부실 감사로 손해를 본 피해자들이 속출하면서 회계법인 측에 책임을 물리는 민·형사 사건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며 “회계법인의 부실 감사로 손해를 입은 이들이 많은 만큼 앞으로도 이 같은 소송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09년∼2012년 10월) 회계법인 및 회계사의 부실감사로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은 횟수는 전체 186건이다. 특히 부실감사를 이유로 제재조치를 받은 비율은 2009년 13.9%에서 2012년 47.3%로 3배 이상 급증하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