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정 회장과는 12년째 ‘단짝’ 그래도 3선 야욕 만은 저지
회계프로그램 확보 1등공신… 세계세무사정상회의 개최성공
지방회장들, 사분오열의 불통시대 소통리더 최적임자로 추대
성품도 형제가 많은 집안의 맏형 같아 유화적이고 이해심이 많아 사분오열 분열조짐을 보이고 있는 지금의 세무사회를 잡음없이 이끌어 나갈 최적임자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 한때는 정구정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해 왔던 그가 차기 한국세무사회장에 도전장을 냈다. 특히 최근 서울지방회와 본회간의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이창규 전회장은 정말 조용한 가운데 소리 안나게 할 일은 다 하면서 회를 잘 운영해 왔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할 것이다.
회원 모두가 잘 알다시피 지방회는 독자적으로 쓸 예산이 없어 현행 제도하에서는 뜻이 있어도 할 만한 사업을 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G20 국가정상회의에 맞추어 세무사제도가 가장 잘 되어있는 5개국도시세무사 정상회의를 많은 사람들이 놀랠 정도로 성공적으로 개최하였고, 청년일자리 창출과 세무사사무소 인력난 해소를 위한 서초구청과의 세무회계사무소 전문인 양성과정 창설, 특성화고교 졸업예정자에 대한 세무회계사무소 전문인력 양성과정 창설 등을 통하여 회원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애써왔다.
서울지방국세청장과 영세사업자에 대한 무료 세무상담 및 불복업무 무료대행 서비스 제공협약과 창업자에 대한 각 종 행정업무 지원협약을 맺는 등 세무사가 국민속에 공익단체로 각인시키는데 힘써 왔다.
그런가하면 세무사회의 오랜 숙원사업 중 하나인 세무회계프로그램을 확보하고 무료공급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데 1등 공신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많은 회원들로부터 “친화력이 뛰어난 회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월7일 차기 한국세무사회 회장에 출사표를 던지고 사방팔방 자신을 알리는 홍보에 여념이 없는 그를 만나 그가 꿈꾸는 미래의 한국세무사회의 자화상을 그려 봤다.
귀하는 공직에도 오래 근무하였고 세무사 개업 후 회직을 두루 거치면서 세무사를 위한 봉사활동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맡았던 회직과 역할에 대하여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1968년도에 세무공무원에 발을 들여 놓은 후 1991년도에 퇴직했습니다. 그러니까 23년을 공직에 머물면서 주로 국세본청에서 감사업무(8년)와 조사업무(12년)부서에 만 20여년간(국세청 조사계장, 서울청조사관리계장, 특별조사담당 등)근무 하다가 91년말에 퇴직하였습니다. 92년도에 세무사 개업 후 2000년 5월에 서울지방세무사회 부회장, 2003년 4월에 한국세무사회 부회장을 거쳐 2008년 5월에 서울지방세무사회 회장에 당선되어 4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특히 회직하는 동안 잊지못할 일은 2003년도에 현 정구정회장의 런닝메이트 부회장으로 한국세무사회 부회장직을 수행하면서 회계사 및 변호사에 대한 자동자격 부여제도 폐지를 위하여 국회에서 거의 살다 시피 했던 기억과 결국 2011년도에는 또 서울회장으로 정구정회장을 도와서 2003년도에 못 다 성취했던 꿈을 이룬 것은 큰 영광이고 잊지 못할 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세무사회 조직상 지방회장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인데 2008년 5월 서울지방세무사회장에 당선되어 재임까지 4년동안 큰 업적을 남긴 회장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서울지방회는 전국 회원의 과반을 육박하는 4,5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단체입니다. 많은 회원이 소속된 단체이다 보니 자체적으로 할 일도 많고 해보고 싶은 욕심도 많았습니다만 예산의 한계와 스스로 할 수 있는 권한도 회칙상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저는 서울세무사회 임원은 물론 본회 임원간에도 교류와 소통을 통해서 해야 할 일을 설득하고 협조를 받아 잡음없이 할 일을 제대로 그리고 많이 했다고 자부합니다. 제가 서울세무사회장을 하는 동안 회장사무실은 세무사들의 ‘사랑방’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북적거렸습니다. 특히 매주 상임이사회가 있는 날에는 6개 지방회장 및 본회 임원들이 다 모여 본회 상임이사회에서 못다한 이야기보따리를 풀기도 하고 세무사업계의 정보 및 세정가의 새로운 정보가 교류 되는 등 서울회장 방은 소통하고 화합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는 잠시 찻잔을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을 잇는다.
“저가 재임시 이루어 놓은 업적 중 칭찬받아 마땅한 것은 첫째, 예산이 없는 가운데도 불구하고 ‘세계주요도시 세무사정상회의’를 훌륭하게 마무리한 한 것. 둘째, 독자적인 회계프로그램도 확보. 셋째, 공익적인 활동으로 서울지방국세청과 협약해 사업자 창업가이드를 매뉴얼화하여 사업자등록신청시에 세무사에게 우선 설명받도록 했고, 세무서에 무료 세무상담코너를 설치 운영한 것 등입니다.”
이밖에도 그는 회원사무실 업무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회원 및 사무소 직원에 대한 양질의 교육을 최대한 많이 개최했고 성과도 있었다고 자평한다.
그는 또 최근 서울지방회장과 본회간의 마찰과 잡음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한다. “이제 세무사회는 1만명이 넘는 매머드 단체가 되었고 그만큼 지방세무사회도 거대화 되었습니다. 이제는 지방회의 완전한 독립은 아니더라도 예산의 범위 내에서는 뭔가 회원을 위한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예산 총액주의로 하고 지방회별 실정에 맞는 연수교육을 실시케 하는 등 지방회도 역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세무사들의 오랜 숙원인 자체 세무회계프로그램 확보를 위해 애써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세무사랑’에 대한 저작권이 이창규 전 회장 개인명의로 등록이 되어 있었는데 지난 2월20일 ‘세무사랑2’로 하여 한국세무사회로 이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세무사랑’프로그램은 소송이 진행중인데, 세무사들이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는지요?
“세무회계프로그램 자체확보 역시 우리업계의 20년 숙원사업 이었습니다. 이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단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갔습니다. 자체 프로그램이 확보되기 까지는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회원의 권익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세무사회와 회직자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회원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무사회의 책임있는 직에 오른 분은 누구나 이에 대하여 고뇌를 하지 않는 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막대한 개발비용과 유지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어 엄두를 못냈던 것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대부분의 회원이 사용하는 D사는 회계프로그램시장을 사실상 독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회원이 이용하면서 서비스 불만과 유지보수비의 증가로 불만이 많았는데 이제 독점체제로 돌아섰으니 예상되는 문제점은 언급을 하지 않아도 회원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자체 세무회계프로그램 확보에 소극적인 본회의 태도에 걱정들을 많이 했으며, 불만들도 많이 표출했죠.”
그는 “뉴젠이라는 새 프로그램회사가 탄생하였고 이 회사는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우리 세무사의 협조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본회 주요 임원들과 서울회의 임순천부회장을 실무책임자로 하여 차제에 뉴젠의 프로그램을 우리세무사회 프로그램으로 흡수하는 방안을 강구하게 됐고, 이후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2011년 5월19일 한국세무사회 상임이사회와 이사회에서 한국세무사회의 공식프로그램으로 결정하는 결의를 끝냈습니다.
‘세무사랑2’ 세무사회 자체 프로그램 확보까지 외로운 투쟁
“세무사 1만명 시대 소통없인 화합결속과 내실 추구 어려워”
원칙이 바로 서는 세무사회, 품위있는 세무사회 지향에 최선
그런데 정구정회장께서 갑자기 진행을 보류하는 바람에 아직까지 세무사회의 소유가 아닌 6개 지방회장들의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저작권등록 명의는 지방세무사회가 등록된 단체가 아니므로 편의상 대표인 제 명의로 등록된 것입니다만 만시지탄이긴 하나 지난 2월20일 드디어 한국세무사회로 이전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동안 함께 고생 많으셨던 지방회장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회계프로그램 소송건에 대해서 그는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취득할 때부터 법률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해 계약을 맺었으며 현재 우리 회원이 사용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회에서도 이에 기초해 태동한 ‘케이랩(kelep)’으로 국가공인 자격시험을 치르게 되었으며, 프로그램 자체확보가 정착되는 시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정구정회장과는 10년이상을 늘 함께해 온 사람으로 다른 세무사들로서는 두 사람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회장이 3선 출마를 하게되면 출마를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회장이 출마를 해도 완주할 것인가요?
이 대목에서 그는 만감이 교차되는 듯 한참을 기다렸다가 입을 뗀다.
“2000년도 서울회부회장에 당선된 자축연 자리에서 처음 알게 된 정구정회장은 세무사업으로서는 선배로서 업계에 대한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세무사제도 발전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여 애정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부족한 힘이나마 지금까지 변함없이 힘을 보태어 주었습니다. 정회장이 회장 출마 5회중 3회(1회는 만나기 전, 또 1회는 서울회장 재임 때 이어서 함께 못함)를 런닝메이트 부회장을 함께 했다는 것은 서로 신뢰하는 정도가 남다르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3대 회장 임기를 마치고 박모 감사와 송사사건에서도 많은 힘을 보태 주었을 정도이었고, 지난 세무사회장 선거때도 서울회장 신분으로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아 도와 주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이 분에 대한 신뢰와 능력을 믿고 또 2003년도 런닝메이트 부회장 시절에 못다 이룬 세무사법 개정을 완성하는데 최적임자라는 생각에 그렇게 한 것이었다고 술회한다. 결과적으로 자신과 함께한 정회장은 결국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성공하였고 많은 회원으로부터 열화 같은 칭송을 받고 있으며 회칙을 잘 모르는 일부 회원들이 한번 더 회장을 하라는 부추김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정회장은 세무사법 개정을 성공시키고 나서 초심(?)을 잃었다고 생각되는 일을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 “잘못 말하면 그분(정회장)과의 오해도 생기겠지만 최근들어 정회장은 성과에 도취되어 독선적인 회무집행이 잦고, 오만함까지 보이며 측근이나 참모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작금에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3선에 대한 욕망은 본인 자신의 평소 소신이나 지론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선으로 인한 폐해가 많다고 희망자가 없는 지역회장까지도 평생 2번 이상은 할 수 없게 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고 그래서 2012년 6월 7일 회칙 개정시 모든 선출직은 회장과 마찬가지로 1차에 한하여 중임하는 제도로 변경하려 하였으나 우선 감사만을 추가 하는 것으로 하였던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정회장 자신이 중임의 뜻을 옳게 알고 해석했던 것을 갑자기 과거 한번 잘 못된 관행을 찾아 꿰 맞추려 하는 것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욕심과 자만이라 할 것입니다.
옳게 제정된 규칙이 회 발전을 위해 지장을 초래한다면 후환이 없도록 회칙개정을 통하여 바로잡고 진행하는 것이 진정 올곧은 리더의 자세라고 할 것입니다.”
최근 세무사회의 불협화음에 대해 바깥에서는 말들이 많습니다.
“요즘 또 걱정되는 것은 우리가 세무사법 개정을 통하여 얻은 수혜(?)는 상대방에게는 치욕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겸손한 마음으로 조용히 있어야 될 때도 되었건만 1년이 넘었는데도 공사석은 물론 세무사보에는 거의 한 회도 거르지 않고 자신의 공과를 대서특필 합니다. 이는 상대방의 분심을 불러 일으키는 일로서 도전하여 오라고 부추기는 일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변함없이 10년 이상을 함께 해 온 사람으로서 초심을 잃은 정회장을 보면서 안타깝고 애처롭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우리회가 너무 피로에 지쳐있고 조직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조속히 처방이 되지 않으면 앞으로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우리회의 현 모습에 딱 들어맞는 속담은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 는 그 말이 처방전이고, 그렇지 않으면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말이 결론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출마의 변을 간략하게 말해달라는 질문에 “지혜가 많이 부족함에도 대부분의 지방회장님들과 임원들로부터 현 세무사회를 정도로 가는 세무사회로 이끌수 있는 적임자라는 격려와 추천이 있었고, 원칙이 바로 서는 세무사회, 정도를 걷는 세무사회, 품위있는 세무사회, 당당한 세무사회를 만드는데 신명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차기 회장에 감히 도전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회직봉사자의 동지로서 정구정회장의 공과에 대하여 평을 한다면?
“제가 정회장에 대하여 애정을 갖게 된 이유가 그랬지만 타고나신 집념과 열정은 보기드문 분임에는 틀림 없으며 본 받을 점이 많은 분이지요. 그래서 그 어려운 세무사법도 개정하였다고 봅니다. 정회장 스스로도 그 점이 타고났다고 생각하고 있어 다른 사람(임원)의 회무에 대한 부족한 열정에 불만이 많았으며, 그래서 자연 모든 업무처리를 만기친람(萬機親覽·모든 업무를 직접 챙기는 것)식으로 흐르고, 부지불식간에 독선에 빠지고 소통이 안되는 조직의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작금의 우리회 운영스타일을 보면 조직의 존재의미가 있는가 의심스럽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회를 위해 봉사하신 역대 회장님들께서 모두 그 시대적 요청에 따라 선출되셨고 모두 그 역할을 충실히 하셨던 것입니다. 정회장께서도 필요한 시기에 회장에 당선되어 아주 필요한 일을 성공리에 일궈 냈으므로 당신 자신에게는 큰 영광이요 우리 회원들에게는 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난 후 “하지만 정치세계에서 보듯이 강한 자신감은 시간이 갈수록 오만과 독선에 빠질 수밖에 없어 중임제한 이라는 엄격한 규정을 두고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분이라도 이 선을 넘을 때는 용서를 하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요 순리인 것입니다.
이 순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무리수를 두어 성공한 분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가 있었습니까?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인데 12년동안 동지로서 지켜온 사람으로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특별히 출마의 목적이나 동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위에서 말씀 드린 대로 회장은 그 시대적 요청에 따라 회원들이 판단하여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세무사회는 내실을 기 할때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화합과 소통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까지 일구어 온 소중한 우리의 권익을 지키는 것은 혼자의 힘으로는 어려우며 단합된 조직의 힘이 필요한 때 인 것입니다. 회칙을 어기면서 3선이 된다 한 들 화합과 소통은 염원에 불과할 것이며 대 분란의 씨앗이 될 것이 명약관화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과정을 지켜 본 다수의 지방회장님들과 본회의 많은 임원님들께서 그 간의 회무를 지켜보면서 소통과 화합을 잘 할 수 있고 조직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서 저를 지목하여 추천하였고 그래서 우리 회를 위하여 마지막 봉사를 충실히 해보겠다는 각오로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저는 세무사라는 직업이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럽기를 소망합니다.”
그는 “▲원칙이 바로서는 세무사회 ▲정도를 걷는 세무사회 ▲품위있는 세무사회 ▲당당한 세무사회를 만드는데 신명을 다 바칠 각오로 출마했다”고 말했다. 대담= 정영철 편집장
이창규 전 서울회장 프로필
-덕수상고 국제대 서울법대 조세전문가과정 수료
-재직시 중부청 법인 국세청 감사 국세청 조사국
-서울청 특별조사담당사무관 국세청조사계장 서울청조사관리계장
- 현재 세무사개업 (현, 세무법인 리젠 대표이사)
-서울지방세무사회 부회장
- 한국세무사회 부회장
- 서울지방세무사회 회장
- 공인중개사 시험출제위원
- 재경부 세무사징계위원
- 한국조세연구소 운영, 연구위원
-(현)서울시 지방세 심의위원
-(현)서울고등검찰청 항고심사위원
-(수훈) 근정포장(1회) 대통령표창(1회) 재경부장관겸부총리표창(2회) 서울특별 시장표창(2회) 행안부장관표창(2회) 국세청장표창(7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