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법을 놓고 막혀버린 정국이 결국 출구를 찾지 못하면서 당장 26일부터 예정된 분리 국정감사 실시가 사실상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국세청 등 일선 피감기관들이 큰 혼란에 빠졌는가하면 올해 결산안 및 내년도 예산안 심사 등 현안 경제현안들도 정쟁에 발목잡혀 자칫 표류될 위기를 맞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중진의원은 25일 <국세신문>과 통화에서 "내일부터 예정된 국정감사는 열리지 않을 것 같다"며 "오늘 예정된 국회 본회의도 열리지 않을 공산이 높다. 국정감사는 9월 말로 연기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앞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휴일인 24일에도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신경전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분리국감의 근거가 되는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일정에 대한 공식 회동은 물론 이렇다 할 물밑 접촉도 시도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
새정치연합은 일단 25일 의원총회를 열어 국감 분리실시나 민생법안 별도 처리 여부에 대한 당의 입장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나 의원들을 상대로 한 사전 조사에서 특별법 처리 없이 분리국감은 안 된다는 의견이 높게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정치권에선 사실상 분리국감은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세월호법 문제와 관련해 사법체계 존중 원칙을 거듭 강조하며 민생법 분리처리 입장에서 요지부동이고, 새정치연합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문제 해결을 촉구하면서 세월호법 재협상안에 대한 추인을 계속 유보해 마땅한 접촉점을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여야는 휴일까지 일단 냉각기를 거친 후 25일 내부 입장을 정리한 후 국감진행과 관련해 가타부타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었다.
앞서 새누리당은 22일부터 이틀간 이미 천안에서 국회의원 연찬회를 열고 이 문제에 대한 내부 입장을 청취했다.
새누리당 원내 관계자는 "새정치연합이 결정을 하나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며 "전화로 실무 접촉이야 이뤄질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만나도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핵심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여당과 접촉할 계획은 없다"면서 "의사일정에 대해서도 의총에서 의견을 들어본 후에 여당과 논의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당장 세월호법 문제가 극적 타결되지 않는 한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국감법을 비롯한 민생법 분리처리에 새정치연합이 동조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 현재로선 분리 국정감사 실시가 어려운 상황이다.
새누리당측은 "현재로선 25일 본회의 개최 여부도 불투명하고 당분간은 정상적인 국회 운영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전망했고, 새정치연합측도 "25일 본회의는 의사일정 자체가 확정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세월호법이 최고 우선사항이라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유족과 직접 만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부 제기되고 있고, 새정치연합은 지속적으로 여야와 유족이 함께 참여하는 3자대화를 압박하고 있어 교착 상태에 일부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특히 야당내에서는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분리국감을 예정대로 진행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은데다 오는 26일 1차 국감에 들어가기에는 물리적인 준비 시간도 부족해 국정감사를 연기, 예년처럼 정기국회 때 실시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관련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대체로 분리국감을 연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편"이라면서 "세월호 문제 등으로 국감에 대한 준비가 미흡한 상황에서 만약 국감을 내실있게 하지 못하면 부실국감에 대한 책임을 야당이 전적으로 져야 하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분리국감을 당초 예정대로 26일부터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현숙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25일 본회의를 통해 분리 국감 실시 법안을 통과시킨 후 26일 예정대로 국감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 공식적인 당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김현숙 대변인은 “새정치연합은 몰아치기식 국감을 개선하자며 자신들이 주장한 분리국감을 반쪽짜리로 만들고 있다”며 “행정부 견제와 감시라는 국회의 고유권한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라며 분리국감법 처리를 위해 오는 25일 원포인트 본회의 소집을 거듭 촉구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역시 분리국감 연기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기자들과 만나 "국감이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세월호 특례입학 법안은 통과시키는 대신 국감을 10월로 연기하는 방안을 여야가 협의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기재위 소속 모 의원실 관계자는 "국감에서 제대로 된 질의를 하고 자료를 내려면 피감기관에 자료를 먼저 요청하고, 이를 받아본 뒤 다시 보완해서 자료를 요구하는 등의 작업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국세청장 인사청문회가 끝나고 시간이 촉박해 제대로 국감을 준비하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정무위 소속 의원실 보좌관도 "이번 국감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며 "그야말로 부실국감이 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올해부터 8월, 10월로 나눠서 하다보니 휴가기간이 겹쳐 한달 동안은 아무런 준비를 못해 집중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안을 둘러싼 정국 경색이 이어지면서 국정감사 시작 하루 전인 25일까지 '분리국감'을 규정하고 있는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이 통과될 수 있을 지도 주목된다.
당초 국회는 올해 처음 분리국감을 실시키로 하고 국감을 26일부터 9월4일까지 1차, 9월30일부터 10월9일까지 2차로 나눠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분리국감이 계획대로 실시되려면 25일까지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고, 아울러 1차 국감 대상 기관인 398곳 가운데 군인공제회·농협은행 등 23곳은 국감법 개정과 별도로 본회의에서 승인해야 국감을 실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은 여야 간 합의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야당에서는 세월호 정국에 관심이 쏠린 틈을 타 여당이 '후다닥 국감'을 해치우려는 계산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감의 내실화를 위해 현실적·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치평론가 유용화씨는 "정치권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국감은 지금처럼 세월호 특별법 같은 큰 정국 이슈가 있을 때엔 오히려 묻히기 쉽다"며 "통상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은 상임위인 만큼 상임위를 활성화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분리해서 하든 한꺼번에 하든 중요한 건 의원들의 전문성"이라며 "전문성이 없는 상태에서 기간만 나누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세청 본청을 비롯, 국감 피감기관들은 국정감사 시행여부가 불투명해지자 크게 당혹해하면서 업무차질 등 큰 혼란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국세청의 경우 지난주부터 국감준비를 위해 본청 5층 조사국과 운영지원과 일부 사무실의 사무용품 등을 밖으로 빼고 공간을 비워두는 등 직원들은 업무 불편을 감수하면서 방송 중계 장비 등 제반 준비를 해왔는데 국감실시 여부가 불확실해지자 어찌할 바를 몰라 전전긍긍해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약 한달 전부터 기재위원들로부터 요구받은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 자료를 준비하느라 연일 야근을 해왔는데 국감이 연기된다는 말에 힘이 쫙 빠진다"며 "국정감사가 미뤄질 경우 또 다시 쏟아질 의원실의 자료요청을 생각하니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