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 “법 고쳐 상속재산 평가액과 상속인 처분후 취득가액 기준 맞춰야”
“상속받은 재산 한도 내에서 물려받은 빚을 갚겠다”는 조건(상속한정승인)으로 상속재산을 물려받은 납세자(상속자)가 국세청의 난데없는 양도소득세 부과에 당황했지만, 현행법상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소득세법’에 “자산이 유상으로 사실상 이전되는 것”을 ‘양도’로 규정, 상속한정승인 과정에서도 이런 양도가 이뤄졌으므로 양도소득세를 피할 길이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고은희 변호사는 20일 본지와 통화에서 “납세자에게 유리한 대법원 판례가 있긴 하지만, 현행 세법과 조세심판결정례에서는 상속세가 없다고 무턱대고 상속한정승인을 했다가 양도소득세 등 세금 폭탄을 맞은 사례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현행 상속 관련 제도에 따르면, 물려받은 상속재산과 빚 중에서 빚이 더 많다는 것이 분명할 때 물려받는 사람(상속인)은 상속포기를 통해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런 판단을 하기가 모호한 경우, ‘상속한정승인’ 제도를 이용하는 게 낫다.
망자(피상속자)로부터 물려받은 빚 때문에 상속자의 고유재산을 보호하려는 취지로 ‘상속한정승인’ 제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속한정승인’은 상속 개시가 있었던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현행 세법에서는 세금문제를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신고한 납세자에게 무신고‧무납부 가산세 등을 얹어 양도소득세를 과세하는 실제 사례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고은희 변호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한 사례에 따르면, A씨는 부친 사망 뒤 공동상속인인 어머니, 형과 함께 토지와 지상주택을 상속받았다.
A씨 등은 상속재산보다 채무가 많다고 판단, 법원에 ‘상속한정승인신고’를 했다. 신고가 받아들여졌고 상속재산은 임의경매절차에 따라 매각됐다. 매각대금은 모두 채권자들에게 배당됐고 A씨 등은 양도세 신고를 하는지도 몰랐다. ???
그런데 관할 세무서에서는 A씨 등에게 “재산에 대한 대금을 배당 받지 못했다고 해도 상속재산에 대해 양도차익이 발생한 것은 변함이 없으니 양도세 납세의무가 있다”고 알려왔다. 세무서는 게다가 신고불성실 등을 이유로 가산세까지 추징하려고 했다.
A씨 등은 이에 불복,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했다. 경락 처분해 생긴 돈은 전액 고인(피상속인)의 빚을 갚는데 사용돼 A씨 등이 손에 쥔 돈이 한푼도 없는 데 무슨 양도소득세냐는 것. 상속받은 재산은 없고 상속포기를 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양도소득세를 과세한 세무서의 처분은 부당하다는 주장이었다.
조세심판원은 그러나 세무서의 손을 들어줬다.
‘소득세법(제88조 제1항)’에 따른 양도의 정의, 민법(제1028조)상 ‘한정승인’의 정의 등을 근거로 “자산 처분이 소유자(피상속자) 자의에 의한 것인지 경매 등과 같이 자의에 의하지 않은 것인지 여부는 ‘양도’ 판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민법’에서는 ‘한정승인’을 “상속인이 상속으로 취득할 재산 한도에서 피상속인의 채무와 유증을 변제할 것을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심판원 결정은 양도소득이 발생했다면 상속인에게도 양도소득세가 부과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상속인이 상속을 ‘한정승인’한 사실은 양도소득세 납세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고은희 변호사는 그러나 “다른 대법원 판례에서는 양도소득세 채무를 두고 상속채무 변제를 위한 상속재산 처분과정에서 부담하게 된 채무라고 보고 이 역시 상속 비용에 해당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속비용에 해당하는 조세채무에 대해서는 상속재산 한도 안에서만 책임지면 된다고 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한정승인을 하는 상속인은 상속재산에 발생하는 채무를 재산 범위 내에서만 해결하기 위함인데 대법원에서는 본 사안처럼 상속재산에 대한 경매가 종결된 후에 양도소득세가 부과된다면 상속인에게 채무를 부담하는 것과 같다”고도 지적했다. 세금문제에 대한 책임 범위가 제한될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설명이다.
‘소득세법’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현행 ‘소득세법’ 양도소득세 조항에서 ‘상속인에게 한정승인된 재산 경매(매매) 때 경매(매매)금액이 망자(피상속인)의 사망 전 채무에 충당되는 경우, 그 충당되는 금액을 경매(매매)금액(양도가액)의 취득금액으로 한다’는 조항이 추가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상속‧증여세법‘까지 변경하려면, ‘소득세법상 이런 경우가 발생할 때는 그 취득금액으로 본 금액을 상속세법상 시가로 본다’는 내용이 추가될 수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피상속인의 ‘상속세법’상 평가액(자산, 부채)과 상속인의 경락(매매)시 취득가액을 동일 기준으로 평가해 차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