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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愚問> 독립운동은 왜 했지?
[특별기고] <愚問> 독립운동은 왜 했지?
  • 日刊 NTN
  • 승인 2015.11.1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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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선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얼마 전 국사편찬위원장의 기자회견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으니 정부가 결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건국이란 역사적 사실, 즉 사실(史實)을 정부보고 결정하라니. 더 놀라운 것은 교육부가 올 9월 역사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꿨으나 ‘건국일’이나 ‘건국절’이란 용어는 쓰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무척이나 의아했지만 알고 보니 건국일은 역사학계의 뜨거운 논란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이 사안 역시 보수와 진보로 편을 갈라 맹렬히 싸우는 중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승부가 진작 판가름 난 이념 전쟁과 체제 논쟁이 유독 한반도에서만 무서운 생명력을 발휘하며 극성을 부리는 형국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건국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상해에서 출범한 1919년 4월11일이 맞다는 입장과 대한민국이 수립된 1948년 8월15일이 옳다는 견해가 맞서 있다. 진보 진영은 헌법 전문에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이라고 명시된 만큼 대한민국은 1919년 4월11일에 건국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이와 달리 헌법 전문은 ‘정신적 계승’을 의미할 뿐이고 진짜 건국은 국가의 3요소인 국민, 영토, 주권을 갖춘 1948년 8월15일에야 비로소 이뤄졌다는 게 보수 진영 논리다. 작금에 전개되고 있는 좌편향 역사교과서 논쟁에서 검정교과서 대부분이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건국’으로 각각 기술해 국가의 정통성이 마치 북한에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이 대목에서 어리석은 질문을 던져 본다. 도대체 독립운동은 왜 했고 독립운동가는 왜 불렀으며 독립투사들은 왜 기리는가? 일제 강점기 35년 동안 왜 ‘나라 없는 백성’이라고 자조하며 ‘망국의 한(恨)’을 뼈저리게 토로했는가? 1919년 4월11일이 건국일이라면 적어도 그날 이후에는 국가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이므로 이런 표현들을 쓰면 안 된다.

멀쩡한 독립국가에서 망국이나 독립운동 운운하는 것은 이만저만한 자기모순이 아니다. 조선건국동맹을 1944년에 조직하고 해방이 되자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결성을 주도한 해방 공간의 좌파 지도자 몽양 여운형 선생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한민국 건국일이 1911년 4월11일이라고 고집하려면 먼저 이런 우문(愚問)에 그럴싸한 현답(賢答)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건국일을 언제로 정하느냐로 죽고 살 일은 아니다. 일테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1919년 4월11일을 건국일로 정해도 그만이란 얘기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1948년에는 정부 문서에 ‘대한민국 30년’이라고 기록했다는 점만 내세울 게 아니라 어째서 그 표기가 관행으로 굳어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비록 몇몇 나라가 상해 임시정부를 승인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우리가 해방 이전에 이미 독립국가였다고 치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세계 각국도 대한민국의 독립일을 당연히 1948년 8월15일로 본다. 임시정부를 승인했던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마당에 우리만 독립국가였다고 우기는 것은 정말 민망한 일이다.

그런데도 굳이 1919년 4월11일이 건국일이라고 강변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우파인 이승만 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저의가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억지를 쓰면서까지 고집부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쯤 되면 남한은 왜 정부 수립이고 북한은 왜 건국이어야 하는지가 선명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룩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애써 외면하고 자본가와 친일파가 득세한 부끄러운 나라로 매도하면서 북한의 독재와 대남 도발 등은 수박 겉핥기로 넘어가거나 아예 언급조차 않는 것도 그래서일 게다. 하지만 이런 고약한 논리로는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렵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안다.

어쨌든 ‘건국일이 없는 이상한 교과서’ 사태는 서둘러 끝내야 한다. 아주 먼 옛날 국가도 아니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이념 갈등 때문에 교과서에 기술하지도 못한다면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10년 넘도록 선진국 문턱을 못 넘는 것도 툭하면 사생결단으로 치닫는 극심한 국론 분열 탓이 크다는 따끔한 지적을 너나없이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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