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이름을 올린 이유정 변호사의 재산형성 과정이 정치권에서 논란이 급속히 번지자 금융당국이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후보자는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된지 24일만인 1일 자진사퇴하고 말았다.
지난달 8일 문재인 대통령은 박한철 전 헌재소장 퇴임 이후 공석에 따른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이유정 변호사를 지명했다.
이 후보자가 여성 노동 아동 인권, 사회적 약자 권리보호 등을 위해 헌신해 온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반면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 검사 출신으로 엘리트코스를 밟아왔고, 최근에는 주식투자로 1년 안에 3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등 돈을 버는 재능도 탁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자는 지난달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8개의 종목에 투자해 짧은 기간에 고수익을 올린 사실이 공개됐고, 그 외에도 과거 20개 이상의 종목에 투자해 수억원의 수익을 거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정 코스닥 종목에서는 8개월만에 3억원이 넘는 수익을 내기도 했다.
의혹이 커지자 금융감독원은 이 후보자의 주식거래를 조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바른정당 간사인 오신환 의원은 1일 이 후보자의 주식 투자 의혹을 조사해달라는 진정서를 금융당국에 제출할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진정서가 접수되면 곧바로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라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서에는 이 후보자가 내츄럴엔도텍 매입과 매도 과정에서 미공개정보를 이용했다는 의혹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8일 이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에 지명되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주식 매입과 매도 과정에서 내부자로부터 미공개정보를 취득한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는 이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에 지명된 후 청문회 자료 신고에 따른 재산변동이 근거가 됐다.
이 후보자의 남편인 사봉관 판사가 지난해 2월 신고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당시 전체 재산 중 주식은 2억9000여만원이었는데, 1년 6개월만에 제출한 이번 재산 신고에서는 전체 재산 22억7000여만원 가운데 주식 보유가 15억원을 넘어섰다.
특히 이 후보자는 지난해부터 투자를 시작한 '미래컴퍼니' 주식 투자 수익이 5억원이 넘고, '백수오 파문'으로 알려진 '내츄럴엔도텍' 비상장 주식으로도 2년 만에 5억7000여만원의 매도차익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가짜 백수오'로 파동을 겪었던 내츄럴엔도텍이 비상장사일 때 주식을 샀다가 파동으로 주가가 폭락하기 전 주식을 팔아치워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지난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이 후보자는 "주식 투자에 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부동산 투자에 대해서는 심리적인 거부감이 있고, 불법적인 것은 없었고, 모두 다 정상적인 거래였다는…"이라며 "함께 일하는 윤모 변호사가 상장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해 주식을 사들였을 뿐 내부자 거래는 없다"고 부인했다.
언급된 윤 변호사는 내츄럴엔도텍에서 법률자문을 의뢰받은 법무법인 소속으로 미공개정보 이용 가능성이 의심받고 있는 인물이다.
검사 출신인 이 후보자가 인권변호사임을 자처하며 민변 여성인권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직을 수행하면서도 주식투자로 돈 버는 일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서 주식시장을 분석하고 정확한 투자결정을 위해 판단하는 게 직업인 고수전문가도 이정도 수익을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코스닥의 작은 종목을 어찌 그리 핀셋으로 잘 집어내서 사면 폭등하고 팔면 폭락합니까. 내부자 거래나 (주가) 작전 편승의 냄새가 납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동안 이 후보자의 주식매매 현황을 보면, 거론된 8개의 종목 외에도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20개 이상의 주식에 투자했다가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팔아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 후보자의 주식매매 현황을 보도한 조선일보에 따르면, 2015년 6월 말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코스닥 상장사 네오디안테크놀러지 주식을 주당 2255원에 1만4000주를 매수했다. 약 1주일 뒤 주가가 2600원을 넘자, 평균 2608원에 전량을 처분해 1주일만에 500만원가량의 수익을 올렸다. 그해 7월에는 코스닥 상장사인 디에스케이의 주식을 보름 동안 주당 평균 8848원에 1만4579주를 사들였다가 주가가 3만원이 넘어선 2016년 3월 주당 평균 3만888원에 전량 처분해 8개월여 만에 3억2000여만원을 챙겼다. 수익률이 무려 242%나 됐다.
또 작년 7월에는 6230원 하던 코스닥의 프리엠스 주식 1만1390주를 약 7000만원에 사들이자 주가는 12월에 2배로 뛰었고, 5개월 만에 70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며 모두 팔아치웠다.
이 외에도 코스닥 주식 유비쿼스홀딩스와 엔터메이트에 투자해 각각 1460여만원과 3800만원 수익을 내는 등 거액의 이득을 올렸다.
이 후보자는 코스닥뿐만 아니라 코스피 종목에서도 투자의 고수였다. 2008년 11월부터 12월 사이 주당 1만9000원 정도이던 대한방직 주식 4830주를 1억600만원에 매입한 후 주가가 1만원 가까이 오르자 2009년 5월부터 2012년 8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주당 평균 2만9270원에 주식을 모두 팔아 2700여만원을 벌었다.
정상적 노력과 방법으로 주식투자를 통해 수익을 올린 것을 어느 누가 탓하랴.
그러나 지난달 31일 자신에게 쏟아지는 주식투자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재산 형성 과정에 관해 국민들이 갖고 계시는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됐고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는 입장문 발표는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을 또한번 허탈하게 만들었다.
한편 이 후보자는 자신의 입장 발표에도 주식투자 논란이 사그러들지 않자 1일 결국 자진사퇴했다. 그러면서 "주식거래와 관련하여 제기된 의혹들, 제가 미공개정보를 이용하여 불법적인 거래를 했다는 의혹들은 분명 사실과 다름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자의 자진사퇴에 대해 청와대는 “안타깝지만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여러 의혹 제기가 있어 청와대에서 확인해본 바로는 주식투자 관련해 본인도 좀 억울한 부분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다”며 “이런 논란들이 제기돼 본인이 자진사퇴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잘 나가던 인권변호사였던 이 후보는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된지 24일 만에 결국 재산 등 사생활만 공개되고 갖은 질타와 당국의 조사만 초래하게 된 꼴이 되고 말았다.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장관 후보자부터 이번 헌법재판관 후보자까지 인사 추천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조현옥 인사수석 등 청와대의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다.
당초 금융감독원에 진정서를 제출할 것을 검토했던 오 의원은 이 후보자에 대한 진정서를 금융위에 내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오 의원 측 관계자는 "금감원에 진정서를 내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금융위가 상급기관이고 조사 권한이 더 강력하다는 판단에 따라 금융위에 진정서를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