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1930년대에 미국 보험사의 손실통제부서에서 일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는 크고 작은 사고들을 수 없이 분석하면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했다.
큰 사건이 하나 일어나기 전에 같은 문제로 작은 사건이 29건 발생하며, 역시 같은 일로 다칠 위험에 처했던 사람은 300명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큰 사고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전에 사고의 징후가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혀내고 책으로 발표했다.
이후 이는 ‘하인리히의 법칙’ 혹은 ‘1:29:300의 법칙’으로 불리게 됐다. 이 법칙은 산업현장의 사고 예방은 물론 사회적·경제적 사고나 위기 등을 예방하기 위한 툴(tool)로 확장 사용되기도 한다.
이 법칙은 조직에 매우 유용한 개념이 될 수 있다. 대민부처인 행정부처의 경우 특히 그렇다. 가령 과세관청에 관한 이런 저런 보도가 있을 경우 비록 사소해 보일지언정 그것들이 300개의 사전경보 중 하나라는 걸 이해하고 유용하게 활용한다면 29건의 중형 사고는 물론 1건의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전문지가 다루는 세정 기사와 칼럼들에 대한 독자들의 피드백(feed back)을 분석해보면 흥미롭다. 납세자측에서는 300개의 세무 정보에 대해 자신들과의 유불리를 떠나 일단 중립된 정보로 받아들인다.
반면 과세관청은 좀 다르다. 기관에 우호적인 기사에만 애정을 보인다는 느낌이다. 리스크(Risk) 예방관리를 위해서는 경보성 기사를 더욱 수용하고 조직운영에 반영해야 할 텐데 그런 기사나 칼럼에는 적대적이거나 불편해 하고 그 의견을 어떤 형태로든 꼭 전해온다.
잘못된 과세관행이나 조사현장의 이야기를 다루는 기사나 칼럼은 조직을 해하고 기관장의 경질을 가져올 대형 사고를 막아줄 300개의 사전 알람(alarm)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과세관청 입장에서는 그런 기사에 적극적으로 고마워해야 한다. 감탄고토(甘呑苦吐), 즉 달면 삼키고 쓰면 뱉다 보면 언젠가 크게 터진다.
대통령이 탄핵되는 대형사건에도 이미 사전 경고가 도처에서 있었다. 그러나 작은 징후라도 받아들이기 보다는 국기문란까지 동원하며 부인하기 바빴다. 여당 핵심부나 청와대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개선했더라면 나라가 지금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29개의 크고 작은 경고적 사건들을 은폐하려다 보니 이를 정식으로 보고한 공직자를 감옥에 보내고, 어떤 공직자는 자살하게 만들었다. 결국 최상위에 있는 분은 국민으로부터 비토 됐고, 처참한 결과가 이 겨울을 가로질러 가고 있다.
Ⅱ.
세정으로 돌아가 보자. 기업측 이야기를 들어보면 김영란법 시행 이후 관가는 역력하게 처신을 다스리고 있다고 한다. 조사현장에서는 납세자가 인사로 내는 커피 한잔도 사양하며 일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조직은 늘 허점이 있게 마련이다. 설사 그것이 이미 관행화 된 경우는 제대로 보이지 조차 않는다.
지방청 조사반의 경우 여러 건의 조사를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회사마다 노트북을 가지고 가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결국 관행적으로 회사마다 조사가 시작되면 6~7명의 조사관들이 쓸 노트북을 회사측이 대여회사에서 빌려와 제공해 왔다고 한다. 그 뿐이랴. 정부는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을 쓰고 있어 7대의 컴퓨터에 조사관들 전용으로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을 사다 깔아 준다. 일반 기업은 이 프로그램을 쓰지 않기 때문에 조사가 끝나도 무용지물이다.
조사반이 이런 요청을 한 적이 있다, 없다로 논란하면 결과는 유치해진다. 요청했건 동조했건 결국 관행적으로 그리 해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김영란법 이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없었다로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다. 앞으로 잘 해야 한다는 전제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조사현장에서는 이런 형태의 ‘관행’이 얼마든지 찾아진다.
납세자는 예우 차원에서 조사반에 가장 큰 회의실을 제공하는데 이 방들의 유리창을 회사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차폐(遮蔽)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인테리어 업자를 불러 차폐하였다가 조사가 끝나면 다시 업자를 불러 원상복구 시킨다. 조사 중 증빙전표들을 전산으로 정리해 제시하라든가 지출비용 점검차 각종 시뮬레이션된 회계자료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이런 걸 과연 요청할 수 있는 것인지를 떠나 내국기업들은 대부분 이런 일에 익숙하고 그만한 재무팀 인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에 외국계 회사들은 자체에 인력이 없다 보니 평소에도 기장, 조정, 신고업무를 거의 모두 외부 회계법인에 맡기는데 세무조사시 갖은 형태의 재무적 정보 시뮬레이션을 요청 받다 보면 자료준비를 돕는 회계사들을 또 고용해야 한다. 이런 모든 게 납세협력비용이다.
특히 시뮬레이션을 위한 회계 자료의 요청은 신중해야 한다. 납세자가 전산화된 원장을 제출하기 때문에 조사반이 얼마든지 스스로 컴퓨터를 돌려 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회사측에 이러 저러하게 갖은 형태의 자료를 뽑아달라고 하니 하는 말이다.
Ⅲ.
조사는 과세관청의 가장 예민한 대민업무다. 따라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진행해야 납세자의 신뢰를 얻는다.
특히 군인으로 말하면 노트북 정도는 개인화기다. 납세자가 구해다 주는 아래아 한글과 노트북으로 조사하는 과세관청의 모습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내국기업은 차치하고 수많은 외국계 회사들은 이런 조사를 받으면서 한국 정부를 어떻게 보겠는가. 우리는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하려는 생각보다 개선을 위한 유용한 정보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많은 우려 속에서도 우리는 올해 ‘김영란법’을 시행했다.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 법의 시행은 시대적 요구이자 소위 국민의 ‘민도’가 이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달라진 세상을 수용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던 것이다. 잘못된 관행도 당시 시대의 의미는 있었지만 시대가 달라졌다면 문제는 다르다.
적어도 이 시대를 살면서 현명한 이는 나라와 조직을 위해 늘 ‘최순실’을 떠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