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載亨(顧問)
그러다가 70년 초 종로구 관철동 소재 약공회관 501호실로 확장 이전을 한다. 30여평 협소한 사무실내에 ‘회장실’ ‘사무국’이 한데 어우러져 회무를 꾸려갔다. 이때 까지만 해도 현직 회계사인 김 모씨가 세무사회 부회장직을 맡아 실무에 깊숙이 관여했다. 서로가 동업자라는 일체감만 있을 뿐 족보(族譜)(?) 같은 건 따지지도 안했다. 회 살림살이가 꽤나 빈곤했던 시절이다.
한때는 ‘한 지붕’ 밑에 살던 이웃사촌
회직자들은 회의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면 각자가 호주머니를 털어 자장면으로 한 끼를 때웠다. 하지만 회무에 대한 열정만큼은 참으로 대단했다. 날이면 날마다 머리를 맞대고 업계 발전책을 모색해 나갔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했던가.
세무사회는 소득세 자진신고납세제 등의 새로운 세제 바람을 타고 일취월장 한다. 급기야는 78년 6월 마포구 염리동에 회원들의 숙원인 자체회관을 건립, 역사적인 둥지를 튼다. 이처럼 고유업무 영역이 확대되면서 회원 수가 증가하자 이른바 ‘세무대리 일원화’라는 빅카드를 꺼내든다. 세무사 업무영역에 확실한 선(線)을 긋자는 것으로 동반 관계에 있던 회계사회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요지는 변호사·공인회계사도 세무업무를 수행하려면 세무사법의 적용을 받아 등록·교육 등 의무를 이행토록 하자는 것. 이 법안이 공론화되자 회계사계는 물론 특히나 변호사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 왔다. 이런 가운데 이 법안은 78년 정기국회에 제출됐으며 (당시)국회재무위원회가 정부안(案)의 합법성과 타당성을 인정함으로서 세무사회의 숙원사업이 곧 이뤄지는가 싶었다.
78년 ‘세무대리 일원화’ 놓고 대립관계
그러나 예기치 않은 국회 법사위의 태클로 그 꿈이 좌절된다. 법사위에 포진된 막강한 율사들이 변호사회 편을 드는 바람에 공인회계사회가 이에 편승, 앉아서 판정승을 거둔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무사계에는 신풍(新風)운동이 일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단체가 타 자격사 단체에 비해 허약한 나머지 힘에 밀렸다는 자괴감과 함께 ‘거물급 회장’모시기에 ‘올인’을 한다. 순수 세무사 출신보다는 정계 거물급 인사를 회장으로 추대하는 흐름이 시작된 것도 바로 이즈음부터다. 비록 ‘세무대리 일원화’의 꿈은 실현치 못했지만 회(會)를 기점으로 한 회원들의 규합은 오늘의 세무사회를 만드는데 큰 몫을 했다고 본다.
요즘 한동안 잠잠하던 양 업계에 해묵은 갈등이 재연(再燃)될 조짐이다. 공인회계사 합격자에게 자동으로 부여돼 왔던 세무사 자동자격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이 민주당 의원에 의해 국회에 발의된 것이다. 개정안은 현행 세무사법에 규정된 세무사 자격 요건(공인회계사, 변호사, 세무사 시험 합격)가운데 공인회계사에게 부여되는 세무사 자동자격 요건을 폐지하는 내용이다. 즉, 변호사는 현행대로 놔둔 채 공인회계사에게 부여되는 세무사 자동자격 요건만 떼어내자는 내용이다.
국회 발의로 再燃…묘한 격세지감
이에 회계사업계는 총력 저지 입장이다. 회계사회는 “회계 업무와 세무 업무는 별개가 아니며,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선택"이라면서 강력히 반발하는 형국이다. 이미 정부 등에서 수차례 논의되어 세무사 자동자격부여 유지로 결론이 났으며 지난 2003년 논의 당시에도 국회가 회계사들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어느 한쪽도 양보가 쉽지 않은 팽팽한 기류가 당분간 지속될 분위기다.
한동안 휴화산(休火山)상태에 놓여 있던 자동자격 폐지문제가 어떤 결론으로 종지부를 찍을지 양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978년 ‘세무대리 일원화’ 발동 33년 만에 재개되는 ‘리턴 매치’다. 한때나마 ‘한 지붕’ 밑에서 오순도순 정겹게 지내던 회계사회와 세무사회. 애증(愛憎)의 세월을 넘어 대립관계로 치닫는 두 업계의 오늘을 보면서 묘한 격세지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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