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가 큰 기업들일수록 세무조사는 골치 아픈 통과의례다. 왜냐하면 3~4년마다 정기적으로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내부적으로 사무처리규정을 만들어 4년마다 ‘정기적으로’ 조사해 왔기 때문이다.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들은 지방청 조사국에서 6~7명의 정예부대(!)를 내보낸다. ERP system이나 data server를 다루기 위하여 전산전문요원들 2~3명이 함께 나온다. 결국 10여명의 조사요원들이 매일 기업에 출근(!)한다. 회계부서 직원들보다 더 많은 조사요원들이 나와서 자료요청을 해대니 기업으로서는 이만 저만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세무조사는 불시에 이루어진다. 언제 조사를 나올지 알 수가 없다. 조사예고통지가 오면 기업의 경영진이나 각 부서의 부분장들은 중요한 해외 출장도 취소한다. 재경부서도 전원 휴가를 취소한다. 집안의 대소사도 모두 불참한다. 기업은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기업들이 결코 해외로 야반도주를 하거나 증발할 일이 없는데 왜 굳이 불시에 조사를 해야 하는지 납세자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대통령을 보호하느라 무기고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강력한 미국 국세청(IRS)조차 세무조사는 사전에 기업과 충분히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IRS는 왜 조사를 하려는지 알리고 기업이 이에 대한 사전해명을 잘 하면 조사 자체가 취소된다. 세무조사의 시기나 장소 등은 당연히 사전 협의를 통하여 결정된다. 세무조사시 세무공무원의 말에 대해 녹음권도 납세자에게 허용된다. 강력하기로 유명한 IRS 요원들의 세무조사로부터 납세자를 보호하는 적절한 절차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불시에 세무조사통지를 받는 한국의 기업들은 미국보다 불성실하고 객관적으로 탈세혐의가 짙은가? 아니면 한국의 기업들이 세무조사통지를 받으면 기록을 모두 소각이라도 하는 것일까? 이에 기업이 가장 개선을 원하는 대목을 함께 살펴본다.
첫째, 정기세무조사를 마치 기습작전을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착수하는 제도는 납세자들이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대목이다.
조사대상은 한결 같이 중추 납세기업들이다. 개인 납세자의 경우 한 때 근로자의 40%가 소득세 과세미달이었다. 사업소득자의 40%도 과세미달로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결국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들이 낸 세금으로 대한민국을 운영하고 있는데 과세관청은 이런 공헌을 고려하지 않고, ‘정기조사’라는 이름만으로 3~4년마다 꼬박꼬박 조사를 받게 하는 것은 납세기업의 입장에서는 불합리하고 억울하다. 특별조사가 아니라면 그 시기를 서로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납세자들은 세무조사, 조사관이라는 용어를 정기조사 즉 ‘정기점검업무’에 쓰지 않기를 간절히 원한다. ‘정기심리’는 몰라도 “세무조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기업 이미지가 매우 손상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무조사”라는 왜곡된 용어 때문에 굴지의 간판기업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범법자 이미지를 주고 있다. 세무조사라는 용어 때문에 외신은 삼성과 현대가 툭하면 “tax investigation”을 받고 있다고 보도한다. 이는 심각한 기업 이미지 훼손이다. Investigation은 형사적 사건이다.
탈세혐의자를 “수사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정기심리 차원이라면 조사 혹은 investigation이라는 형사적 용어를 써서는 아니 된다. 미국 같으면 무고한 납세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소송감이다.
그래서 미국 국세청은 세무점검 즉 “tax examination”이라고 부른다. 잘 하고 있는지 시험(점검)을 본다는 거다. 한국은 방대한 조직에 ‘조사국’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점검국’(심리국)이라고 부른다.
또한 미국은 examiner(점검관), revenue agent(세입 주무관)이라고 호칭한다. 차제에 어느 나라가 인권침해적인지 비교해 볼 일이다. 관행이라고만 넘기지 말고 국가는 납세자들에게 배려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조사관 호칭은 80년대말 추경석 청장께서 지시하여 도입됐다. 그 이전에는 일본식으로 세무주사, 세무서기라 불렀다. 청장과 동기였던 일선의 나이 지긋한 주무들이 애로사항으로 호칭문제를 건의했다. 민간분야에서는 20여 년 재직하면 이사 명함을 들고 동창회에 나타나는데 세무공무원들은 당시에 호칭이 마땅히 없고 식민시대 “주사”가 호칭이니 모멸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던 것이다.
이에 추 청장께서 직원들의 사기와 위신을 세워주고자 ‘조사관’ 호칭을 도입하고 판공비로 직접 명함을 한 갑씩 인쇄해 직원들에게 선물로 돌렸다. 그 와중에 고시출신들 일부는 뒤에서 반발하기도 했다. ‘관’자를 아무에게나 주면 되냐는 거였다.
그러나 청장이 고시출신이 아니다 보니 아무도 나서지는 못했다. 그 결과 1만 국세청 직원들이 일약 ‘관’자를 붙인 명함을 들고 다니게 되었다. 뜻은 좋았으나 그 덕분에 납세자들은 툭하면 “조사”를 받는 탈세 피의자 이미지를 외신에 비치게 되었다.
셋째, 세무조사기간에 대한 개선이 있어야 한다. 세무조사는 헌법상 보장된 납세자의 사유재산보호를 위협하는 국가행정력의 행사이다. 조사기간은 국세기본법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국세청의 조사사무처리규정이나 내부기준에 따라 자의적으로 결정된다. 법으로 적어도 그 상한을 정해야 바람직하다.
조사기간은 매출이나 자산 규모에 비례하여 결정한다고는 하나 업종별, 기업별 특이성을 반영하지 않고 있어 부작용이 큰 실정이다. 수수료 사업을 하는 금융기관의 매출은 수십 조 단위가 되다 보니 조사기간이 매우 길어진다. 금융기관은 3개월 이상 정기조사를 받는다. 사정에 따라 6개월에서 9개월 걸린 정기조사도 있다.
넷째, 세무조사는 납세협력비용의 증가를 가져온다. 외국기업들은 한국 세법을 모르기 때문에 회계법인의 세무기장과 조세자문을 받는데 6~9개월의 조사를 받다 보면 추징된 세금보다 자문료가 더 많은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회계사들은 과연 외국기업들을 위해 조세회피를 할 수 있을까? 외국기업들은 세금이 부과되면 그 책임을 회계법인에게 가차 없이 묻는다. 이런 구조에서 회계사들은 보수적으로 세무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4년마다 꼬박 꼬박 ‘정기조사’를 나오는 조사팀 역시 애로(?)가 있다. 조사성과를 거두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요직에 있는 한 간부가 젊은 사무관 시절에 조사팀장으로 조사를 하다가 별로 적발할 것이 없자 대리인에게 이렇게 솔직한 푸념을 했다.
“아니 외국기업들은 똑똑한 사람들만 모인 줄 알았는데 세무관리를 이렇게 밖에 못해요? 우리가 나오면 그냥 갑니까? 기장을 너무 철저히 해놓았어요. 이런다고 우리가 빈 손으로 돌아가냐고요?”
‘과거에는’ 세무조사를 나오면 기업은 제일 먼저 적출목표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냥 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칙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업측은 장기간 세무조사를 받느니 차라리 얼마간 수용 가능한 세금을 적당히 내고 사업에 전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과거에는 영웅주의가 조세법률주의를 위협하는 문제가 있었다. ‘고액사건이니 일단 과세를 해보자. 우리가 소송에서 이긴다면 과세권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하는 영웅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 전직 관료들의 열정 어린(?) 경험담에서 확인되는 과세명분이었다.
전직 관료들은 사석에서 솔직하게 ‘라테’ 이야기를 나눈다. “조사요원이 거액을 추징할 쟁점을 가져오면 담당 과장은 눈이 번쩍 떠지는 거야. 신속하게 청장에게 보고를 하였지. 청장 눈도장을 한 번이라도 더 찍어야 승진을 할 거 아니야! 패소 걱정?
그런 걱정을 하면 부이사관 자리를 그냥 날리는 거야. 어차피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쯤이면 청장도 국장도 퇴임하여 없으니 고액 사건은 승진 노다지였어, 노다지! ”
여섯째, 고액과세 노다지는 납세자들에게 2차 피해를 가하였다. 고지액 이외에 거액의 불복비용이 따라 붙는 것이다. 더욱이 거액의 세금을 대출 받아 납부하게 되는데 대출이자와 운영자금 경색은 3차 가해였다. 재무구조가 약하면 기업의 존속이 도전 받기도 했다.
얼마 전에 국회에서 세무조사개선 세미나가 열렸다. 개업 조세전문가들도 많이 참석한 자리였다. 뜻 있는 전직 관료가 ‘노다지 과세 폐해’을 언급하며, 과세실적을 기준으로 인사 가점을 주는 제도를 없애고, 패소 감점제를 도입하라는 것이었다.
즉 패소하는 과세에 대해 감사와 징계를 강화해야 노다지 과세가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분은 국세청 자체 감사는 물론 감사원 감사가 부당과세는 신천지 개척이라며 상찬(賞讚)하고, 부족과세만 징계를 하다 보니 과잉과세가 상존했다는 지적을 한 것이었다.
참석한 학계 조세전문가 중 일부는 그게 사실이냐고 놀라워했다. 세미나가 파하자 솔직하게 발언한 그 전직 관료에게 다른 조세전문가가 핀잔을 주었다. “아니 그렇게 영업비밀을 다 까버리면(노출하면) 어찌 합니까? 대리인들은 세무조사로 밀린 기장료도 한꺼번에 받고 조사대응과 불복 수임으로 큰 돈도 만지는데 이런 노다지를 정말 없애자는 겁니까?”
그 말에는 이런 말도 함께 들어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세무조사와 노다지 과세는 많을 수록 좋아요. 세무조사라는 거창한 용어도 계속 써야 해요. 그래야 과세관청의 위상도 올라 가고 대리인들도 일감이 생겨요.”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납세자단체와 학술단체가 그리 많은데 왜 납세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기본적인 호칭과 용어조차 개선하자는 의견을 제기하지 않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
•(사)한국조세연구포럼 등 다수 학술단체 회원, 감사, 분과위원장, 이사 역임
•베르나바이오텍포리아(주) 등 다수 국내외기업 감사 및 사외이사 역임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자문위원 역임
•중소기업중앙회 특별위원회 위원 역임
•국세공무원 강의 및 명예교수 역임
•Th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MA, Tax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