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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 칼럼] 설익은 세금정책이 조세저항 부른다
[정창영 칼럼] 설익은 세금정책이 조세저항 부른다
  • 정창영 기자
  • 승인 2020.07.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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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막 가는 거다. 원칙은 실종됐고 정책은 갈팡질팡 어지럽다. 최근 세금 문제를 넘어 사회문제로 확산되는 각종 조세정책을 보면 정부의 세금정책은 심각한 고장이 났다. 단순한 고장 정도가 아니다.

거창하게 금융세제 선진화를 내세우며 기획재정부가 온갖 당위성을 강조하고 발표한 금융세제 개편안은 핵심내용을 대통령이 직접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해 오락가락의 수준을 넘었다. 대통령이 수정을 지시한 이유가 더 충격적이다. ‘국민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초 홍남기 부총리가 이 개편안을 발표할 때도 세제의 기본인 형평성을 비롯한 다양한 의견과 우려가 나왔고, 시행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소리가 많았지만 기재부는 구구절절 당위성과 시행 불가피를 설명하며 ‘금융세제 선진화’의 이름으로 강행했다.

그런 세제개편안을 대통령이 퇴짜를 놓은 것이다. 그것도 국민이 수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렇다면 기재부는 국민이 수용할 수 없는 정책을 만들어 놓고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려고 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설명은 없다.

의문이 든다. 기획재정부와 청와대 관계자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나. 본래 조세정책이 진행되면 기재부가 충분한 의견수렴과 세밀한 검토를 끝내고 개편안을 만들어 청와대 보고를 통한 정책조율을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주무부처가 국민에게 발표한다.

이게 조세정책의 기본 시스템이다. 이 중요한 문제를 청와대와 협의없이 기재부 단독으로 발표했다는 것은 상상이 어렵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책시스템 고장이라는 표현조차 너무 고상하다.

부동산 세금의 현실은 이미 조세정책의 영역을 넘어서 아예 산으로 가고 있다. 이제 국민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단계에 들어와 있다. 워낙 많은 처방전이 난무해 전문가들조차 헷갈리는 지경이다. 오죽하면 ‘양포세무사’(양도소득세를 포기한 세무사)가 나올 정도다.

법이 자주, 많이 바뀌고 시행 기약도 없는 방안이 난무한 탓에 계산이 서지 않는다. 그나마 예외가 넘쳐나는 규정 적용을 빠뜨리거나 잘못 했다가는 뒷감당이 서지 않는다. 수수료 몇 푼 벌려고 위험감수(?)하지 않겠다는 것이 양포 세무사의 푸념이다.

복합적인 요인으로 병이 난 부동산에 처방전이 산더미처럼 쌓이면서 약효를 기다리지도 못한 채 환자를 아예 중환자실로 모셔간 형국이다. 부동산 가격 급등을 ‘세금으로 때려 잡겠다’고 호기 있게 나섰지만 가격 안정은커녕 엉망진창 세제만 만들어 놓아 오도 가도 못할 처지에 있다.

범법자도 아닌데 징벌적 과세를 하겠다고 나섰다. 부동산 투기자로 ‘판명’되지도 않았는데 단지 갖고 있던 집값이 시세 따라 올랐다고 징벌을 내린다면 그대로 수용할 국민이 있을까? 주택 세금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가파르게 올려 집 가진 국민 대부분의 세금을 올렸고, 다주택자는 말 그대로 ‘고사총’ 신세가 됐다. ‘주택 보유세 인상은 신중해야 한다’는 조세전문가들의 오래 된 조언은 현실에서 너무 가볍게 들렸다.

아무튼 ‘세금으로 집값 잡겠다’는 정부의 시도는 많은 부작용을 예고하고 있다.

세금은 신뢰를 생명으로 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소중한 재산을 국가가 ‘반대급부 없이’ 가져가는데 신뢰가 없다면 이를 수긍할 국민은 없다. 그래서 세금은 제도·행정 모든 분야에서 신뢰에 손상이 가면 안된다.

국세청이 그토록 강조하는 ‘공평’의 개념과 가치는 결국 납세자인 국민에게 ‘신뢰’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가 이번에 부동산 정책과 금융세제 정책에서 극심한 혼란을 빚은 것은 당장 집 값 안정과 금융소득 과세 합리화의 결실을 얻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한 번의 정책으로 결과를 얻기 어려운 난제는 후속대책을 이어가면서 풀어 가면 된다. 무엇보다 목적과 이유가 분명하고 과정이 합리적이고 공정하다면 국민적 호응 속에서 결국 해결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서처럼 선무당 무엇하듯해 국민적 신뢰가 무너진다면 당장 현안해결도 문제지만 앞으로 엄청난 대가와 수업료를 치러야 한다.

부동산 대책 추진한다면서 이렇게 세금을 원칙 없이 동원하면 솔직히 뒷감당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루아침에 주택 양도소득세 세율을 비과세부터 70%까지 놓고 운영한다면 나름대로 합법적 이유와 사정이 있는 국민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아무리 급해도 이렇게 세제를 운영해서는 안된다.

얼마나 세제를 급조했으면 정부가 발표하자마자 시장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편법과 왜곡이 난무하겠는가. 국민이 일반적 관점에서 선택하는 편법과 왜곡이라면 적어도 정책 입안과정에서 대비를 했어야 했다.

공시가격 인상에 보유세·거래세 폭탄이 터지고 아예 증여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곧바로 명칭도 특이한 ‘증여취득세율’ 인상으로 땜질하겠는 식이면 정상적인 조세정책 운용은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중에 도는 농담처럼 부동산 세금 문제를 대통령이 홍남기 부총리가 아닌 김현미 국토부 장관에게 지시해서 ‘족보에도 없는 조세정책’이 나온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뿌리가 깊은 우리의 부동산 문제는 다양한 경험도 이어오고 있다. 1980년대 말 부동산 투기 광풍에 군사정권이 대응한 것이 이른바 토지공개념이었다. 일명 ‘초토세’로 불렸던 토지초과이득세를 비롯해 택지소유상한제, 개발이익환수제 등 공개념 3법은 당시 ‘부동산투기 망국론’을 배경으로 탄생했지만 결국 국민적 반발과 저항 속에서 줄줄이 위헌의 이름으로 사라지고 유명무실해졌다.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 문제로 탄생부터 이견이 많았던 토초세도 그대로 밀어 붙였지만 결국 몇 년 시행도 못하고 온갖 문제와 저항에 시달리다가 결국 ‘헌법불합치’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 주말 정부의 부동산 세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집단 시위가 있었다. 세금 문제가 거리로 나온 것이다. 세금은 경제행위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세금에 불만을 품고 적극적인 이의대열에 합류한다는 것은 일반적 정책반대 시위와는 성격이 다르다.

특히 세금은 재정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가 정책 목적을 실현하는 역할과 기능도 있고, 국민의 의무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불만이나 불형평이 아니면 거리로 들고 나오는 예는 드물다. 그런데 집값 널뛰기 속에서 정부가 세제를 무차별 수준으로 동원 하면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고 신발을 던지는 상황이 됐다.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될 일이고 상황이다.

정부의 부동산 조세정책과 금융세제 선진화 개편방안 등 최근 얼룩진 세제 난맥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위헌을 검토하고 뭔가 대응책을 찾느라 물 밑에서 부심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난해한 세제 운용은 조세불복, 조세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증명된 정말 비싸고 비싼 수업료가 아닐 수 없다. 증상에 따라 오락가락 할 일이 결코 아니다.

정창영 주필
정창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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