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제 개편의 핵심은 세율 인하에 있다. 정부가 지난 7월 25일 발표한 올해 세법 개정안에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현행 50%에서 40%로 10% 포인트(P) 인하하는 상속세법 개정안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야당은 “상속세 최고세율(40%)이 소득세 최고세율(45%)보다 낮은 것은 전형적인 ‘부자 감세’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상속세율이 소득세율보다 높아야한다는 주장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 지 알 수 없다. 도대체 세계적으로 상속세율이 소득세율보다 높은 국가가 몇이나 되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예외적으로 일본, 한국, 프랑스 3개국이 상속세 최고세율이 소득세 최고세율보다 높고, 나머지 35개국(92.1%)의 상속세율은 소득세율보다 낮다. 예외적인 사실을 일반화하는 것은 사실의 왜곡에 해당하고,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다. .
OECD 38개 회원국 중 상속세가 있는 19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 평균은 26%이고, 상속세가 없는 19개국 까지 포함한 상속세 최고세율 평균은 13%에 불과하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낮춘 후에도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여전히 OECD 38개 회원국 중 일본, 프랑스에 이어 3번째로 높은 국가에 속한다. 사정이 이런데 50%인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인하하는 것이 부자감세라는 야당의 주장은 상투적인 이념적 주장에 불과하고 설득력이 없다.
지금 세계는 자국 인재와 부자의 해외 탈출을 막고 해외 인재와 부자들의 국내 유치를 위해 상속세율을 계속 내리는 추세에 있다. 특히, 세계에서 부자들이 투자하기를 가장 선호하는 국가 1, 3위에 올라있는 UAE(아랍에미레이트)와 싱가포르는 상속세가 아예 없다. 여기에 투자를 가로막는 증여세와 양도소득세도 없다.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이 투자 유치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세제도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변화하는 경제․사회 현상과 세계 추세, 우리나라 현실을 잘 반영해야 공평하고 효율적인 세제가 될 수 있다. 지구촌시대의 무한 경쟁시대에 우리만 상속세를 내리지 않고 24년 전에 정해진 유독 높은 세율을 그대로 유지하면 돈과 사람, 기업이 해외로 떠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의 부자 순유출은 ‘22년 400명에서 2023년 800명으로 두 배로 불었다. 영국의 투지 이민 컨설팅 업체인 헨리앤파트너스는 올해 한국의 부자가 사업을 접고 재산을 정리해 한국을 떠나는 숫자가 급증해 세계 4위권에 진입할 것으로 발표했다. ‘부자가 떠나는 게 무슨 대수냐’며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이들이 사업과 재산을 정리해 해외로 떠나면 투자와 소비, 일자리, 세수도 모두 날아간다. 세제로 사람과 기업, 돈이 한국으로 모이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고 절실한 이유다. 야당이 상속세율 인하를 부자감세라면서 터무니없이 높은 상속세율을 유지하는 것은 전형적인 소탐대실에 해당한다.
조세 이론적으로도 상속세는 소득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이룬 재산이 상속될 때 부과되는 세금이다. 결국 상속세는 소득세와 이중과세되는 점을 감안, 낮은 세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조세이론의 통설이다. 한편, 상속세 과세이론으로는 부의 대물림 방지, ‘금수저’로부터 상속세를 징수해 흙수저를 지원함으로써 계층 간 인생 출발점의 평준화 등이 있다. 한편 ‘70~’90년대 우리나라는 사업소득을 탈세하여 그 자금으로 재산을 형성한 경우가 많았다. 이 당시에는 높은 상속세율로 피상속인이 생전에 탈세한 소득세를 마지막으로 정산한다는 소위 ‘상속세의 소득세 정산론’이 상속세 과세이론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세금부과징수에 있어 전산시스템 완비, 세금계산서 등 근거과세 기반 조성, 소득 지급 시 원천징수 제도의 확대, 현금영수증 발행제도 정착 등으로 거의 모든 사업자의 소득이 노출된다, 이에 따라 납세의무자의 성실신고 분위기가 정착되었고, 근로소득은 100% 현실화됐다. 이런 납세 풍토에서 상속세는 소득세와 이중과세되기 때문에 이전보다 낮은 상속세율 유지가 조세이론에 맞는다. 기업이 성실하게 납세하고,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점, 높은 상속세가 부자들의 국내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점을 아는 국민은 상속세율 인하에 과거보다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2000년에 정해진 상속세율, 과표 구간, 일괄상속공제, 배우자공제, 과세방식 등 우리나라 상속세제는 이제 구시대적 유물에 가깝다. 이런 낡은 상속세제로 기업인이 평생 일군 기업을 재단(裁斷)하고, 국민으로부터 상속세를 거두고 있는데, 과연 한국에서 원활한 기업 상속이 이뤄지고 중산서민층의 재산 형성이 가능하겠는가?
24년 동안 경제성장, 국민소득 증가, 물가상승, 집값상승, 상속재산의 시가 평가 등 상속세 괴세 대상과 과세표준은 엄청나게 늘었다. 그런데 상속세 최고세율(50%)은 2000년부터 지금까지 24년이라는 장기간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니 국민의 상속세 부담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를 가지고 있는 중산서민층도 상속세를 내야 할 판이다.
상속세가 소득세와 이중과세되는 점,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2000년에 정해진 높은 상속세율로 인해 중산서민층의 세 부담이 급증하고 있는 점, 그리고 상속세율이 계속 인하되고 있는 세계 추세 등을 감안할 때, 현행 상속세 최고세율(50%)을 30%로 내리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셔 40%로 10% 포인트 내리려는 정부 세제 개편안에 야당은 또 상투적이고 이념적인 ‘부자 감세’ 프레임을 씌워 반대하고 있으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해줘야 할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은 불안하고 답답하다.
야당의 정책 담당자들은 상속세의 기초이론, 상속세와 소득세의 관계, 세원 확대와 세율의 관계 등 조세 기초이론과 상속세의 세계 추세, 그리고 우리의 상속세 현실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아무쪼록 올해 정기 국회에서 야당은 세계적으로 높은 우리나라 상속세율인하를 부자감세라는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잣대를 버려야 한다. 이제 국민은 여야 상호 합의하에 조세이론, 상속세의 세계 추세와 우리나라 상속세 현실을 종합적이고 충실하게 반영한 공평하고 효율적인 상속 세제를 마련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