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나는 제대로 하는, 국민들께 인정받는 국세청을 만들겠습니다.” 현 국세청장이 취임한 이래 과세관청에 전화를 걸면 이런 안내말이 나온다. 이는 청문회에서 청장 후보가 약속한 말이다.
최근 9월 12일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도 청장은 이를 강조했다.
아울러 회의 내용에 ‘납세국민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세무관서를 만들자’는 것을 보면 일 하나는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의미가 단순히 세입확보기관으로 세무조사만 잘 하라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그렇다. 확언하건대 세무조사만 강하게 한다 하여 국세청이 일 잘 한다고 국민들이 인정할 확률은 매우 낮다. 오히려 원성만 살 가능성이 높다. 이미 국세청 조사강도나 TIS 수집자료가 워낙 강력하고 치밀하다 보니 조사 기능은 필요 이상(!)으로 궤도에 잘 올라 있다는 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세청은 대민조세안내에 더 신경 써야 하는 단계에 와있다. 강력한 세무조사가 튀어 보이지 않도록 전문성 있는 조세안내서비스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자면 전산을 통한 사전안내 시스템 강화에 못지 않은 인적 대면업무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 부분이 바로 국세청이 당면한 loophole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납세자 중 극히 일부만을 집중 조사하는 조사과보다는 압도적 다수인 일반 국민이 통상적으로 전화하고, 묻고, 만나는 세원관리과, 납세보호관실, 민원실, 국세상담센터(이하 “대민부서”) 공무원들이 일을 제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대민부서의 자질(service 기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국세청을 National Tax Administration (NTA)라고 표기했다. 이는 민(民)보다 관(官)이 우위인 일본 국세청의 표기와 동일했다.
반면 미국 국세청은 Internal Revenue Service (IRS)로 Administration 대신 service 라는 표현을 택했다. 이는 영국(Inland Revenue Service)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세입기관의 지향점을 잘 시사한다. 한국 국세청도 administration(행정, 청)을 버리고 service(봉사, 대우)을 염두에 두고 National Tax Service (NTS)로 개명하였다. 행정청(administration)에서 세입 서비스(service)기관으로 그 역할을 upgrade 한 것이다.
최근에 청 출신들의 모임이 있었다. 신임 청장이 신선한 젊은 사무관일 때 상사였던 분의 증언(!)을 시작으로 그의 적극적인 업무자세와 선후배를 성심껏 대하는 인품 덕담이 넘쳐났다. 지방청장 자리에 오른 후에도 소탈하고 적극적인 젊은 사무관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있더라는 증언들도 줄을 이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답게 전관들은 청문회 소감, 국세청 현주소 등 과세관청에 대한 애정 어린 이야기들을 이어갔는데 국세청의 강력한 세무조사 위상이나 능력에는 모두가 이의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사부서 외의 나머지 부서(위 대민부서들)의 실력과 자세에 대하여는 걱정 어린 경험담들이 줄을 이었다.
그 걱정들을 여기에 한 두 가지 소개하는 것은 청장의 포부 대로 ‘일 하나는 제대로 하여 국민께 인정 받는 국세청이 되라’는 뜻이지 결코 비방이나 힐난이 아니다.
그 어느 행정부서보다 능력 있고 앞서 가는 국세청이지만 역시나 사람들의 집합이다 보니 개선할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세무서의 세원관리과와 국세상담센터는 광범위하게 납세자들과 접촉해야 하는 대민부서인데 이들의 태도와 자질에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는 것이 조세전문가들 다수의 의견이었다.
국세상담센터의 건성 상담과 전문성 부족도 큰 문제이지만 일선 세원관리팀의 경우에는 납세자권리보호나 적법절차의 개념 숙지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국세공무원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국세기본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법 중 가장 먼저 읽고 실행하여야 하는 법이 국세기본법인데 말이다.
어느 세원관리과의 예를 보자. 이 건 실화다. 금년 4월에 자신에게 체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근로자가 자신에게 부과된 과세자료내역과 정확한 체납액을 알려 달라고 YS세무서 세원관리과 담당에게 대리인을 통하여 수차례 요청했으나 불응하자 위임장과 함께 서면으로도 요청했다. 그러나 감감 무소식이었다.
이제나 저제나 하다 두 달이 지나서 다시 전화를 하니 ‘함부로 국세청의 과세자료를 줄 수 없다’는 것이 답변이었다.
그러니 ‘개인정보 공개요청’을 하란다. 아니, 줄 수 없었다면 진작에 알려주었어야지 두 달이나 기다렸는데 확인 전화를 하자 비로소 개인정보이니 함부로 줄 수 없다는 황당한 답변을 하니 기가 막혔다. 과세한 근거가 무엇인지를 요청했는데 그 것이 개인정보여서 공개할 수 없다니 궤변 중 상괘변 아닌가!
위임장은 물론 납세자 본인이 서명한 문서를 제출하고 납세자 본인의 과세내역을 달라고 국세기본법에 따라 요청했는데 왜 거부하느냐 따지니 담당의 답변인 즉 그 근거는 다름 아닌 “세원관리팀장님의 지시사항”라는 것이었다.
국세기본법을 압도하는 것이 세무서 세원관리팀장인 것이었다. 국세기본법을 담당자도 팀장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어이가 없어 담당자에게 신입 공무원이냐고 물으니 자신은 경력직원이란다. 팀장의 경력을 사이드로 알아보니 국세청 재직기간이 무려 20여년이 족히 되는 사람이었다. 세상이 두 번 바뀔 세월을 국세청 밥을 먹은 공무원이 이런 뚱딴지 같은 ‘지시’를 했다니 믿지 못할 일이었다. 이런 일이 신임 국세청장이 취임한 달에 일어난 것이다.
해당 세원관리팀원은 한술 더 떴다. 과세근거와 과세액(체납액)을 요청하니 해당 과세 건의 과세액(체납액)은 가까운 세무서 민원실에 들러서 물어보라며 ‘개인정보’라서 자신은 알려 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세무서 민원실에서도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을 해당 세원관리팀 담당자가 거부하는 것이 옳으냐 물으니 “하여튼 알려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이쯤 되면 국세기본법이고 세법이고 다 무용지물이다. ‘안되니까 안된다’는 답변 앞에서는 납세자도 대리인도 황당해서 할 말이 없더란다. 국세기본법상 납세자는 본인이나 대리인이 자신의 과세자료를 요청하면 세무서는 ‘즉시’ 응해야 한다. 즉시란 보통 3시간을 의미한다. 이렇게 3개월씩이나 끌 일이 아니다.
개인정보호호법상 모든 관공서에 수집, 관리를 일체 금지하는 개인정보란 정치적 입장, 성적 취향, 병력 등 매우 은밀한 사적 정보, 즉 “민감정보”뿐이다. 그 팀장은 어설픈 개인정보보호법 귀동냥으로 한 시가 급한 납세자의 권리를 3개월씩이나 침해했던 것이다.
이 정도로 국세기본법에 무지하면 다른 세법의 이해도는 오죽하랴! 앞으로는 국세기본법 시험을 본 다음 세원관리과에 배치하여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납세국민들에게 짐이 된다.
과세자료를 파악하고자 전화 및 서면 요청해도 안되어, 서면독촉장을 과장에게도 제출하고도 요지부동이어서 대리인은 급기야 개인정보법과 국세기본법을 구분하라는 구구절절한 촉구서를 제출했다. 이제는 참을 수 없으니 국세청장을 찾아가겠다는 서면을 제출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소득자료를 주겠다고 하였다. 이러기까지 봄에 시작한 일이 세 달이 지난 여름에 이르렀다.
사실 이 납세자는 체납자 신세를 빨리 면해야 하는 급한 법적 불이익 사정에 처해 있었다. 공무원의 태만과 엉뚱한 개인정보보호법 실랑이로 세달 동안 불필요한 가산세와 체납 상태가 억울하게 연장된 거였다. ‘즉시’ 처리할 업무를 정당한 이유 없이 세 달을 끌은 공무원이라면 응분의 징계를 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납세자 본인이 Fax가 없어 이메일로 과세자료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고 굳이 대리인에게 Fax로 보냈다. 그 이유도 상식을 벗어났다. ‘세무서 내부서류’인 과세자료를 납세자에게 (공공연히) 국세청 이메일로 송부할 수가 없어서라는 것이었다. 납세자는 마치 불법으로 과세자료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세원관리팀의 각종 과세자료확인은 사실상(de facto)의 서면조사(desk audit)인데 알고 보니 잘못 과세한 것이었다. 세원관리과(소득, 재산, 법인, 부가)가 얼마나 독선적이고 납세자권리보호에 무신경한지를 보여주는 일단의 사례이다.
이러한 사례는 극소수에 해당하면 좋겠지만 꼭 그런 게 아니다 보니 청장의 포부에 부응하도록 일 하나는 제대로 하는 국세청이 되려면 세원관리팀 등 민원부서의 대민교육부터 제대로 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올 해 내내 본 칼럼에서 이런 사례를 계속 연재할 소재는 쌓여있다.
본청은 사실상의 desk audit 업무인 과세자료 처리절차에 대한 세밀한 대민 서비스적 매뉴얼(사무처리규정)로 개정하고, 호칭도 따뜻하게 바꾸는 특단의 개선의지가 필요한 때이다. 교육원장은 모든 교육과정에 국세기본법을 넣어야 바람직하다.
여러 교육과정에 정작 국세기본법은 빠져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과세현장에서 국세기본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계륵 취급을 받고 있다. 납세자의 권리가 규정되어 있는 국세기본법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고는 국민께 인정 받는 세무행정을 펼칠 수가 없다.
조사업무는 사안이 엄중해 대리인들이 나서서 전문적으로 대응을 하다 보니 조사사무처리규정에 국세기본법의 중요한 내용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고 준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반면에 일선 세원관리업무는 전문성이 없는 일반 국민들이 세원관리과 공무원들과 직접 접촉하다 보니 담당공무원이 태만하거나 오도할 경우 그 불이익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 되고 있다. 일선 세원관리팀의 국세기본법 숙지야 말로 national tax service의 핵심이 된다 할 것이다.
전문가인 세무대리인이 위임장을 제시하고 과세근거자료를 요청해도 세원관리팀이 버젓이 개인정보공개신청을 하라는 판이고, 과세근거자료를 이메일로 달라고 하여도 굳이 근거가 남지 않는 fax로 보내겠다는 현실을 일선 세무서장이나 청 관리자들이 별일이 아닌 것으로 여긴다면 그 것은 청장의 목표인 “일 하나는 제대로 하여 국민들께 인정 받는 국세청 만들기”에 호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민부서 담당자들이 ‘국세조사관’이라는 고압적인 호칭을 계속 사용하는 것도 과감하게 재고할 때가 되었다. 세원관리과 공무원들이 왜 ‘조사관’ 호칭을 사용해야 하는가? “납세자가 편안하게 느끼는 세무서”를 만들겠다는 청장의 국회 약속과 전국 관서장 회의의 지시대로라면 조사도 하지 않는 모든 대민부서가 ‘조사관’이라는 위압적 호칭을 사용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조사과를 제외한 대민부서는 국민친화적으로 “국세 주무관” 정도면 족하다. 물론 더 친화적인 호칭이 있다면 환영이다. 예산을 들이지 않고 국민친화적인 행정을 펴는 것은 의사결정자의 위치에 있는 공직자의 최고의 치적이자 보람이다.
국세청 홈페이지에 뜨는 국세청장 인사말 역시 “국세청에서는 국민과 납세자를 따뜻하게 모시는 세정을 펼치고…납세자 여러분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밝히고 있어 이 글을 드린다.
납세국민들은 “국민과 납세자의 어려움을 보듬는 세정으로, 세무서를 방문하거나 각종 문의를 하는 납세자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편안한 납세환경부터 조성”하겠다는 시의적절한 청문회 선서 내용이 하루 빨리 일선 대민부서에까지 잘 파급되기를 고대한다.
• (사)한국조세연구포럼 등 다수 학술단체 회원, 감사, 분과위원장, 이사 역임
• 베르나바이오텍포리아(주) 등 다수 국내외기업 감사 및 사외이사 역임
•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자문위원 역임
• 중소기업중앙회 특별위원회 위원 역임
• 국세공무원 강의 및 명예교수 역임
• Th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MA, Tax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