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현금이 일상을 위한 소중한 지급수단이 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현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세요.”
최근 한국은행이 ‘현금사용 선택권 보장’을 홍보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광고문구이다. 요즘같이 현금 없이도 큰 불편 없이 소비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현금사용 선택권 보장이라니 조금은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장 우리 주변을 둘러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현금 없이도 신용카드나 결제앱 등을 통해 편리하게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구입하고 각종 매장에서 물건 구입이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삼성페이를 시작으로 카카오페이, 제로페이 등과 같은 간편결제 서비스가 우리사회의 일상생활 속에 자리 잡으면서, 이른바 ‘탈 현금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디지털 인프라의 발달과 함께 카드를 사용하는 비중도 높은 편이어서 다른 나라보다 더 빠르게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로 진입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에서 조사한 2021년 전자 지급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2021년의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실적이 일평균 1,981만 건(6,065억원)으로 2020년 대비 건수 기준 36.3%, 금액 기준으로는 35.0%나 증가했다고 한다. 더구나 현금 없는 매장에 이어 ‘현금 없는 버스’도 도입되고 있다고 하는데, 대전에서는 작년 7월부터 시범기간을 걸쳐 작년 9월부터는 시내버스 전 노선을 대상으로 현금을 받지 않고 버스 내부에는 아예 요금함이 없는 버스 제도를 시행 중이라고 한다. 서울시의 경우에도 2021년 10월 8개 노선에 처음 도입했던 ‘현금 없는 버스’가 그동안 계속해서 대상 노선을 확대해 오다가, 올해 3월 108개 노선의 1,876대로 대폭 확대돼서 이제는 전체 서울 버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로 늘어났다고 한다.
이렇게 현금 없는 사회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현금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지는 편리함 못지않게 현금을 사용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결제방식에 불편함을 느끼며 소외 당하는 계층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카드나 계좌이체 등 비현금화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과 카드발급에 현실적인 제약이 따르는 청소년층이 이런 결제방식에 상대적으로 더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현금 없는 사회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선진국에서 조차 ‘현금 사용 선택권’이 부각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행 웹사이트에서 규정하고 있는 ‘현금사용 선택권 보장’의 개념을 보면, 소비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지급결제수단 선택 시 현금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렇듯 최근 들어 현금사용 선택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2000년대 이후 신용카드나 모바일 지급수단 등의 비현금 지급수단의 이용이 활성화되면서 스웨덴이나 영국, 뉴질랜드 등 현금 없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부작용이 이슈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비현금 지급수단 이용의 활성화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점들로는 ATM 등 현금공급 창구 축소에 따른 국민들의 현금 접근성이 약화되고 있고, 또한 취약계층의 금융소외 및 소비활동 제약되기도 하고, 그리고 최종 결제수단으로서 현금사용 선택권을 보장하는 공적 화폐유통시스템 약화 등과 같은 것들이 있다고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현금결제 거부 사례나 금융소외 계층의 발생 가능성 등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현금 없는 사회로의 진행과정에서 이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필요한 대응책 마련에 각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스웨덴이나 영국, 뉴질랜드 주요국의 정부나 중앙은행들도 국민의 현금접근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적 대응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가운데 현금사용 선택권 보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홍보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좁은 국토면적에 많은 인구가 밀집해 생활하고 있다 보니 디지털 인프라 구축도 다른 나라에 비해 잘 되어 있고, 거기다가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크지 않아 새로운 시스템이나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단시간에 정착되고 안정화되는 편이다.
세법을 보더라도 사업자간 거래 시 세금계산서나 신용카드 매출전표 등의 적격증빙 수취의무나 신용카드가맹점 가입의무 등의 제도를 도입하고, 그 의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나 가산세 등을 부과하는 것으로 규정을 만들고 있는데도 도입 초기에만 불만의 목소리가 좀 있을 뿐 금방 정착되어 오곤 했다.
이렇게 정부입장에서 우리사회의 신용카드 보급율이나 사용율 등을 감안해 관련 정책을 도입해서 획일적으로 시행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그러한 정책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부 소외계층도 있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신용카드가맹점 가입의무를 예로 들자면, 정부 입장에서는 주로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소비자상대업종’의 경우 현금으로 결제를 받은 매출에 대해 사업자가 세금신고를 하면서 매출에서 누락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업자의 과세표준 양성화를 위해서 신용카드 가입을 강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비록 일부일지라도 신용카드 등의 결제수단이 없어 불가피하게 현금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관련 통계를 보더라도 고령층 등의 금융소외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표한 ‘경제주체별 현금사용행태’를 보면 1년간 상점 등에서 현금 결제를 거부당한 경험자가 2021년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7%로 2018년의 0.5%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고 하는데, 현금 결제를 거부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건당 일정 금액 이상의 매출의 경우 신용카드 등을 통해서만 결제를 해야 하는 세법상 의무 준수를 위한 것도 있지 않을까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국회가 발의한 ‘현금선택사용권’ 관련 법안의 입법 취지에 대해 동의의견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고 하는데, 개정안에는 소비자의 기본적 권리에 현금 등 결제수단을 자유로이 선택할 권리와 특정 결제수단을 이용한다는 이유로 사업자가 소비자를 불리하게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현금선택사용권이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결국 비현금 결제수단의 보편화로 현금을 주로 사용하는 고령층 등이 기본적 상거래에서 배제될 위험성이 커짐에 따라, 관련 국책기관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상거래에 있어 현금결제 비중이 낮은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현금선택사용권이 법제화된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현금 결제가 전체 결제수단의 15% 이하인 스웨덴의 경우에는 지난 2019년에 은행의 입·출금 서비스 등에서 현금을 반드시 취급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덴마크 의회 역시 이미 지난 2015년 지급카드법에 현금결제선택권을 명문화했다고 한다.
이런 세계적인 추세를 감안해서라도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고 오히려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세법을 포함해 관련 정책 입안 시 고령층 등 일부 디지털 시스템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도 있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은행이 펼치고 있는 ‘현금사용 선택권 보장’ 캠페인이 획일화된 사고에 젖어 있는 우리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 현) 세무회계 조이 대표세무사
• 현)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 법무서비스지원단 전문위원
• 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교우회 회장
• 전) 한국세무사고시회 회장
• 국립세무대학 내국세학과 졸업
•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 호주 시드니대학교 로스쿨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