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의 퇴진을 불러온 박 전 대표의 막말·성희롱 논란이 정명훈 예술감독의 사임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양측의 진실게임이 격해지는 모양새다.
박 전 대표는 이 사건이 정 예술감독을 배후로 한 직원들의 "음해"라고 주장하고, 정 예술감독은 박 전 대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현재 경찰 수사 단계로 최종적 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당분간 양측의 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2월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이 호소문을 통해 박 전 대표가 직원들에게 일상적인 폭언과 욕설, 성희롱 등으로 인권을 유린했다며 공개 퇴진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박 대표의 직원 인권침해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발표했고, 박 전 대표는 결국 대표직에서 물러났지만, 본인의 혐의는 부인했다.
이후 서울시향 직원 10명은 박 전 대표를 강제추행, 성희롱, 명예훼손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박 전 대표는 직원들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경찰에 진정서를 냈다.
경찰은 지난 8월 박 전 대표의 강제추행 혐의 등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의견으로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박 전 대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서울시향 직원 곽모씨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법원은 "관련자들의 진술이 명확하지 않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은 서울시향에 대한 3차례의 압수수색 등을 통해 곽씨의 투서·고소 과정에 정 감독의 비서인 백모씨가 연루된 정황을 발견하고 백씨를 출국금지했다.
이어 이달 중순 정 감독의 부인 구 모 씨를 백 씨에게 허위사실을 유포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실체 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돼 입건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침묵을 지키던 정 예술감독은 29일 사의를 밝히면서 단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서울시향이 지난 10년 동안 이룩한 업적이 이 한 사람의 거짓말에 의해 무색하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며 박 전 대표의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이어 정 예술감독의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지평도 보도자료를 내고 정 예술감독의 부인은 인권침해를 당한 직원들이 권리를 찾도록 도와줬을 뿐 허위사실 유포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동시에 경찰이 박 전 대표의 혐의를 무혐의 송치했다는 것 역시 "말 그대로 경찰의 의견일 뿐이고 검찰의 종국 판단은 아직 없었으므로 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 예술감독의 서한이 언론에 공개되자 박 전 대표는 바로 다음날인 30일 정 예술감독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의 글을 각 언론사에 배포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중시하는 정 감독이 지난 13개월 동안 제(박 전 대표) 삶은 어떨지 상상해 보셨느냐"며 박 전 대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정 예술감독의 주장은 "명예훼손"이자 "인격 살인"이라고 다시 반박했다.
박 전 대표는 조사가 지연되면 진실규명도 요원해진다며 10개월 넘게 해외 체류중인 정 예술감독의 부인과 입원중인 비서 백 씨가 경찰 조사에 협조하고, 정 예술감독도 일부 시민단체가 제기한 항공료 횡령 혐의 수사에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정 감독 스스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만큼 이를 위한 조사에 나서달라는 주장인 셈이다.
이에 대해 정 예술감독 변호인단은 "그동안 경찰은 추후 수사 과정에서 조사할 수도 있다고만 했지 실제로 정 예술감독과 부인에게 정식 협조 요청이나 소환을 한 적은 없다.하지만 추후 경찰에서 협조요청을 해온다면 적절한 방법으로 조사에 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조사에 협조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백 씨는 출산 직후 3주간 70시간의 경찰 조사를 받는 바람에 건강이 안좋아 입원 중이다. 정 예술감독은 이를 두고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