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종소세 환급, 중기 가업승계 컨설팅, 연말정산 자료 일괄제공 서비스
기재부-삼쩜삼에 유리한 유권해석, 세무사법 시행령 세무사회 반대건의 ‘묵살’
# 지난달 27일 국세청은 근로자의 연말정산용 간소화 자료를 회사에 일괄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기업에서 근로자 명단을 홈택스에 등록하고, 근로자가 홈택스에 자료제공 동의만 하면 연말정산 관련 자료를 일괄적으로 회사에서 내려 받아 연말정산이 이뤄진다. 홈택스에서 회사 근로자의 연말정산을 사실상 대행해 주는 개념이다.
앞서 국세청은 지난 4월 플랫폼노동자 등 인적용역 소득자 227만 명의 소득세 환급금 5500억 원을 찾아 준다고 발표했다.
또 6월에는 ‘중소기업에 맞춤형 가업승계 세무컨설팅’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가업승계 세무컨설팅 대상의 경우 관련 서면질의 신청 때 최우선 처리하고, 컨설팅 내용대로 조건을 유지하면 사후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혜택도 준다.
# 지난 8월 16일 경찰은 세무플랫폼 ‘삼쩜삼’에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조사 과정에서 기획재정부는 세무사회의 편이 아니었다.
삼쩜삼의 세무사법 위반 여부와 관련 ‘납세자가 환급 신청서를 직접 작성한 경우 플랫폼 역할이 자료수집 및 단순 세액계산에 한정돼 있다면 무자격 세무대리로 볼 수 없고, 세무대리인에 의해 신청서가 작성된 경우 세무사의 지휘 감독이 있는 경우는 무자격 세무대리로 보기 어렵다’고 유권해석했다. 삼쩜삼 불송치 결정의 근거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달 13일 정부(기재부)는 세무사시험 최소 합격인원에 국세경력 공무원 출신은 별도로 산정하고, 국세경력세무사 수임제한 세무대리 범위에 ‘조세에 관한 신고’ 등의 업무는 포함시키지 않는 세무사법 시행령 개정령을 공포했다.
‘동반자’인 줄 알았는데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나
국세청의 국민 납세편의와 납세협력비용 축소를 위한 일련의 조치는 세무대리인의 개입과 역할을 줄이는 것 일색이다. 감독기관인 기획재정부의 법령해석과 개정 방향도 세무사 입지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쪽이다.
정보화 진전에 따른 납세편의 세무행정은 바람직하고 자연스런 추세다. 위임 사무를 처리하는 세무사업계와 세무사회가 노골적인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국세청·기재부가 이런 조치에 앞서 세정 동반자인 세무사를 대표하는 한국세무사회와 어떠한 논의도 없었다는 것은 문제다.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시행해 세무사업계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세무사 패싱’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다.
우선 인적용역자 227만 명의 소득세 환급 조치는 오랜 기간 ‘삼쩜삼’과 법적 다툼을 하고 있는 세무사업계를 겸연쩍게 만들고 있다. 홈택스 서비스를 이용해 영업하는 삼쩜삼과 똑같은 일을 국세청이 직접 한다고 나선 때문이다. 당연한 세무사 영역으로 여겼던 환급신고 업무의 변화에 충격은 적지 않다.
‘중소기업 맞춤형 가업승계 세무컨설팅’ 제공도 마찬가지. 업무영역 확대 차원에서 가업승계 컨설팅을 주력화하려던 상황에서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연말정산용 간소화자료 일괄제공 서비스도 적지만 수수료를 받고 거래처 연말정산을 대행하던 세무사들에게 타격으로 작용한다는 게 업계 반응이다.
삼쩜삼의 환급업무와 관련한 기재부의 유권해석은 실망감을 넘어 세무사들의 분노 게이지 수치를 크게 올렸다. 세무사회의 처벌 장담에다 무자격자 세무대리라는 인식이 많았던 상황에서 기재부가 세무사 편을 들지 않았다는 충격과 배신감(?)은 상당히 크다.
"기재부·국세청과 협력관계 복원 나서야 세무업 유지"
세제·세정 당국의 이 같은 행보에 세무사들이 분노를 표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지금껏 당연한 우군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섭섭함도 더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세무대리 업무와 관련한 칼자루는 세제·세정 당국이 쥐고 있다. 기획재정부·국세청과 원만한 협조관계가 유지되지 않으면 세무사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AI와 빅데이터에 기반한 전자 세정은 더욱 보편화할 수밖에 없고, 신고대리 위주의 기존 세무사 업무관행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거기다 현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향은 친기업·규제완화다. 김창기 국세청장은 취임하면서 “세무서에 방문 않고도 모든 세금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홈택스의 수준을 한층 높이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각 납세자 특성에 맞는 맞춤형 신고도움자료를 제공할 것”을 주문했다. 세무사의 역할을 축소하는 쪽이다.
그러면 동반자 관계로 불리던 세무사는 왜 기재부와 국세청으로부터 이런 푸대접을 받는 걸까. 정보화 사회의 필연적 흐름이란 분석에도 불구하고, 세무사업계 내부의 방향 착오에서 비롯됐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에 ‘올인’하다 정작 세무사 업무와 밀접한 기재부 및 국세청과의 관계 설정에 소홀해 이런 상황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서울 삼성동의 한 세무사는 “앞으로 대국민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도 납세편의를 위한 세정 조치는 더 많아질 것”이라며 “그럴 때 우리 입장을 세무사회가 전달해야 하는 데, 밀접한 협력관계 형성돼 있지 않으면 지금과 같이 (국세청이) 그냥 치고 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지난 번 삼쩜삼과 관련한 기재부의 유권해석도 마찬가지”라면서 “오로지 국회만 바라보고 세무사회가 기재부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경기 구리시의 다른 세무사도 “법을 바꾸는 건 국회지만 세무사 실무의 최고 협력기관은 엄연히 국세청”이라며 “일례로 2008년 전국 세무서에 설치됐던 ‘세무사 전용창구’가 완전히 없어진 것도 세정 당국과의 유기적 관계를 소홀히 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3월 서울세무사회는 서울국세청과의 간담회에서 일선세무서 민원창구의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며 “원활한 신고를 위해 각 세무서별로 ‘세무사 전용창구’를 운영해달라”고 건의했다. 15년 전 형성됐던 국세청과의 협력관계를 다시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달 공포된 세무사법 시행령과 관련 “세무사회가 반대 의견을 냈음에도 세무사시험 합격인원에 국세경력자는 별도로 하고 전관예우 폐지의 예외를 규정한 당초 입법예고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며 “기재부가 대놓고 세무사를 무시하는 방증”이라고 성토했다.
계속되는 기재부와 국세청의 ‘세무사 패싱’에 대한 세무사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여론이 높아지면 세제·세정 발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납세자 권익보호에 기여하는 세무사를 대하는 기재부와 국세청의 자세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세무사회도 세제·세정 당국과의 유기적 협조관계 복원에 노력해야 할 때다.
“2005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매출·매입·비용 등 몇 가지만 입력하면 세액이 자동계산 돼 세금을 내는 정부의 ‘간편납세제’ 도입이 입법과정에서 겨우 저지됐는데, 어느 정도 세금만 내면 세무조정도 필요 없는 이런 제도가 만약 도입된다면 세무사업은 끝나는 거예요.”
세제·세정 당국과의 긴밀한 협조관계 유지가 왜 중요하고, 필요한 지를 단적으로 표현한 원로 세무사의 따끔한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