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세무대리일원화 포기, 세무 빗장 푼 세력에 10년 이상 ‘묻지마지지’
-1인 특정세력 ‘나 아니면 안돼’ 아집 버리고, 회원들 비판·주인의식 되찾아야
“현재 기장료로는 사무실 유지는커녕 직원 급여도 안 된다. 직원을 줄이려고 저가 수임 거래처는 줄여나가고 있다. 언제까지 업이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울 송파에 개업 중인 50대 중반 세무사가 20년째 제자리걸음인 기장료를 거론하며 “미래가 암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최저 임금의 대폭 상승 이후 세무사 장래를 걱정하는 이 같은 위기의 목소리가 부쩍 많아지고 있다.
그러면 세무사업의 위기는 어디서 시작됐는가. 다양한 진단이 얘기되고 있다. 그 중에서 ‘외부가 아닌 세무사 스스로 만들었다’는 자성의 지적이 눈에 띈다.
오래전부터 인공지능 AI와 빅데이터 등의 융합으로 세무사 업무환경이 급변하고, 사라질 자격사로 세무사가 우선순위로 거론되는데도 한국세무사회는 대비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경쟁 단체인 공인회계사회가 표준감사시간제 도입으로 업역을 획기적으로 넓히는 와중에도 지난 10년 세무사업계는 업역확대 대신에 ‘권력 쟁투’로 보냈다는 비판이다.
세무사회 여러 회직을 맡은 성남의 한 세무사는 “세무사회는 AI시대 준비 대신에 ‘1인 체제’ 구축에 몰두하며 허송세월했다. 그런 행태에 휘둘려 온 나 자신이 한심하다. 반성한다”고 말했다. “결국 오늘의 세무사업 위기는 시대를 거스르는 퇴행적 조직운영 세력에 10년 넘게 ‘묻지마지지’를 보내며 방임한 우리 회원들이 만든 것 아니냐”며 한숨 지었다.
그는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선거 국면에서 ‘삼쩜삼 곧 처벌된다’고 호언장담하고 공수표를 날렸는데 집행부에 누구하나 항의하거나 책임을 묻는 소리를 하지 못한다”며 “이런 분위기가 창립 60년의 1만5천 한국세무사회에 몰아치고 있다”고 털어놨다.
“자유게시판이 폐쇄돼 회원 간 소통이 차단된 때문이며 이런 기류가 오래 지속되면서 회원들이 무기력증에 빠진 것 같다”며 그간 침묵했던 대표적 사례와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세무사회장 선거에서도 현직 회장이 회원이 낸 회비로 ‘돈 잔치’ 선거를 벌였는데도 아무런 제지 없이 넘어갔다고 말을 이었다. 금액과 사례를 상세히 열거했다.
당시 원경희 후보가 선거기간 중에 회원들에게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금액은 총 60억원에 달한다. 1만3000여 회원에게 주는 코로나19지원금 28억원(1인당 20만원), 4500여 회원에게 반환하는 자회사 ㈜한길TIS의 출자금 30억원, 투표한 회원들에게 지급되는 경품 2억원 등이라는 것이다.
선거기간 회원 회비로 ‘돈 잔치’ 선거운동 벌여도 ‘무신경’
세무사회 임원선거관리규정 제9조의2 제1항과 5항에 따르면 ‘선거기간 중에 후보자가 200만원 이상의 금전·물품·향응을 회원들에게 제공하거나 약속하는 행위’를 할 경우 후보자격을 박탈토록 돼 있다.
경쟁 후보들이 ‘선심성 예산집행’ ‘매표성 회무’라며 항의했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정상적인 회무 집행의 일환’이라는 한 마디로 간단하게 넘어갔다. 자신이 낸 회비로 조성된 예산 수십억 원이 선거와 관련해 논란이 일어도 회원들은 남의 일인 듯 방관했다고 그는 자책했다. ‘1인당 20만원의 코로나지원금을 언제 받느냐’에 더 관심을 보였을 뿐이라고 했다. 원경희 회장은 과반을 확보하며 보란 듯이 당선돼 재선에 성공했다.
현직 회장은 ‘회무 집행’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 천문학적 예산 사용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어도 선거규정에 저촉되지 않는다. 친 집행부 성향의 선거관리위원회가 그렇게 해석했다고 했다.
그는 “일반 후보는 회원 모임에 참석해 수십만 원의 밥값만 내도 경고를 받고, 경고 3회면 후보자격이 박탈된다”며 “‘기울어진 운동장’ 선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또 “2003년 세무대리일원화 포기로 세무사업의 빗장을 푼 세력에 10년 이상 ‘묻지마 지지’를 보내는 회원들의 심리를 도통 알 수가 없다”고 지적한다.
2016년 대법원은 변호사법 제49조가 세무사법 보다 우선 적용되는 특별 규정에 해당되는 것으로 해석해 세무사법 제6조 및 제16조를 근거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에게 세무사 등록을 거부한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종전에 세무사법이 특별법의 위치에 있어 변호사가 ‘세무조정’ 업무를 하지 못했으나, 2003년에 세무사법 제20조의2 제1항이 개정되면서부터 특별법의 지위를 잃고 변호사법이 우선적으로 적용되어 세무조정 업무를 넘겨주게 됐다는 것이다.
2003년 세무사법 개정의 후유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변호사들이 세무대리 업무를 제한하는 세무사법에 소송을 제기해 자격이 주어진 변호사들에게 세무대리 업무 전부를 못하게 하는 것은 헌법불합치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거론했다.
헌재 결정에 따른 입법 문제로 세무사회는 3년 7개월을 변호사들과 싸워야 했고, 긴 싸움 끝에 얻어낸 것은 ‘기장’과 ‘성실신고확인’ 업무를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집행부는 ‘업역침해를 저지했다’고 자찬하며 전임 회장에게 감사패를 주는 등의 법석을 떨었는데, 그럴 사안인가”라며 “장기간 2003년 후유증을 치유하느라 4차 산업시대 대비 등 본연의 회무는 손도 못 댔는데...”라고 꼬집었다.
“장기 1인체제 놀음, AI·플랫폼 시대 대응할 혁신기회 놓쳐”
이어 최근 중국에서 시진핑 주석이 3연임을 결정짓고 ‘1인 독주시대’를 연 것을 거론하며 “10년 이상 지속되는 세무사회 1인 특정세력 체제의 끝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 “나를 포함한 회원들이 1인 체제와 특정세력의 장기집권 놀음을 방임함으로써 AI·플랫폼 시대에 걸맞은 세무업무 혁신의 기회를 놓친 세무사업계 손실이 너무 크다”고 아쉬워했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고금의 명제를 거론하면서...
‘사무실 유지에도 바쁜 세무사 회원들의 무관심과 방임.’ ‘비판을 용납 않는 소통 부재의 한국세무사회.’ ‘새로운 먹거리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세무사 업계.’
업계 내부의 이런 문제점 지적은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때 답답함을 준다. 어렵다기 보다는 회비를 내는 회의 주인인 회원과 그들을 대표하는 집행부가 소통하면 쉽진 않겠지만 해결될 일들이기 때문이다.
1인 특정세력의 ‘나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을 버리는 것, 이를 위해 회원들이 주인의식을 되찾아 눈을 부릅뜨는 것이다. 조직의 정상화를 위한 비판이 허용되고 공정한 시스템으로 세무사회가 운영되도록 구성원이 힘을 모을 때다. 지금이라도 위기 타개의 출발선에 함께 서야 한다.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아서다.
“제대로 된 선거규정과 공정한 룰이 적용되는 선거에서 투표하고 싶다.”
성남지역 세무사의 평범하고 지극히 소박한 한마디가 세무사업계 위기 해법으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