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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稅칼럼] 세제개편 미룰 이유 없다
[國稅칼럼] 세제개편 미룰 이유 없다
  • 정창영 주필
  • 승인 2017.06.30 10: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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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 주필

Ⅰ. 우리나라 근로소득자 100명 중 47명은 근로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근로소득자 1726만명 중 46.5%인 803만명은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흔히 면세자라고 하면 극빈층을 연상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연봉 3000만~4000만원 구간에서의 면세자 비율도 30.3%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기본적인 원칙이 심하게 왜곡된 것은 여러 이유가 섞인 데다 근로소득세 징수 체계를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꿨기 때문이다. 중·저소득층의 공제율이 치솟으면서 2013년 32.2%였던 면세자 비율이 2015년 46.5%로 껑충 뛰었다.

근로소득자 면세자 비율은 미국(35.8%), 캐나다(33.5%)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 면세율이 5.9%인 영국과는 4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과세의 기반을 취약하게 한 근로소득세 체계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고쳐야한다고 쉽게 진단이 나오지만 조금만 들어가 보면 손대기 쉽지 않은 이유와 원인이 난맥처럼 얽혀 있다. 단순하게 ‘잘 못 됐다’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복잡하게 이어져 있다는 얘기다. 조세전문가들조차 과세베이스는 넓혀야 한다고 주장 하면서도 근로소득세 대목에 이르러서는 주장의 집중력이 떨어진다. 상황이 이러니 국민 여론을 의식해야 하는 정부나 정치권에서야 말 할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 세제를 두고 ‘누더기 세제’라고 흔히 지적하지만 기획재정부 세제실 당국자 중에 세제를 누더기로 만들고 싶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름대로 전문가들이었고, 조세제도의 기본 골격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한 치도 밀릴 이유가 없을 정도로 무장이 돼 있는 공무원들이었다. 그런데도 세제에 대한 문제점이 거론될 때면 뭇매를 맞을 정도로 엉망으로 운영해 왔다. 마치 동네북이 된 신세였다. 그들조차 어쩔 수 없었던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얘기다. 해마다 세법개정안을 들고 나오면 예외 없이 ‘땜질식’이라는 지적이 단골로 나왔다. 그런데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Ⅱ.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문제점에 대한 문제의식마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감각해지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솔직히 아주 대증적인 요법 말고는 세제개편을 아예 포기한 느낌마저 든다. 문재인 정부가 새로 출범했지만 우선순위에 밀렸는지 세제개편에 대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막중한 과제를 놓고 볼 때 세금의 중요성은 충분히 감지가 되고도 남는데 세금의 틀인 세제를 두고는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혹시 국세청이 탈 없이 세금을 잘 거두고 있으니까 아무 문제가 없는 걸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나라 세제는 그 골격인 개인과세제도와 기업과세제도, 재산과세제도, 소비과세제도 등 전 분야에 걸쳐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동안 세제개편을 너무 자주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세제를 주무른 적도 있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아주 기본적으로 세법을 손질한 것 외에는 제대로 세제개편을 하지 못했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는 자주 고치는 것이 능사는 아니고, 그동안 필요한 것은 그때그때 반영해 왔다고 말할 수 있지만 문제는 시대적 상황이나 흐름이 너무 빠르고 크게 바뀌는데 비해 세제가 이를 체계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수 차원에서 내지 경제현안, 국정운영에 필요한 과제를 세제에 적당히 반영하는 것으로 매년 세법개정은 마무리 돼 왔고, 그나마 이슈가 되거나 국민적 부담이 될 만한 것은 아예 미뤄 온 것이 그동안의 세제운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한쪽에서는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굳어진 것도 있고, 난맥상처럼 얽힌 비과세 감면 규정은 손대기가 쉽지 않은 지경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입만 열면 4차 산업혁명인데 조세제도는 분위기도 못 맞추는 상황이다.

Ⅲ. 흔히 조세제도나 국세행정을 두고 국민재산권을 다루는 업무라고 말한다. 후렴처럼 민감하고 소중한 행정이라는 말도 붙는다. 국민 입장에서는 정부의 여러 정책 중 조세정책 내지 국세행정에 관한한 예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직접 몸에 닿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들을 즐겁게 하거나 베푸는 정책을 쓸 때는 좋지만 이를 조일 때는 타이밍을 잃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감면 선심을 쓸 때는 좋은데 이를 일몰 시키는 일에는 고통이 따른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감면 기득권’이 형성된다. 현재 우리 세법에는 수도 없이 많다. 정부 입장에서 개정을 추진하려고 하면 여론이 형성되고, 민심이 들끓고, 선거가 코앞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거창하게 출발하려고 어금니를 깨물었다가 유야무야 된 경우도 많다.

특히 이런 개편일수록 정권 말기에는 진행이 어림도 없다. 하던 일도 손 놓아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제개편은 적기가 정부출범 초기다. 단 전제가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수반돼야 하고, 철저한 검증과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복지를 내세웠고, 이에 수반되는 재원이 아주 필요한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처럼 조달방법에 대해 어물쩡하게 넘어갈 상황도 아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세제개편은 지금부터 추진해야 한다. 특히 조세제도 측면에서는 묵은 과제가 너무 많기 때문에 차분하게 진행해서 실무차원의 준비까지 빨리 마쳐야 한다. 그런데도 기획재정부 세제실은 현안으로 부각된 세법 문제점마저 여론의 눈치를 보며 ‘중장기 검토과제’라는 꼬리표를 달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고 있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이러면 문제에 앞서 의지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제 세제개편은 종합적으로 검토해 정확한 이슈를 만들고 국민적 공감을 확보해 추진해야 한다. 미룰 이유도 여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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