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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砲音]정치의 언어, 언어의 정치
[세종砲音]정치의 언어, 언어의 정치
  • 일간NTN
  • 승인 2016.03.0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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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소통 도구·정치 요체 유권자는 어디에 공감할까
 
송신용 대전일보 서울지사장

'사람 나고 법 났지, 법 나고 사람 났나요'라는 작은 책자가 나왔다.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 출범 3년을 이틀 앞둔 23일 선보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은 테러방지법 단독 처리에 반대해 말(言)을 무기로 한 '필리버스터'(Filibuster)에 나섰다. '정치의 언어, 언어의 정치'를 떠올리게 한다. 본질적으로 언어를 매개로 한 일종의 정치행위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다.

'사람 나고…'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의 주요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언급한 비유들을 엮었다. '어둠을 탓하기보다는 촛불을 켜라'고 은유하는 식이다. 경기 회복을 기다리기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세계 경제의 재도약을 주도해야 한다는 의지와 도전을 강조한 메시지다. '손톱 밑 가시', '불어터진 국수'처럼 귀에 익은 말도 포함돼 있다. 정부 정책을 간결하게 설명함으로써 국민들과 보다 가깝게 소통하기 위한 의중이 엿보인다.

실제로 사자성어를 재치있게 해석한 '우문현답(우리의 답은 현장에 있다)은 공무원의 단골 건배사가 될 정도로 공감대가 넓어졌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앞으로 그렇게 국민을 위해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 부탁드린다'(2015년 11월 국무회의)는 말이 생각났다. 총선거를 앞둔 가운데 진박(진짜 박근혜), 가박 논란을 불러 일으킨 문제의 발언이다. 유권자들의 반응이 어떨지도 여전히 궁금하다.

과거 박 대통령은 절제와 직격의 언어로 듣는 이를 사로잡았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테러를 당한 뒤 병원에서 던진 "대전은요"가 대표적이다. 18대 총선 공천을 놓고는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을 했다. 그 한방으로 유권자를 내편으로 끌어당겼다. 언어는 그렇게 힘이 세다. 하지만 최근 은유와 함께 격정과 직설의 표현을 마다하지 않는 듯하다. 듣는 이의 반응은 물론 정치적 득실이 달라질 텐데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필리버스터는 본질적으로 직설과 격정의 언어로 구사된다. 이 낯선 정치 용어는 16세기의 '해적선' 또는 '약탈자'를 의미하는 스페인어에서 유래했다. 그만큼 부정적이다.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시간제한 없이 발언에 나서 의사진행을 고의로 방해하는 행위다. 말발과 체력이 필수다. 1973년 국회의원 발언 시간을 규정하는 국회법 조항 신설로 폐지됐다가 2012년 국회법 개정으로 재도입됐다. 50년만에 국회 본회의장에 다시 등장하면서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더민주 은수미 의원은 어제 김광진 의원이 앞서 세운 국회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를 갈아치웠다. 그는 10시간 18분의 무제한 토론을 마친 뒤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왔다. 다걸기를 한 셈인데 단순히 의사진행 방해 이상의 성과를 거뒀는지 의문이다. 필리버스터에서 이미 보여줬지만 야권의 거친 언사는 '정치의 언어'라기보다 '언어의 정치'에 함몰돼 있는 것처럼 들린다. 논리와 설득, 교감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구호가 들어서다 보니 호소력은 글쎄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 주자인 버니 샌더스는 필리버스터로 유명세를 타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경우다. 그는 2010년 부유층의 세금 감면 연장안을 막기 위해 8시간 37분 동안 연설을 했고, 책으로 출간되기에 이른다. '의원의 발언 내용에 대해서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고, 어떠한 내용이라도 의원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라는 조항을 뛰어넘는 내공을 보여줬다. 아무래도 콘텐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치언어의 품격'(박성준 JTBC 아나운서 팀장)은 정치인의 말과 품격을 다룬다. 정치의 본질은 말에서 출발하고, 정치언어는 권력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정치인의 언어는 국가의 기본이며 기초질서를 형성한다. 정치언어가 혼란스러우면 당연히 사회와 국가가 무질서하게 돌아간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정치언어가 화합과 조화를 이울 때 통합과 통일로 갈 수 있다. 말이 의미 있는 언어기호가 되기 위해선 경청이 전제돼야 한다. 상대를 존중할 때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는다. 총선이 정치언어의 품격을 가늠하는 시금석으로도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송신용 대전일보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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