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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 둑길을 걸으며"
"중랑천 둑길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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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6.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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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면서] 안용진 회계사
   
 
 
情이란 무엇인가? 사람과 사람사이에 정이 없다면 살기가 팍팍할 것이다. 꼭 무얼 주고받는 것만이 정은 아니다. 그냥 좋고 사랑하고 가까이하고 싶어지는 것도 정이리라. 그것은 꼭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물을 찾아가고 산을 오르는 것도 그들과 서로 정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보다 걷기를 좋아하고 그것이 내 생활의 일부이고 보면, 보고 보이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한강 고수부지의 잘 다듬어진 산책길을 걸으며 행복감에 졌어 보기도 하고,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경외(敬畏)의 옷깃을 여미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중랑천은 다르다. 높다란 둑길을 매일 아침저녁 걸으며 친할 만큼 親하기도 하고 정이 들 만큼 情도 들었다. 정확히는 몰라도 약 10년 세월 출 퇴근을 그리하고 있다. 휴일에도 예외는 아니다. 노는 날에는 오히려 더 느긋하게 중랑의 모든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즐기며 걷는 코스를 달리하거나 또는 청계천 방면으로 외도를 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청계가 좋다지만 나는 중랑에 더 정이 간다. 청계가 돈 냄새 나는 귀공자라면 중랑은 땀 내음 폴폴나는 고향집 어머니 같다.

공자는 냇가에 서서 “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 도다”(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하였다. 그 깊은 뜻은 모른다. 다만 가고 다시 오지 못함을 설워말자. 언젠가는 구름 되고 비 되어 여기 중랑을 다시 찾으리라. 좌우간 나는 중랑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혹자는 매일 같은 길을 걷고, 똑 같은 것을 보면서 무슨 재미냐고 물을 것이다. 그건 중랑천을 모르는 말이다. 시계바늘이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아도 시시각각 변하는 것과 같이 잠시도 똑 같은 중랑의 모습은 없다. 철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잠시도 그냥 있는 중랑이 아니다. 살아있는 중랑은 여름 장마에 대청소도 하고 사우나도 즐기나 보다. 폭풍우 몰아치면 ‘윙윙’ ‘쌩쌩’ ‘우루루 쾅쾅’ 하고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나 보다. 아마도 그것이 莊子가 말하는 하늘이 부는 퉁소소리, 우주의 음악, 천뢰(天?)가 아니겠는가.

지금은 때가 지났지만 한창 잉어 떼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때는 정말 장관이다. 수심이 얕은 여울목에서 떼를 지어 뒤엉키어 퍼덕이는 모습을 그대는 보았는가? 아침 햇살을 받은 잉어 떼의 황금빛 스펙터클을 보고 누가 시인이 되지 않겠는가. 이름 모르는 물새들이 잉어들의 짝짓기 미팅을 지척에서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는 없다. 단순히 음양의 법칙에 따라 서로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의 몸부림이라면 그들을 모르는 말이다. 그들에게도 분명 여유가 있고, 낭만이 있고, 오고 가는 정이 있고, 밝은 미래도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중량천의 과거는 묻지 말자. 나이든 사람은 안다. 세상 더러운 것은 다 모인 시궁창 이었고, 고약한 냄새로 사람은 물론 물고기며 뭇 새들의 접근을 한사코 마다한 중량천의 부끄러운 과거 말이다. 누구의 잘못도 묻고 따지지 말자. 나는 세금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으로 참으로 돈이 좋기는 좋다고 생각한다.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늙어가는 사람을 젊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랑은 그렇지 않다. 날로 젊어지고 있다. 볼 때 마다 생기가 돌고 활기 찬 모습이다. 그것이 다 그대가 내고 내가 내는 세금의 힘이고 관계당국에서 정성들여 다듬고 치장한 덕이 아니겠는가.

내가 늘 걷는 길은 군자교에서 성동교까지 약 3K의 제방이다. 둑길이라고는 하지만 잘 다듬고 곱게 꾸며진 멋있는 포장도로이다. 아마도 서울에서 나무가 제일 무성하고 대부분 숲속 터널길이다. 아름드리 수양버들은 너무 巨木이어서 점차 세대교체의 처지이고, 은행나무와 프라타나스가 주종이다. 개나리는 완전한 울타리가 되었고, 몇 년 전부터 심기 시작한 벚나무가 점차 서울의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작년에 심은 줄 장미는 지금 한창 선홍(鮮紅)으로 흐드러져 마치 ‘붉은악마’를 연상케 한다.

내가 걷는 중간지점 약 1k의 길이로 은행나무의 울창한 숲이 또한 가관이다. 너무 빽빽한 것이 흠이지만 수백 그루가 수십 미터로 쭉쭉 뻗어 있는데, 그 아래로 오솔길이 있고 거기에는 하늘은 없고 상큼한 나무 냄새와 냉냉한 공기뿐이다. 아무래도 제일 대접받는 나무는 벚나무이다. 둑길 가장자리 좋은 위치에 양옆으로 수백그루의 젊은 나무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그들의 성장과정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겨울지난 앙상한 가지에 물이 오르고 꽃망울이 커지면서 나는 매일 설레이게 되었다. 햇살 따스하고 막 망울이 터지려 할 때는 긴장감마저 감돌기도 하였다. 사춘기 소녀의 젖꼭지가 저러지 않을까 하였다면 내 감정이 불순한 것일까. 꽃이 활짝 피었을 때는 연분홍 드레스에 립스틱 짙게 바른 중년 여인들의 호들갑에 덩달아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이제 꽃이 진 자리에는 파랑, 빨강, 까망의 앙증스런 열매가 길손을 유혹한다. 며칠 전 다른 사람 눈을 피해 잘 익은 열매 하나를 입에 넣었다. 새콤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집에서 가끔 후식으로 먹는 탐스러운 버찌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량보다는 질이라고 하였던가.

오늘아침 출근길에는 소나무, 잣나무 군락 밑에서 한 동안 서성거렸다. 길쭉한 새순(荀)이 정말 미끈하고 탐스럽고 사랑스러워서였다. 긴 놈은 아마도 30센티미터도 넘을 것 같은데 바람이 불면 뚝 부러질까 걱정이었다. 허나 아마도 태풍이 올 때쯤이면 힘이 생기고 바람에 순응하는 요령도 알 것이니 내 걱정은 붙들어 매어도 좋으리! 어쨌든 이 혼탁한 서울의 공기와 소음 속에서 그리도 잘 자라준 것이 고맙고 자연의 섭리에 경탄(敬歎)할 뿐이다.

나는 동양철학을 한답시고 몇 년째 씨름하고 있다. 매일 중랑의 둑길을 걷는 것도 탁! 트이기를 바라는 공부인지도 모른다. 어는 哲人이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脚注-글이나 말의 뜻을 따로 설명함)이고, 동양철학은 주역의 해석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易을 모른다. 그렇지만 몇마디 구절은 안다. “넉넉하게 가지는 것을 큰 사업이라 하고(富有之謂大業),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을 성대한 공덕이라 하고(日新之謂盛德), 낳고 낳는 것을 易(주역)이라 한다(生生之謂易)” 중량천 둑길을 걸으며 이 말이 왜 가슴에 와 닿는가? 나와 중랑의 모든 것이 한 몸이라면 건방진 말인가.

그렇다 자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둑 밑 강 옆으로 지천으로 자라는 억새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이 흐르고 흐르는 물, 살랑이는 강바람, 그 속에서 콧노래 부르며 어슬렁거리는 우리들 이 모두를 일컬어 자연이라고 하나보다. 그것은 우주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살아 숨쉬는 하나의 유기체 이다. 나는 그 속의 세포, 나노(10억분의1)중의 나노가 아닌가. 중랑이 하는 일은 정말 넉넉하고 푸짐하고 지칠 줄 모르는 위대한 사업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날마다 새롭고 더 새로우니 그 보다 더 큰 공덕이 어디 있는가? 잠시도 쉬지 않고 낳고 또 낳으니 신통하지 않는가? 나는 오늘도 중랑천 둑길을 걸으며 배우고 있다. 날로 달라지고 새롭고 새로워지면서 결국은 늘 그대로인 것을, 변하면서 변하지 않는 것을, 그것이 자연이고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인 것을. 그래서 身土不二인 것을! 그것이 바로 天人合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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