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 도입 논의 과정엔 여론에 떠밀려 ‘땜질 입법’을 남발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여야가 합의한 법안도 여론의 눈치를 살피다 시행을 미루거나 내용을 뜯어고치는 경우가 잦다. 정치권이 시장의 예측 가능성과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 등 금융투자로 발생한 소득에 매기는 세금이다. 주식은 연간 5000만원, 기타 금융투자는 250만원이 넘는 소득에 대해 20~25%의 세율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여야 합의로 본 회의를 통과해 2023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했었다. 당시엔 “조세정의 개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소액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을 의식한 여야가 2년 유예(2025년 1월 시행)하기로 합의 했다.
그러나 시행 몇 개월을 앞두고 여당은 ‘금투세 폐지’를 내걸고 야당을 향해 “금투세 강행하면 주가가 하락할 것”(여당 대표)이라는 등의 공세를 폈다. 지난달 24일 정책토론회에서 ‘인버스(주가 하락 베팅) 투자하라’는 발언에 비난이 빗발치자 팽팽하던 야당 지도부의 기류도 유예 쪽으로 기울었다. 이를 두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한 관계자는 “이미 여론에 떠밀려 공제 한도가 높아져 세수확보 효과도 없다. 또 유예할 거면 차라리 폐지하는 게 낫다”고 토로했다고 전해진다.
□ 잦은 땜질 세법…입법과정에서 정확한 현실 진단을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과세도 세 번째 유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가상자산 과세는 가상자산을 양도하거나 대여해 연 25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리면 22%의 세율로 세금을 물리는 내용이다. 2022년 1월 시행 예정이었으나, 시행 직전 한 차례 미뤄졌다.
2022년 12월 가상자산이 폭락하자 다시 도입을 2년 미뤘다. 그러다 지난 7월 여당 소속 송언석 기재위원장은 가상자산 과세를 2025년에서 2028년으로 3년 더 유예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철저한 준비 없이 성급하게 과세를 시행하면 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라는 게 발의 이유다.
지난 3년간 ‘철저한 준비’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을 도모하겠다”라며 도입한 종합부동산세법(이하 종부세법)은 ‘땜질 입법’의 대명사이다. 2005년 제정된 이 법은 지금까지 13차례나 개정됐다. 2005년 첫 종부세는 공시가격 9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 중 다주택자에게 부과됐다. 주택 보유 여부는 세대별이 아니라 개인별로 따졌다.
종부세 도입 후 강남 집값이 폭등하자 노무현 정부는 같은 해 8·31 대책을 통해 종부세 과세기준을 6억원 초과로 낮추고, 부과 방식을 개인이 아닌 가구별 합산으로 바꿔 납세대상을 대폭 확대했다.
하지만 2006년 서울 아파트값은 24%, 전국 아파트값은 14%나 급등했다. 종부세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재산세가 사실상 부동산 보유세 역할을 하는 상황이라 이중과세 논란도 계속됐다.
2008년에는 종부세 세대별 합산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고, 이명박 정부는 다시 인별 합산방식으로 재조정하고, 1주택자는 공시가격 9억원 초과일 때만 납부 대상이 되도록 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2019·2020년 세 차례에 걸쳐 다주택자 중과율을 높이면서도 2009년에 만든 ‘공시지가 6억 원 초과’ 부과기준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 결과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고지 인원은 2017년 33만 2000명에서 2022년 119만5340만 명으로 늘었다. 강남 3구뿐 아니라 강북에서도 1주택자가 대거 종부세 대상에 포함됐다. 지난 6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종부세의 주택가격 안정효과는 미미하고, 세 부담은 임차인에게 전가된다”라며 “폐지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야당에서도 산발적으로 “차라리 없애자”(고민정 의원)라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반복되는 땜질 입법에 시장은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종부세의 경우는 차치하고라도 금투세의 경우를 보자. 김한규 의원실에 따르면 국내 10개 증권사가 지난 3년간 금투세 도입에 대비해 투입한 외부 컨설팅비와 전산시스템 구축비 등만 450억원에 달했다. 금투세가 폐지되면 기껏 마련한 시스템도 폐기될 운명이다. 이처럼 법안의 도입 여부나 변경 등 불투명한 상태는 시장 불안 요소일 뿐만 아니라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수반한다. 따라서 입법과정에서 좀 더 정확한 현실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 현실감 떨어지는 낡은 세법…서둘러 손봐야
개별소비세법에는 배기량 1000cc를 넘는 차량에 여전히 자동차 값의 5%를 개별소비세로 물리고 있다. 이 세금은 ‘사치세’로 불리며 1977년 과소비를 막는 취지에서 도입됐었다.
47년이 지나 자동차가 필수품이 된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차량 등록 대수는 2600여만 대, 성인 2명 중 1명꼴로 자동차를 보유하는 시대인데도 그렇다.
한시적으로 시행한 뒤 자동 폐기하기로 한 법안들이 한없이 연장되기도 한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에 따른 농어촌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10년 기한으로 도입된 농어촌특별세(이하 농특세)는 농민 표심을 의식해 30년째 이어지고 있다. 증권거래세·종합부동산세 등 다른 세목의 세액에 일정 비율 부과되는 농특세는 이미 도입 당시 목적을 달성한 데다, 오로지 농·어업 분야에만 활용되는 목적세여서 재정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많다.
당시 부자의 전유물이었던 주식·부동산 투자는 지금은 서민·중산층의 일상적 거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법 개정은 요지부동이다. 쉽게 걷을 수 있는 농특세를 포기할 수 없는 정부와 농어민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인지세’도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세목이다. 통장을 개설할 때 100원, 신용카드 신청서를 쓸 때 300원, 부동산계약서(거래액 10억원 이상)를 쓸 때 35만원, 5만원을 초과하는 모바일상품권을 발행할 경우 400~800원 등 증표·종이를 발행할 때 붙는 세금이다. 1950년 도입해서 75년째 유지 중이다. 모두 현실감이 떨어져 폐지 또는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 시대 변화에 맞게 고쳐야 할 세법…상속세, 소득세
상속세 최고세율은 2000년 이후 요지부동하다 24년 만에 개편돼 올해 국회에 제출됐다. 30억원을 초과한 상속·증여 시 50% 적용하던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10%포인트 내리는 내용이 핵심이다.
하지만 그렇게 통과된다 해도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속세를 도입한 24개국의 평균 최고세율(27.1%)과 비교해 높은 편이다. 우리 상속세를 적어도 다른 나라 수준으로 낮추고 부과 방식도 현행 유산세(피상속인-상속해 주는 사람 기준)에서 유산 취득세(상속인-상속받는 사람 기준)로 바꿔야 할 것이다.
근로소득세 부담 상황도 보자. 급여 소득자가 매달 내는 소득세는 과세표준 기준을 그대로 두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불어난다. 매년 물가와 함께 임금도 일정 수준 따라 오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유리 지갑’ 월급쟁이 세금을 손쉽게 털어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득세는 돈을 많이 벌수록 더 많이 내는 누진세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른 과세표준은 8단계다. 6~45%의 소득세율을 적용한다.
소득 1400만원 이하에 가장 낮은 6%, 소득 50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에 24%, 소득 8800만 원 초과~1억5000만원 이하에 35%, 소득 10억원 초과에 45% 세율을 각각 적용하는 식이다. ‘경계선’을 기준으로 세금부담이 확 늘어나는 구조다.
문제는 경계선이 시대 흐름에 뒤처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소득세율 35%는 과세표준 8800만원 초과분부터 적용한다.
2008년부터 유지해 왔다. 16년간 물가상승률(연평균 2.3%)을 고려하면 35% 세율은 현재 약 1억2000만 원 초과분에 적용해야 한다. 월급 오른 만큼 세금을 더 내는 게 맞다 하더라도 세금의 증가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물가상승이 납세자를 더 높은 세율 구간으로 견인해 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부터 올해까지 국세가 연평균 4.9% 증가하는 동안 근로소득세는 연평균 9.6% 늘었다는 관련 기관의 분석도 있다. 가계 소득 증가속도에 견줘도 소득세가 가파르게 오른 만큼, 세 부담 증가속도 조절을 자세히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소득세 과세표준이나 각종 공제제도를 물가상승률에 연동하는 ‘물가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
근로소득자 중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는 면세자 비율이 33.6%(2022년 기준)에 달한다는 점은 물가연동제 추진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면 과세표준이 올라 면세자가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세 부담의 공평성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손에 쥐는 소득이 늘어나게 되면 근로소득자의 근로의욕도 높아지고 소비를 자극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의 정비와 함께 소득세 감면을 받더라도 ‘최저한세’를 적용하는 등의 소득세법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본다.
• 국세청 국장 명예퇴직
• 세무사(세무법인 정담 대표)
• 경영학박사
• 수필가
• 가천대 대학원 겸임교수
• 서울세무사회 자문위원장
• (사)건강사회운동본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