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서는 그동안 소득세신고와 관련하여 단순경비율이 적용되는 소규모 사업자를 상대로 납부세액이나 환급세액을 미리 계산해서 신고 안내문을 제공하는 ‘모두채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영세납세자들의 납세편의를 도모해 왔다.
그런데 올해는 영세한 소규모 사업자뿐만 아니라 근로소득이나 연금소득 등 사업소득이 아닌 다른 소득이 발생한 납세자들까지 모두채움 대상을 확대 시행함으로써 서비스 대상이 무려 640만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국세청으로부터 모두채움 안내문을 받은 납세자는 홈택스 뿐만 아니라 ARS 전화를 통해서도 간편하게 소득세신고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에다 배달라이더나 대리운전기사, 학원강사 등 약 400만명의 인적용역 소득자들에게는 국세청에서 ‘모두채움(환급) 안내문’을 발송해서 인적용역 소득자들이 홈택스나 ARS 전화 한통으로도 쉽게 환급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국세청은 이미 지난 3월 22일 개최한 ‘2023년 제1차 국세행정개혁위원회’에서 디지털 혁신의 일환으로 AI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납세자가 세무서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신속하고 편리하게 세금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국세청의 이런 선진화된 납세서비스를 통해 영세사업자나 소득구성이 단순한 납세자들에 대한 납세편의가 대폭 증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획기적인 서비스가 가능한 것은 국세청이 보유하고 있는 방대한 빅데이터 세무정보와 첨단화된 국세통합시스템 등의 기반이 갖춰진데다가 최상의 납세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국세청의 의지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국세청의 이런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모두채움 서비스를 통해 소득세신고를 마친 납세자들의 신고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각종 비용이나 공제항목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실제 내야 할 세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일각에서는 모두채움 서비스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듯하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소득세제는 신고납세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소득세 납세의무자가 본인의 소득세 과세표준과 세액을 스스로 계산해서 신고·납부해야 한다. 즉 신고납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소득세제 하에서는 납세의무자가 소득세의 과세표준과 세액을 본인의 책임으로 스스로 계산하여 확정신고를 함으로써 추상적으로 성립된 소득세 납세의무가 구체적으로 확정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규모가 큰 성실신고대상사업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당 과세기간의 종합소득금액이 있는 거주자는 그 과세기간의 다음 연도 5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종합소득 과세표준을 납세지 관할세무서장에게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소득세신고방식과 관련해서 소득세법에서는 전년도 소득금액 규모에 따라 기장의무를 구분하고 있고, 기장의무를 위반하는 경우에는 무신고로 봐서 가산세를 부과하고 있다. 거기에다 소득금액을 계산할 수 있는 장부 없이 정부에서 정하고 있는 경비율을 적용해서 추계로 신고할 수 있는 납세자의 경우에도 전년도 소득금액 규모에 따라 기준경비율이나 단순경비율을 구분해서 적용해야 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소득세신고 대상인 납세자가 스스로 납부해야 할 세금을 계산하고 신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납세자가 소득세법에 따라 기장의무를 판단하고 장부를 만들어 소득금액을 계산하고 소득세 신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확하고 성실한 납세를 위해서는 비용이 들더라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소득이 많거나 소득금액의 규모가 큰 납세자의 경우에는 비용을 들여서라도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제대로 된 기장을 바탕으로 적정한 세금을 신고하고 납부할 수 있겠지만, 영세한 소득자나 소득금액의 규모가 작은 납세자의 경우에는 스스로 세금신고를 하기도 힘들고 비용부담으로 인해 전문가의 도움도 받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국세청의 ‘모두채움 서비스’는 영세한 소규모 사업자나 소득구조가 단순한 소득자를 위한 굉장히 유용한 서비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국세청의 모두채움 서비스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자료를 바탕으로 기계적으로 세금을 계산하여 납세자에게 안내해서 납세자가 동의하면 소득세신고 절차가 마무리됨으로써, 만약 업종코드가 잘못 입력돼 있거나 변동이 있는 경우 등으로 인해 세금이 잘못 계산되어 나중에 세금이 추가로 고지되거나 가산세가 부과되는 경우 납세자의 입장에서는 정부가 부과한대로 세금을 납부한 것으로 주장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모두채움 서비스를 통해 국세청에서 추계방식으로 계산해서 안내한 세금을 내게 되면 이자비용 등 여러 가지 비용을 반영했으면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과다하게 내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국세청이 반영하지 못한 부양가족 공제로 인해 세금을 과다하게 내는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들이 발생할 경우 나중에 추가로 발생되는 세금이나 그에 대한 가산세에 대한 책임소지 논란이 불거질 수 있고, 반대로 과다하게 납부한 것에 대한 경정청구가 있을 때 환급가산금을 지급해야 할지에 대한 논란도 있을 수 있다.
국세청의 입장에서는 납세자의 편의를 위해 세금을 대신 계산해서 안내를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두채움 서비스 이용으로 인한 과소납부나 과다납부는 모두 납세자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겠지만, 국세청의 모두채움 서비스 안내를 받고 내용도 모른 채 따라한 영세 납세자의 입장에서는 정부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기 때문에 정부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기 쉬울 것이다.
논리적인 비약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국세청의 ‘모두채움 서비스 이용으로 인해 행정법상’, ‘신뢰이익보호의 원칙’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행정법의 일반원칙 중 ‘신뢰이익보호의 원칙’이란 국민이 정부의 공식적인 의견표명을 신뢰하고 그 신뢰가 보호가치가 있는 경우 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신뢰이익보호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한 요건으로는 먼저 행정관청의 행정지도나 질의에 답변 등 행정관청의 선행조치가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 국민이 그 행정조치를 신뢰하고 그에 기반하여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했어야 한다.
신뢰이익의 보호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실정법으로는 행정절차법 제4조 제2항을 들 수 있는데 이 규정에 따르면, “행정청은 법령 등의 해석 또는 행정청의 관행이 일반적으로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졌을 때에는 공익 또는 제3자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해석 또는 관행에 따라 소급하여 불리하게 처리해서는 아니된다”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조세와 관련해서는 국세기본법 제18조 제3항에서 “세법의 해석이나 국세행정의 관행이 일반적으로 납세자에게 받아들여진 후에는 그 해석이나 관행에 의한 행위 또는 계산은 정당한 것으로 보며, 새로운 해석이나 관행에 의하여 소급하여 과세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신뢰이익보호의 원칙을 언급하고 있다.
국세청에서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모두채움 서비스’를 이용하는 납세자는 정부의 행정조치를 신뢰하고 그에 따라 세금을 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모두채움 서비스에 따른 세금계산에 오류가 발견될 경우 ‘신뢰이익보호의 원칙’의 적용을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세청이 징세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납세편의 서비스를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그 서비스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납세자의 신뢰를 훼손하게 될 수 있으므로 좀 더디더라도 보다 정교한 서비스를 고민해봤으면 한다.
• 현) 세무회계 조이 대표세무사
• 현)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 법무서비스지원단 전문위원
• 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교우회 회장
• 전) 한국세무사고시회 회장
• 국립세무대학 내국세학과 졸업
•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 호주 시드니대학교 로스쿨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