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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 칼럼] 세금정책 밑그림 다시 그려야 할 때다
[정창영 칼럼] 세금정책 밑그림 다시 그려야 할 때다
  • 정창영 주필
  • 승인 2021.12.09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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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세금정책 한계 직면 국민적 합의 도출한 ‘조세개혁 계획’ 세워야”
정창영 주필

  Ⅰ
 

‘선거는 정책을 어지럽게 한다.’ 표심을 향한 강력한 도구가 정책인 만큼 선거 때 쏟아져 나오는 정책을 뭐라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국민 신뢰와 일관성이 생명인 세금정책은 신중해야 하는데 도통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요즘 대선 후보들이 쏟아내는 세금관련 공약을 보면 어떤 것이 줄기이고 가지인지 구분이 어렵다. 겉은 초록 잎으로 치장했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넝쿨이다. 여기에 상황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바뀌고 변하다 보니 단순한 어지러움의 차원을 넘는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세금정책은 파급력이 엄청나다. 당연히 유권자 입장에서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대선 후보들마다 세금정책과 공약을 쏟아 내지만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내민 세금정책은 얼마 가지 않아 ‘실행 불가’ 판정을 받고 유야무야 코스를 밟는다.

이는 단지 ‘아니면 말고’로 끝나지 않고, 곧바로 세금 불신으로 이어진다. 국가 세금정책이 불신을 받기 시작하면 심각한 상황으로 연결된다. 세금공약을 정말 잘해야 하는 이유다.

이번 선거에 나서는 대선후보들은 적어도 세금과 관련해서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지금 우리 세금정책은 누더기 정도를 넘어섰다. 하도 덧대서 원판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지금까지 운용돼 온 세금정책으로는 ‘갈 수 없는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 여론에 따라, 오로지 눈치만 살피는 세금정책으로는 답이 없고 분명한 한계에 왔다. 출마한 후보들 마다 ‘확’ 바꾸겠다는 공약을 걸고 있는, ‘죽을 쑨’ 부동산 관련 세제는 그동안 워낙 많은 처방전이 나와 논외로 치더라도 현행 세금제도는 심각한 국면에 있다. 따라서 세금정책과 관련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꼽자면 미안하지만 밑그림부터 다시 그리는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세제 운용에서 큰 줄기를 이루는 ‘기본방향’이 실종됐다. 아니 형식은 있는데 내용 면에서 보자면 국가와 시대가 요구하는 절대적인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주 희박해졌다. 큰 틀을 이루는 원칙이 사라지고 현안 내지 현상에 급급하고 있다.

세금을 거두는 조세정책의 경우 국가가 가야할 국정 비전과 방향, 목표를 염두에 두고 그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재원을 어떤 방법으로, 어떤 규모로, 어떤 대상에게 어떻게 거둘 것인가를 원칙으로 그려 놓고 출발해야 한다.

여기에는 글로벌 흐름은 물론 이미 심각하게 고장 나기 시작한 우리 자본주의의 불평등·양극화 문제부터 일자리·저출산·고령화 상황, 산업 흐름의 변화에 따른 경제운용 등 다양한 요소를 정밀하게 예측하고 반영해야 한다. 세금정책은 국정 운영의 총 결집체, 즉 ‘종합예술’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재산권’을 다루는 정책인 만큼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은 기본 중 기본 고려 요소다.

물론 철저한 검증과 검토를 거쳐 확정한 원칙이라도 변수가 상존하는 만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는 유연하게 대응을 해야겠지만 일단 세금정책은 구체적 방향과 내용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공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루루 몰려다니며 ‘하자!’고 했다가, ‘아니다 안 해!’라고 하거나 ‘너 이번에 한 번 맞아 봐!’ 식의 ‘느낌표’가 끼어들어서는 정말 곤란하다. 국가와 국민 간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에 신뢰를 잃는 순간 곧바로 ‘저항’으로 표출되는 것은 역사가 제시하는 분명한 ‘루틴’이다.

 


 

본격적인 대선 분위기로 접어들면서 후보들마다 주택 관련 세금정책을 쏟아 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세금정책이 안고 있는 문제는 단지 들끓는 주택 관련 세금을 떠나 구조적으로 아주 심각한 상황까지 와 있다.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는 곳에 왔으며 분명한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재정수요는 폭증하는데 세금 거둘 곳은 뻔하다. 늘어나는 복지는 분명한 추세가 됐고, 이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퍼주기’를 이미 넘어섰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 모두에서 나타나는 불평등과 양극화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미룰 수가 없게 됐다. 선택의 여지가 아주 좁은 상황이다.

돈 쓸 곳은 많고 거둘 곳은 한정된 상황에서 그동안 정부가 선택해 온 방법이 소위 ‘부자 증세’였다. 말 많은 다수에게는 세금을 부과하기는 어렵다고 미리 예단하고 세목별로 상위 몇 프로에 세금을 집중 부과하는 방법을 주로 썼다. 갑작스런 증세에 상위 몇 프로가 반발하면 나머지 구십 몇 프로를 내세워 무마해 왔지만 당연히 정답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소수 대 다수의 갈등만 깊어졌고, 지금은 이것마저 한계에 와 정부가 빚을 내 연명하고 있다.

간단한 예로 우리나라 소득 상위 1%는 전체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의 41.3%를 낸다. 상위 20%까지가 89.0%를 납부하고 있다. 누진세율 구조에서지만 상위 5%를 기준으로 보면 이들은 전체 소득의 24.8%를 벌었지만 세금은 65.1%를 냈다. 최고세율의 상승 속도는 2012년에 35%에서 지난해 45%가 돼 8년간 10%포인트 인상됐고, OECD 국가 중 세율 인상 최고 속도다.

소득 상위 계층에 집중적으로 세금을 올렸지만 전체 세입에서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8%로 OECD 평균 24%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부자들이 급격히 오른 세금으로 아우성이지만 실제로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이 37%, 700만 명에 달한다.

소득세를 예로 들었지만 세금정책이 ‘높은 세율·좁은 세원’으로 운용되면서 세목마다 이미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법인세·재산관련 세금도 이미 이 길로 들어섰고 다른 세목들도 줄을 잇고 있지만 정부·학계·연구단체 등 문제를 제기하는 곳조차 없는 분위기다.

막대한 재정조달이 시급한 정부가 세금 정책을 운용하면서 국민적 공감과 설득을 피하려고 하면 심각한 문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투전판이 된 가상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 유예를 간단하게 처리했다. 정부 세금정책의 비겁함과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지속적으로 활개를 쳐 오면서 지금 우리 세제는 누더기를 넘어 만신창이로 가는 수준이다.

밑그림부터 다시 그려야 하는 분명한 이유는 정부가 지금 운용하고 있는 세금정책과 국민들이 직면한 현실을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세금을 단지 ‘남의 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럴 수는 없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역시 갈등과 대립을 조장한 ‘갈라치기’가 세금에 스며든 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여러 곳에서 1~2%는 ‘패도되는’ 대상이 됐고 이 프레임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세금은 기본적으로 국민적 공감과 합의를 통한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는데 이 과정에 자신을 잃으면서 대립으로 상황을 모면해 나가고 있다. 당장은 넘어가겠지만 일이 될 리가 없다.

세금은 중요한 정치적 요소지만 세금운용이 정치적 목적에 휩쓸리면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 우리의 세금 정책은 아예 ‘정치화’의 길을 걷고 있는 형국이다.

선거를 눈앞에 두고 다수 국민에게 불편한 주장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국민은 알고 있다. 단지 표현을 하지 않을 뿐 ‘그건 립 서비스고, 믿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여론조사 무응답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이유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세금정책의 밑그림은 다시 그려져야 한다. ‘조세개혁 계획’을 세워야 한다. 분명한 갈 길과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과정은 치열하고 복잡하겠지만 피할 수 없고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래야만 바닥으로 추락한 세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우리의 소중한 국가공동체를 위해 세금은 꼭 필요하고 납세는 신성하다. 국민은 세금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잘 거두고 잘 쓰기’를 바랄 뿐이다. 이 바람조차 들어주지 못하고 휩쓸려 다닌다면 그 사람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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