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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탄소국경세’에 깃든 선진국의 ‘내로남불’
[데스크칼럼] ‘탄소국경세’에 깃든 선진국의 ‘내로남불’
  • 이상현 기자
  • 승인 2021.07.2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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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 가설 믿어도…“주범이 증거인멸 후 남 탓하는 꼴”
- 최근 소액 해외직구 물품 부가세 면제 폐지가 EU 속마음?
- 지적재산권 침해 막아야하지만, 조세경쟁도 ‘내로남불’인가?

 

유럽연합(EU)이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 탄소국경세)를 시행한다고 한다.

그동안 기후변화 대응을 목청껏 주장해왔던 환경‧사회‧거버넌스(ESG) 분야 전문가들은 이 소식을 듣고 “거 봐라. 진작 내 말 들었으면, 연간 1조원의 세금 부담이 없었을 것 아니냐”고 침을 튀어가며 공치사를 한다.

CBAM은 자국 제품보다 탄소배출을 더 많이 한 수입품에 대해 탄소배출권을 의무적으로 구입하는 식으로 사실상 수입관세를 물리는 제도. 이런 유럽의 해법은 모든 지구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사뭇 야비하고 이기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기후변화가 인간의 화석연료 사용과 관련이 있다는 과학적 가설에 수긍하더라도 말이다.

기후변화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도 아니다. 인류가 화석연료를 사용해온 역사는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142만 년 전부터다. 인간이 이산화탄소(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뿜어내기 시작한 게 142만 년 전부터라면, 정확히 언제부터 온실가스가 거대한 지구의 기후까지 바꿀 정도로 심각해진 걸까. ‘기후변화 대응’을 주창하며 1993년 미국 부통령으로 일한 환경운동가 엘 고어는 또렷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역설적으로, 온실가스 급증을 초래해 기후변화를 부른 주범은 다름 아닌 서방 선진국들(developed countries)이다. 하지만 지구촌 공동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주범들의 행동이 가관이다. 우선 황급히 증거를 인멸했다. 백여년간 온실가스와 각종 유해물질을 잔뜩 뿜어내던 제조시설을 저개발국으로 옮겼다. 세금은 본사가 있는 본국에 납부토록 했다. 세금은커녕, 직접 식민지를 제조기지로 활용한 기간만도 백년 가깝다.

그런 선진국들이 식민지 시대를 벗어난 후진국들이 간신히 전기와 자동차를 사용해 경제성장을 꾀할 만 하니까 탄소배출권과 탄소세 고지서를 턱 밑에 들이밀고 있다.

중국의 한 언론인은 “자기들이 사다리를 다 썼다고 다른 사람이 올라가서 사용하고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꼴”이라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못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미국 철학자 에이브러햄 캐플런이 1964년 “어린아이에게 망치를 주면 두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다닐 것”이라고 한 ‘도구의 법칙’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EU와 선진국들이 정말 기후변화를 해결하려는 인류애의 발로로 ‘탄소국경세’라는 꾀를 냈다고 믿는 지식인은 망치를 쥔 어린아이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EU는 지난 7월1일부터 22유로(20일 환율로 한국 돈 2만9888원) 미만 수입품에 대해서도 수입 부가가치세를 물리기로 했다. 역내 제조업체들이 중국, 한국 등으로부터의 값싼 수입품에 맞설 가격경쟁력을 도저히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강행한 조치다. 부가가치세만큼 값이 비싸진 수입품들에 대한 EU 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훨씬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탄소국경세’가 정색을 하고 꺼낸 ‘명분 있고 우아한’ 욕망이라면, 소액 해외직구 물품에 대한 부가세 면제 폐지는 EU가 속마음을 들키기 싫은 ‘절박한 실존적’ 욕망이다.

영국과 유럽 국가들은 근대이래 경제 먹이사슬의 꼭대기인 금융부분을 에둘러 인류 문명의 중심지임을 자처해왔다. 일부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미국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했다. 그런데 그 미국이 무제한 달러 발권력으로 인플레이션 없는 부유함을 손쉽게 향유하는 것을 보면서 질투가 솟구쳤다. ‘와신상담’과 ‘절치부심’의 결과 만들어 낸 비즈니스 모델이 ‘탄소배출권’과 ‘탄소세’라는 추측이 그다지 억지스럽지 않다.

CBAM에 대한 기자의 이런 태도가 중국이나 한국과 같은 개발도상국들을 무조건 옹호하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선진국도 나름 고충이 있다. 중국 등 일부 개발도상국들이 지적재산권을 무시하고 짝퉁 복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은 정말 문제다. 정당한 값을 치러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선진국들의 이중성이 드러나기 때문에 다시 심사가 복잡해진다.

수년 전 벤츠 등 지구촌 자동차 기업들과 한국의 연료전지 회사 SK 등 지구촌 유수 기업들이 지적재산권을 인정한다는 명목으로 8~12%의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하는 헝가리나 아일랜드 등 이른 바 경과세국(輕課稅國)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들 나라들을 조세피난처(tax haven country)로 부르며, 15%의 지구촌 최저한 법인세를 제시했다. 연구개발(R&D) 관련 세금 공제를 많이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곳으로 회사와 공장을 옮긴 기업들은 일단 낮은 현지 세율로 세금을 낸 뒤 최저한세율 15%와의 차이만큼 다시 본국에 세금을 낸다. 회사를 옮긴 혜택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선진국 정부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OECD는 경과세국들의 행위가 국가 간 법인세율 경쟁을 야기, 자국 유수 기업들이 이런 나라들로 빠져나가 세금 수입이 줄어드는 것이 가장 걱정한다. 고심 끝에 지구촌 최저한세율을 15%로 정해 국제사회의 합의로 굳힌 이유다.

서방은 ‘지적재산 강탈국’이라고 중국을 비난해왔다. 그런데 지적재산을 적극 인정하는 가벼운 세율의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발로 짓뭉갰다. 조세피난처 근절, 지적재산권 보호는 결국 자국의 과세권에 이로울 때만 의미가 있는 명분임을 쉽게 짐작케 한다.

실제 미국은 해외기업의 국내복귀(reshoring)에 대해 많은 법인세‧소득세를 감면하고 있다. 또 외국기업의 국내 투자에 대해 투자금 일시상각 등 파격적 법인세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조세피난처 근절을 강변할 때와 사뭇 다른 뉘앙스다. ‘견강부회’, ‘내로남불’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최근에는 ‘그린 뉴딜’을 전면에 내세우고 대권을 거머쥔 바이든 미 대통령이 과거 조지 부시 대통령 때보다도 많은 유전(油田)과 가스전 개발 허가를 내주고 있어 미국이 술렁이고 있다고 한다.

산업부 김정일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최근 EU 집행위원회를 방문, CBAM 등 주요 통상이슈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김 실장은 EU 집행위 조세총국장에게 “CBAM이 국제무역에 대한 위장된 장벽 및 이중규제로 작용해서는 안 되며 세계무역기구(WTO)에 합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배출권거래제(ETS) 등 탄소배출 감축제도를 시행하는 한국은 CBAM 적용에서 제외될 필요가 있음을 환기시킨 것이다.

오랜 기간 서구의 기후변화 대응을 책상에서 공부한 탄소경제 전문가들은 역사와 과학을 공부하면서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외교를 공부해야 한다. 외교는 국내정치에 견줘 정글에 가깝다. 옮고 그름은 의미가 없거나 적다. 정글에서 사자는 영화 <라이언킹>처럼 정의롭지 않다. ‘잡아먹느냐’, ‘잡아먹히느냐’의 문제만 남는다. 배가 고프지 않은 사자는 잠시 인자한(사실은 귀찮은) 표정을 지어보일 수도 있다. 그걸 믿고 안일하게 ‘이성주의(rationalism)’에 빠지면 먹잇감이 될 뿐이다. 그런 운명을 더 이상 후손들에게 물려줘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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