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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稅想) 칼럼] 혼돈의 거주자(Resident)
[세상(稅想) 칼럼] 혼돈의 거주자(Resident)
  • 김진웅 논설위원
  • 승인 2019.04.0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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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2000년 1월 1일. 기대와 우려 속에 뉴밀레니엄이 시작되었다. 1999년대의 시간 표식과 다른 2000년의 새로운 시간 인식 과정에서 컴퓨터들이 전산 오류를 일으키면 항공기 추락이나 금융 시스템의 오작동 등 대혼돈(chaos)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걱정은 다행히도 기우가 되었다.

그러나 뉴밀레니엄을 맞은 한국에서는 새로운 혼돈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본과 인적자원이 지구촌을 자유롭게 오가다 보니 대형 조세분쟁이 시작된 것이다. 다름아닌 “거주자(resident) 판정” 분쟁이 그것이다.

세간에 잘 알려진 거주자 판정 분쟁 사례는 금융위기가 휩쓸고 간 후의 론스타 추징사건이었다. 선박왕, 구리왕, 완구왕 추징사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론스타는 조세불복으로 상당 부분 환급을 받았고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한국정부를 제소했다. 이제 국가중재(ISD)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이 패소할 경우 무려 5조원대로 배상해야 한다.

이렇듯 2000년대 들어 줄줄이 터진 대형 조세사건들은 거주자 판정 분쟁인 경우가 많았고 하나같이 조세불복으로 이어졌다. 외국법인과 외국인의 세무조사에서는 거주자(resident) 판정과 수익적 소유자(beneficial owner) 여부의 심사가 필수항목이 되었다.

이해를 돕고자 우리가 아끼는 손흥민 선수를 보자. 그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서 뛰고 있다. 그는 과연 어느 나라에 세금을 내야 할까? 영국일까? 한국일까? 양쪽 다일까?

지난 해 11월 영국 HITC에 따르면 그는 토트넘 선수 중 세 번째로 높은 주급인 14만 파운드(약 2억여원) 정도를 받았다. 손흥민의 주급을 연봉으로 환산하면 100억원이 훌쩍 넘는다. 그 뿐이랴. 광고출연도 상종가다. 어디든 간에 내야 할 세금은 막대하다.

손흥민은 영국에서 여러 해 뛰고 있으니 영국 현지에서 번 소득에 대해 영국에 소득세를 내면 끝일까? 한국에는 안 내도 되는 걸까? 영국인이 아니니 한국에만 소득세 신고하면 되는 걸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양쪽에 다 내야 할까?

국세교육원 강의에서 직관적으로 대답해보도록 질문하면 ‘한국인은 한국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반응이 ‘삼분의 이’를 차지하곤 했다. 애국적이고 국고주의적이다. 나머지 ‘삼분의 일’은 외국에서 번 돈은 그 나라에서 세금을 내면 끝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직관은 소득세법 제2조를 보면 여지없이 깨지게 된다. 국적 기준이 아니라 ‘거주자’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도 외국에 항구적 홈(permanent home)이나 경제적 중심지가 있다면 그 나라에서 소득세를 내면 그것으로 끝인 거다. 다시 국내에 신고할 필요가 없다.

거주자 판단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기준은 permanent home이 어디인가이다. 그 다음은 경제활동의 중심지가 어디인가이다. 따라서 거주자 판정의 기준이 되는 Home, 경제적 활동 중심지, 그리고 주소나 거소의 정의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세법은 함정이 있다. 어느 나라에서 세금을 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기준인 거주자와 비거주자의 구분이나 주소와 거소의 경합시 우선순위 등을 소득세법에서는 묵언수행 중이다. 대신 시행령으로 운영하겠단다. 이렇게 중요한 사항을 하위 시행령에 위임하다 보니 포괄위임으로 위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OECD 기준이 지향하는 수준으로 법에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주자 대 비거주자의 판정에 관한 과거의 국세청 질의회신들을 추출해 보면 흥미롭다. 납세자의 사정은 비슷한데 종합소득세를 거두어야 할 때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면서 거주자라는 입장을 택한 반면 양도소득세를 적용할 때는 비거주자로 입장을 바꾸는 추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현령 비현령이라는 말이 나온다.

종합소득세는 한국 거주자여야 해외소득의 과세가 가능한 반면 1세대 1주택 비과세 혜택이나 양도소득 각종 공제 혜택을 막으려면 비거주자로 봐야 하는 사정이 있어 국고주의적인 해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을 모시는 행정부의 기준은 일관성이 있어야 마땅하다.

선박왕이나 구리왕 등의 과세에서 보듯 거주자 판정 분쟁이 줄을 이었고 외국법인들에게는 경감세율(제한세율)을 부인하고자 법인조사 때마다 거주자 판정을 위한 많은 자료요청이 있었다. 대부분 거액의 조세 쟁송으로 번졌다. 조세당국은 때론 승소하기도 하고 때론 패소하기도 하면서 이 쟁점은 혼돈(chaos)의 케바케(case by case)가 되었다.

그 와중에 대법원 결정들조차 꼭 짚어주어야 할 쟁점을 슬쩍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과세가능한 영역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하는 등 혼란스러운 구석들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소득세법상의 거주자 판단에 유의미한 판결이 하나 나왔다(대법원 2018두60847, 2019.3.14. 소득세법상 거주자에 대한 판시).

내용을 조금 소개하면 이렇다. 한국 축구선수가 일본에 가서 프로선수로 장기간 활동했다. 일본에서 발생한 프로선수의 소득에 대해 과연 한국에 과세권이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물론 납세자는 일본에서 장기간 활동하며 일본에서 소득이 발생했으므로 일본의 거주자로 판단하고 일본에 소득세를 신고했다.

그러나 과세 이유를 보면 그가 한국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점을 중시했다. 아파트가 소재한 한국에 주소가 있으며 따라서 한국 거주자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아울러 부모나 누나들이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점도 가세했다. 가족도 한국에 있다는 거였다.

고등법원은 국내 아파트를 ‘permanent home’으로 보고 거기에 사는 ‘가족’의 범주에 부모나 누나들을 넣었다. 아울러 다른 주택을 임대사업에 공한 점, 국내에 금융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점 등의 지엽적인 점들도 국내에 거주하는 개인이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이 있고 자산상태에 비추어 1년 이상 국내에 거주할 것으로 인정되는 요소라고 보았다. 이런 판단은 과세당국 실무자들의 전형적인 시각이기도 했다.

국내에 아파트를 소유했으니 항구적(permanent)이고, 일본의 임차주택은 일시적인 것이니 한국에 항구적 home 있다고 본 것은 고법의 패착이다. ‘항구적 주거(permanent home)’라는 개념을 오인하여 물리적인 주택의 소유를 항구적 주거로 자구해석한 오독 결과이다.

성인 납세자가 일본에서 장기간 경제활동을 독립적으로 하고 있는데도 굳이 부모가 사는 국내를 항구적 home으로 본 것은 결국 대법원에서 파기된다. 고법 논리라면 해외 교포의 노부모가 국내에 살거나 아파트 등의 부동산이 국내에 있으면 그 교포는 아무리 외국에 오래 살아도 국내 거주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약의 해석은 영어가 우선한다. 항구적 거소인 home을 구성하는 인적 범위는 wife나 children 등 직계가족이다. 따로 사는 방계가족인 노부모를 납세자의 가족으로 포함시키고, 노부모가 사는 곳을 장성한 납세자의 주소나 거소로 보겠다면 외국인들이 납득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을 내국인들은 잘 모르는 것같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독립하는 외국인들이 부모의 거주지를 자신들의 납세의무 있는 home으로 간주하겠다면 과연 이해하겠는가?

결국 대법원은 항구적 주거란 계속 머물기 위한 주거 장소로서 언제든지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주거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했다. 주택을 소유하거나 임차하는 등의 차이점으로 항구적 주거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종래 국내에 아파트나 주택을 보유한 점을 들어 한국 거주자로 보려 하던 과세당국의 노력(?)에 금지선을 그어 교통정리를 한 셈이다.

대법원은 중대한 이해관계의 중심지 판단에 있어 일본 프로축구 리그에서 활동해 온 점과 대부분의 시간을 일본에서 보낸 점을 중시했다. 국내 재산인 아파트와 예금 등은 일본에서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보았고, 부모나 누나들이 소유자의 국내 아파트에서 거주했으나 이는 소득이 없는 방계가족들을 위한 지원일 뿐이라 했다.

대법원은 항구적 주거가 양 체약국에 모두 존재할 경우에는 이중거주자의 거주지국에 대한 판단기준은 ‘중대한 이해관계의 중심지’이며 과세당국이 중시한 부동산의 국내 소유 여부나 부모의 국내 거주보다는 납세자가 적극적 경제활동을 어디서 했는가를 중시한 점에서 ‘직업 활동’에 방점을 찍어 주었다. 생활의 원천이자 사회적 지위의 징표가 되는 적극적 직업활동 장소를 경제적 활동중심지로 본 것은 여러모로 합당하다.

중대한 이해관계의 중심지에 판단시 OECD모델조약 제4조 역시 납세자의 ‘personal acts’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따라서 과거에 거주자의 근거로 댄 국내에 부동산이나 예금이 있다거나, 부모가 국내에 있다거나, 자녀의 결혼식을 국내에서 했다는 등의 주변적 이유가 앞으로는 거주자 판정에서 납세자의 해외 직업활동을 앞설 수는 없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거주자 구분이나 주소 규정 등을 세법에서 모호하게 놔두면 국고주의적 과세가 계속될 것이고 필연적으로 조세분쟁을 부를 것이다. 이런 악순환은 납세자에게는 고통을 주고 정부에게는 행정력 낭비를 초래한다. 세법과 세정 잣대의 객관화와 명확화 태도는 선진국으로 가는 인증마크라 하겠다.

 

 


김진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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