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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稅칼럼] 달콤한 세금 쓰기의 수업료
[國稅칼럼] 달콤한 세금 쓰기의 수업료
  • 정창영 본지 주필
  • 승인 2018.11.3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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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본지 주필)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8조의 규정이다. 이처럼 세금은 국민이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헌법에 규정된 의무이자 국가를 지탱하는 확실한 기둥이다. 현대국가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납세는 국가 운영의 가장 큰 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가 납세자들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일은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이다. 자진신고납세가 거의 전부인 우리 징세체계이긴 하지만 이를 담보하는 세무조사가 시퍼렇게 살아있고, 복잡하고 변경이 잦은 세법을 둘러싼 납세자와 당국의 이견은 말 그대로 연중 ‘핫’하다.

국민 재산권과 직결된 만큼 국민적 관심과 함께 당사자인 납세자의 촉각은 예민할 수밖에 없다. 세금은 한 푼이 납세자에게는 피요 살이다.

국민들에게 피요 살인 세금을 거두는 일은 당연히 살얼음판이다.

정기 법인조사를 마친 한 기업의 실무자는 “길고 긴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었다”며 “조사공무원의 입장을 일면 이해는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매 순간 처절하게 방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끝까지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절차적·법률적으로 구제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세무조사의 소회를 말했다.

‘세금 풍년’이니 ‘초과 세수’니 쉽게 말하지만 우리의 세금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소중한 한 푼 한 푼이 모여 이뤄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익이 넘쳐나고 소득이 충만해서 기꺼이 납부되는 세금은 정말 눈 씻고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잘 돌아가는 기업은 기업대로, 고소득 전문직은 전문직대로 모두 자신이 내는 세금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오그라든 손을 처절하게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 뭐 하나 움직일 때마다 부자 가난한 자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따박따박 따라붙는 간접세나 불가피하게 이전해야 하는 과정에서 무차별적으로 과세되는 거래세를 일일이 따진다면 아마 국민 대부분은 진땀이 날 정도로 세금에 포위돼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일상에서는 주로 잊고 살아서 그렇지 세금이 얼마나 집요하게 국민 개개인을 따라 다니고 있는지 따지며 살피고 살아간다면 아마 심각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상대적으로 ‘갑’으로 인식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 같지만 세금을 징수하는 국세공무원들도 늘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기는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세금을 합법적으로 피하기 위한 납세자들의 노력이 필사적일수록 징세공무원들도 피를 말린다. 여기에 실력과 능력과 혜안까지 갖춘 세무대리인들이 적극적으로 납세자를 대리해 가세하고 있으며, 이 처절한 환경에서 목표와 성과를 달성해야 하는 이들의 고충 또한 간단한 차원을 넘고 있다.

어쩌면 오늘의 국가 재정은 헌법에 의한 의무의 산물로 비춰지지만 내면적으로는 납세자와 국가 간 펼쳐지는 긴박한 전쟁의 전리품 일 수도 있다. 간접세 몇 원부터 출발한 소중한 세금이 모여 수백조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국민의 피와 땀인 것은 물론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재정지출과 관련해 끊이지 않는 우려가 ‘재정중독’, ‘세금 퍼붓기’다.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 해소를 위해 정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기조 속에서 국정과제 수행에서 조금만 난관이 나와도 우선 처방전으로 발부되는 것이 재정이고 세금이었다. 갈등을 조정하고 이해시켜야 할 대목에서 분명한 양보를 얻어내는 대신 손쉽게 재정이 우선적으로 투입되는 것이다.

다행히 순풍도 불어 박자를 맞춰줬다. 국세청은 경기부진의 악조건 속에서도 신고 전 성실신고 안내 등 치밀한 세수관리로 연속적으로 초과세수를 기록하며 분위기를 거들었다.

정부는 재정투입의 가속 패달을 힘껏 밟으며 세금을 쏟아 부었다. 화급한 현안인 일자리를 창출한다며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했으며, 양극화 해소와 저출산 고령화 대책, 각종 이름의 복지에 사상 최대의 세금을 투입하거나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속속 드러나는 결과는 참담한 상황이다. 민망한 성적표가 줄을 잇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주 발표한 3분기 가계 동향 조사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 가구의 평균소득은 소득 하위 20% 가구 평균소득의 5.52배(5분위 배율)였다. 3분기 기준으로는 2007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나쁜 수치다. 복지와 일자리 창출 예산이 집중됐지만 소득 분배 개선 효과는 최악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아프게 받아들인다”며 악화된 결과를 시인했지만 들인 재정을 전제한다면 허망한 상황이다.

경제는 생물이고 순환인데 경제주체인 기업들이 활력을 갖고 움직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해 틀어막고 쥐어짜며 세금을 무기로 끌고 나가려는 정책이 시장에서 제대로 얻어터진 결과다.

경제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기업이 활력을 찾아 경영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관련 정책 등에 정부가 효과적으로 대응해 기업이 활동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업이 활동하기 편한 환경이 조성되면 일자리부터 늘기 시작하면서 정부가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고민스런 대목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미국이 실행했고, 일본이 이미 성공의 과실을 맛보고 있다. 한동안 바닥을 헤매던 미국과 일본의 경제는 승승장구하며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경제교과서의 원론을 차분하게 시장에 적용하면서 최악의 침체 터널을 벗어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일자리가 넘쳐나고 관광객이 사상 최대로 몰리는가 하면 전체 산업이 호황의 과실을 나누고 있다. 정부가 주도해서 재정을 뿌려가며 청년일자리를 걱정하는 일은 물론 없다. 생태계가 조성된 기업들이 알아서 구직자들을 모셔가기 바쁜 상황이다.

우리 경제는 지난 1년 반 동안 어설픈 실험에 상처투성이가 됐고, 그 과정에서 모처럼 세수호황의 호기를 맞아 소중하게 쓰여야 할 세금이 바람처럼 날아갔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8조가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세금은 국민의 의무에 앞서 국가와 국민 간 형성된 믿음에서 출발한다.

개인주의 성향이 아주 강한 북유럽 국가에서 고세율 정책이 국민들에게 먹히는 이유는 그 세금으로 유지되는 국가로 인해 국민이 얻는 혜택이 확실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국가가 세금을 많이 거둬가지만 정확하게 사용해 그 결실이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소득 절반이 훨씬 넘는 돈을 기꺼이 세금으로 납부하는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최근 우리의 재정중독 내지 세금 퍼붓기 정책은 정말 많은 것을 잃고 있다. 단지 소중한 세금만 잃은 것이 아니다. 그저 당장 눈 앞 가리듯 허둥대며 세금을 투입하는 정책을 보면서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그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허망한 결과를 보면서 자신이 낸 세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세금 징수 현장에서 총성 없는 전쟁이 벌이며 힘들게 거둬가 놓고, 그 피와 살 같은 세금을 정작 바람에 날리듯 정부가 썼다면 국민은 무슨 마음을 먹을까 꼭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정창영 본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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