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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과 화상 대회
자장면과 화상 대회
  • NTN
  • 승인 2005.10.2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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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稅上 살면서] - 채상병(세무사)
나의 자장면과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4학년때이다. 10여년 연상이신 장형이 교사로 발령받아 월급을 타신 후 충주의 유명한 중국 요리집에서 자장면을 시켜주셨다. 처음 먹는 그 맛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나에게 감미로움을 안겨주었으며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면발의 쫄깃함과 자장 특유의 달콤함은 어린 소년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그 자장면이 들어온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되었단다. 아니 중국에서 귀화한게 아니고 한국인의 뼈속 깊이 자리잡기 시작한지 100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말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산동지방의 노동자가 인천에 들어와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 먹은 것이 효시이며 중국인들은 짠 춘장을 많이 넣지 않아서 자장면 색깔이 거의 나지 않던 중 인천 차이나 타운에 정착한 화교들이 이 음식에 야채와 고기를 넣어 우리 입맛에 맞는 지금의 자장면을 만들게 된 것이다.

60-70년대만 해도 자장면은 고급음식에 속했다. 누구나 가난해서 외식을 할 수 없었던 시절 자장면은 모든 기념일에 먹는 귀한 음식 이였으며 심지어 자장면과 군만두 한 그릇을 시켜놓고 백알 한 도꾸리를 먹는 것이 멋이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이야 흔한 먹거리로 뒷전으로 밀려난 듯한 추억의 음식이지만 그 맛이 그리울 때 난 늘 자장면을 찾는다. 그때 그맛은 아닐지라도 어린시절 날 홀렸던 그 맛의 잔미(殘味)가 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자장면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70년대 말 현직에 근무하던 시절 한 담당 구역 내에 여러 명의 화교들이 있었다. 성실하고 정직하던 그 분과 친교를 맺고 오랫동안 교류하였다. 그때 그분들은 “이 땅에 태어나서 똑같이 세금내고 의무를 이행하는데 외국인으로 여기지 말고 같은 동포로 봐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번 들은 적 있다.

화교들이 마치 재일 동포들이 일본에서 겪는 불공평한 차별대우를 우리나라에서 겪는다는 것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화교가 동남아 지역에서처럼 한국의 경제력을 장악하고 자기들끼리만 거래하는 등의 폐해가 있을 것이라는 이상한 풍조가 있었다. 그래서 세금도 다른 동업자에 비하여 좀더 무겁게 부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이야 대명천지에 근거과세 실질과세제도가 확립되어 모든 사업자가 공평하게 세금을 납부하지만 그 당시는 동업자권형의 방법에 의하여 개인영업세를 부과하던 시절이였다.

그때 왜 그런 풍조가 있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결국 많은 화교들이 미국, 호주, 동남아시아, 대만 등으로 떠나게 되었고 내가 알던 분들도 뉴질랜드와 호주로 이민을 가셨다. 결국 우리나라의 자장면은 바로 그분들과 함께 여러나라로 퍼져나갔으며 그들의 손으로 다시 이름을 떨치게 되었을 것이다.

자장면이 들어온지 100년이 되고 화교들이 많이 떠난 뒤 중국, 대만, 홍콩, 동남아시아 등 전세계 중국계 비즈니스맨들의 화상(華商)대회가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한국화교사회개건 이라는 기치아래 열렸다기에 편 편의 생각을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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