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웃집 매매 가격은 얼마?

[세상살면서] 임채룡 세무사 (세무사회 총무이사)

2006-11-21     33
   
 
 
흐린 하늘이 수평선처럼 낮게 깔리더니 새벽녘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빗속에 간간이 지나가는 시린 바람이 아침운동을 망설이게 한다. 아니 온 몸을 누르는 무거운 마음이 가을비를 핑계로 은둔의 마을로 향하게 한다.

어제 오후에 들은 김사장님의 한마디가 세무업무에 대한 자신감을 흔들었다. “세무사님 지난해에 증여세 신고를 잘 하셨을 텐데 왼 고지세액이 이리 많이 나옵니까?” 바위에 쇠를 가는 것 같은 음색이 수화기를 통하여 들렸다. 그리고 이어서 “알아서 하세요. 수수료 드리고 한 일이니” 라며 말을 끊었다.

김사장은 지난해 7월 강남에 있는 자신명의의 아파트를 장남에게 증여한 후에 증여세 상담 차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스스로 찾아온 납세자가 고맙기도 하고 혹시 거래처를 확보하는데 도움이 될까하여 증여세에 관한 모든 지식을 그에게 상세히 설명하였다.

그리고 증여 재산의 가액은 시가에 의하여 평가하며 시가의 범주 속에 매매사례가액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은 몇 번이고 반복하여 강조 하였다. 필자의 이런 노력에 감명을 받았는지 설명을 들은 김사장은 좋은 낮으로 신고대행까지 의뢰하였다. 오래 만에 기분 좋은 일이였다.

그러나 이런 느낌과 병행하여 마음속에 알 수없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가를 어떤 금액으로 신고해야 할까?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매매사례가액을 알 수 있을까? 세법과 관련 없는 이런 문제로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할 수 없이 시가를 알 수 없음으로 기준시가대로 신고를 하였다.

그리고 금년 들어 세무당국에서 증여세를 조사하였고 그들만이 아는, 기준시가보다 훨씬 높은 매매사례가액으로 증여세를 과세하였다.

상속증여법에 포괄주의 과세가 도입 되면서 시가의 개념에 매매사례가격까지 포함되었다. 그러나 매매사례가액은 납세의무자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비슷한 시기에 부동산을 매매한 사람을 찾아내어 가격을 확인해야 하는데 솔직히 어느 누가 세금 내려고 매매한 사람을 찾아 나서고 또한 가격이 얼마나 되냐고 묻겠는가?

그나마 잘 알 수 있는 곳이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이지만 이들 또한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아니 된다’는 관련 법률이 있어 공개 할 수가 없다. 설사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일률적인 공산품 가격도 아니고, 개별성이 큰 부동산의 가격을 주변에 있는 매매사례가격으로 증여세를 신고 납부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참으로 어정쩡한 업무가 상속, 증여세 신고업무다.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이 증여세 신고업무를 안 할 수도 없고, 하려고 하자니 매매사례가액을 알 수가 없어 의뢰인으로 부터 가을비처럼 우울한 질책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매매사례가격이 과세요건의 명확성을 흐리게 한다.

‘지금 주택을 사는 사람은 낭패를 당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김포에 신도시가 개발된다는 발표가 있자마자 해당지역 뿐만 아니라 서울 및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이 엄청나게 뛰었다. 요즈음 부동산 가격은 상승주기가 빨라져 올랐다하면 단시간 내에 몇 억이 오른다.

증여시점과 매매사례가격을 적용하는 3개월간에도 수억이 오를 수도 있다는 애기다. 이것을 바꾸면 증여시점에 매매사례가격이 없을 경우 미래에 상승한 가격으로 증여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말도 아닌 말이 된다. 물론 그와는 반대일 수도 있지만 ...

수돗물이 새면 수도꼭지를 바꿔야지 샌 수돗물만 계속 퍼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또한 납세자가 부담 정도를 예측할 수 없도록 규정한 세금은 명백히 조세법률주의에 위반이 된다. 그리고 세금내기 위하여 이웃집의 매매사례가격이 얼마인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사실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매매사례가격 적용 문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과세관청이 증여 당시 시가를 산정하여 납세자가 알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


2006. 11
한국세무사회 총무이사 임채룡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