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N칼럼] 가슴이 철렁한 ‘관계(關係)’

정창영 (NTN 편집국장)

2006-11-20     33
   
 
 


“실무능력이 탁월한 직원이 ‘로펌’으로 옮긴다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하고 답답해진다 ”. 론스타로 촉발된 공격적 조세회피(ATP) 논쟁이 한창일 때 국세청 핵심 고위간부는 기자와 만나 이렇게 아주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사명감과 자긍심으로 국세행정에 몸담아 온 이 고위 간부가 직원의 전직(轉職)에 왜 가슴 철렁해 하는지는 대강 짐작이 갈 것이다.

바로 엊그제까지 과세권 논리로 철저히 무장, 납세자 의중을 꿰뚫으며 세금을 거둬 오던 직원이 갑자기 입장을 바꿔 납세자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게 된다면 이 간부로서는 가슴 철렁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굳이 지피지기(知彼知己)...논리는 말하고 싶지 않다.

특히 우리의 복잡한 세법 체계와 유권해석 행정을 전제한다면 이 ‘유능하고 탁월한’ 직원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는 물어볼 것도 없다. 여기에다 ‘죽어라고 일 해도’ 돌아오는 ‘월급’이 뻔한 공직사회와 ‘실적’이 즉시 ‘보상’으로 돌아오는 로펌, 회계법인 같은 사회에서 이 직원이 발휘할 능력을 같은 수준으로 평가한다면 그 것 역시 덧없는 계산일 수밖에 없다. 굳이 로펌이나 회계법인 만을 한정하는 것은 아니고 넘쳐나는 세무대리업계 역시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납세자와 당국간 가교(架橋) 역할을 수행한다고 자처하는 세무대리인이 국세당국과의 관계에서 이처럼 ‘가슴 철렁한 관계’로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을 아주 부인키는 어렵다. 이들의 관계는 아주 긍정적인 면에서 본다면 보완, 상생의 관계이지만 근본적 바탕은 정 반대일 수밖에 없다. 과세의 정당성을 두고 국가와 납세자 입장에서 공격과 수비를 해 나가는 나름대로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세당국 입장은 전장에서 아군이 아주 쉽게 ‘짐’ 싸들고 적군으로 합법적으로 갈 수 있다는데 일종의 노이로제마저 갖고 있다.



이들의 전쟁을 부추기고(?), 지원하는 세력은 역시 납세자이고 고객이다. 예전과 달리 요즘 납세자들의 인식은 아주 세련됐다. 자기 손에 ‘피’ 뭍이고, 얼굴 팔려가며 일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여차하면 나가야 할 돈(세금)에서 일부를 떼어 대리인에 지불하고 원하는 바를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탁월한 실력과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는 이들 대리인들은 고객을 ‘클라이언트’로 모시며 ‘해결’을 모색한다. 계약이고 신용이기 때문에 동원할 수 있는 ‘실력’과 ‘능력’이 모두 등장한다. 불과 요 몇 년 사이에 이들이 확보한 메뉴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얼마 전 현직 공무원으로 있을 때 상상도 못했던 방안을 스스로 응용해 창출하는가하면 ‘고객감동’을 위해 수비가 가장 약한 쪽으로 정확하고 강한 ‘슈팅’을 때려댄다. 그 곳의 지형과 경계상황은 이미 손바닥 보듯 알고 있다.

당초 세금문제로 얼굴이 새파랗던 납세자는 이처럼 눈부신 활약을 한 대리인 덕에 환한 표정을 갖게 된다. 대리인 역시 억울한 납세자를 구제해 준 사명감을 되 뇌이며 고급 샴페인으로 부드럽게 건배를 한다. 말을 갈아 타 느끼는 행복이고 희망이다. 납세자는 과세권에 대한 대응방안을 확실히 알았고, 그럴수록 대리인은 끝없이 스스로 공부(?)한다. ‘빈 곳을 찾아서’.

경우에 따라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합법과 불법의 가장 끝자락에도 서슴없이 서려고도 한다. 과세당국은 전열을 가다듬고 더욱 강한 압박과 함께 전원 공격 형태의 초강경 작전을 수행한다. ‘과세권’을 휘 날리면서...



“미국이 망한다면 분명 변호사 때문일 것이다.” 살인도 무죄가 되는 미국의 선진화된(?) 법률 환경을 두고 비아냥대는 말이다. 아마 공격과 방어로 친다면 앞선 우리의 세무논쟁은 초보적 수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법(法)과 행정(行政)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정교해지고, 공정해지는 측면이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결국 국민을 위한 행정은 사람(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고 시스템이 수행해야 하는 시대를 전제한다면 이런 과정을 서로 적극 활용하고 양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어제까지 동료요, 후배요, 상사가 갑자기 적진 작전부서로 자리를 옮겨 이쪽을 알고 정교한 공격을 해 온다면 현실적으로 ‘가슴 철렁한’ 일이다. 그것도 현실적으로 그 숫자가 한둘이 아니고 ‘대거’라면, 어려운 세수환경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해야 하는 국세당국 관계자들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고소득 자영업자 세무조사에 대해 업계에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세무조사가 워낙 정교해진데다 세무대리인들도 4차 대상 선정을 접하고는 ‘국세청에 족집게가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런 상황에서 국세청은 모의세무조사 등 적극적 조세회피를 조장하는 세무대리인에 대해 ‘철퇴’를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아직까지는 ‘가슴철렁한’ 이들의 관계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세무대리인들의 지나친 욕심이 불법을 낳아서도 안되겠지만 당국도 이들의 업무를 감성적으로 대해서도 안된다. 구멍이 있으면 설사 ‘먹고 죽는다’ 해도 누가 와도 오기 때문이다. 결국 국세행정 시스템과 종사직원에 대한 꾸준한 투자만이 해답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