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칼럼] 미녀 골퍼, 구리왕, 완구왕

2015-07-17     intn

메이저 대회인 미국여자오픈골프대회에서 만 이십 세의 젊은 전인지 선수가 272타 최저타 타이 기록으로 챔피언 트로피를 들었다. 미국 메이저 첫 출전에 내로라하는 선배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우승한 것이다. 우리 여자 골퍼들은 가히 글로벌 수준이다.

한국인에겐 전인미답이던 미국 골프 신천지를 어린 박세리가 개척한 이래 박인비, 김효주, 최나연, 전인지 등 수 많은 스타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해외 투어와 동계 훈련상 플로리다 등 따뜻한 곳에 집을 장만하여 살고 있다.

앞으로 이 젊고 빛나는 전인지 선수가 선배들처럼 따뜻한 미국 남부에 집을 사놓고 전지훈련하며 LPGA 투어를 10여년 뛴다고 치자. 미국에 매년 7개월 이상 체류하며 전세계 투어로 20억씩 번다고 하자.

이런 경우 과연 전인지 선수는 소득세를 어느 나라에 내야 할까? 한국일까? (갑설) “국적이 한국인이고 부모가 한국에 사니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와 살 건데, 한국에 세금 내는 게 당연하지! 한국에 세금도 내지 않을 거면 인천공항에서부터 입국을 막자. 유승준처럼.”

아니면 미국일까? (을설) “전인지 선수는 이제 성인이고, 미국에 사느라 집도 사 놓았고, 상금도 대부분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벌고, 10년은 너끈히 미국에서 열심히 뛸 것이고, 한국에 머무는 기간은 쉬러 오는 5개월 정도인 미국 거주자이니 미국에 세금을 내는 게 옳지.”

이런 경우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갑설에 지지를 보낸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20여년 가까이 국제조세과목을 강의하며 ‘거주자’ 이슈를 설명하기 전에 수강생들에게 갑설이 맞는지 을설이 맞는지 질문을 하면 70~80%가 갑설에 찬성하는 재미있는 경험을 한다. 물론 강의 후 반응은 많이 달라지지만.

한참 때 영국 프리미어 리거로 뛰던 박지성이나 일본인 아내를 맞아 비벌리 힐스에 살던 야구선수 박찬호, 미국에서 살고 있는 박세리 선수를 예로 들며 한국에서 세금을 내야 하는 건지 물으면 대개는 국세공무원들조차 갑설로 간다. 우리에겐 애국시민이 참 많다.

이제 전인지 선수의 사례로 돌아가자. 조사관을 위시하여 갑설을 취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i) 그녀가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ii) 게다가 가족이 한국에 있지 않느냐는 거고, iii) 훗날에는 한국에 돌아올 것 아니냐는 거다.

그러나 한미조세조약상 ‘거주자’ 조항(제3조)을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세조약과 OECD Guideline(‘주석서’)에 따르면 어느 나라가 소득세를 과세할 건지는 그녀가 어느 나라의 ‘조세상 거주자(tax resident)’인가에 달렸다. 

조세조약과 피상적인 관념 사이에는 적지 않은 괴리(乖離)가 보인다. 가령 i) 한국인이니까 한국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조약적 입장은 ‘아니다’가 답이다. 국적은 세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ii) 삶의 연결고리(nexus)인 가족(family) 즉 부모가 한국에 산다는 유교적 주장도 조약 앞에선 설득력을 잃는다. 성인이 해외에 나가서 따로 살면 그 자체로 독립세대인 것이지 국내의 노부모가 그녀의 미국내 가족이라는 말은 조약상 어불성설이다.

마지막으로 iii) 결국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느냐 하지만 미국 과세당국 입장은 그건 그때가서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엄연히 미국에 사는 기간이 183일 이상이고 거액의 상금도 미국에서 벌고 있으니 미국 거주자(us tax resident)라는 것이다.

조약은 거주자(tax resident)의 가장 결정적인 바로미터로 ‘Home’을 들고 있다. Home은 가족으로 이루어지므로 ‘Family’가 어디에 사느냐가 관건이 된다. 일반적으로 Family란 부부 혹은 미성년 자녀들로 이해되며, 따로 사는 노부모를 성인 자녀의 가족으로는 보지 않는다.

실례로 해외의 조약상 판단 사례를 보자. 말레이시아인이 경제적 이유로 인도네시아에 가서 매년 10개월씩 체류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배우자와 자녀는 말레이시아 국민이고 말레이시아에 산다. 그는 수시로 말레이시아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간다. 이런 경우 그는 어느 나라 거주자인가?

통상 6개월 이상의 거주기간이면 자국 거주자라고 보는 개별 세법과는 달리 조약은 그를 말레이시아 거주자라고 본다. 영구적으로 직계가족이 사는 곳이 말레이시아이기 때문이다. 조약상 거주자(resident) 판정은 ‘permanent home’(영구적 가정)을 둔 곳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본다. 그리고 세법보다 조약이 우선 적용된다.

우리는 특히 ‘Home’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이는 상당 부분 번역의 오류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한미조세조약의 ‘permanent home’을 축약 건조시켜 ‘주거’라고 번역하고 있고, 한영조세조약도 여전히 ‘항구적 주거’라는 알쏭달쏭한 표현을 하고 있어 알기 쉬운 단어 Home 의 뜻이 난해하게 변질되었다.
물론 영문과 한역에 간극이 있으면 영문 표현이 우선하므로 Home 의 의미를 영어적으로 충실히 이해하면 될 것이다.

경제가 긴밀하여 지면서 여행과 국제적 활동이 일상화되고 있다. 국가간 거주자 정의는 더욱 쟁점화될 것이다. 구리왕, 완구왕, 선박왕 과세사건들이 그 예이다.
그러나 거주자를 정의하고 있는 우리 소득세법은 고향이 옛 일본세법인데다가 과세권을 의식하다 보니 법은 물론 시행령과 예규들이 더욱 모호해지고 자가당착적으로 뒤엉켰다.

세상이 바뀌어 우리나라도 OECD 회원국이 되었다. 이젠 선진국답게 소득세법상의 거주자 조항도 조세조약과 주석서에 부합하도록 보다 명쾌하게 다듬고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