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稅政칼럼]골드칼라, 멘토, 리더가 되는 길
-金鎭雄 本紙 論說委員-
2012-03-30 kukse
한편 한국의 대형회계법인에서 일한 한 중견 회계사는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자신은 경영학 전공이 아니어서 회계법인은 물론 고객에게서 보이지 않게 차별을 받는 경험을 하였다는 것이다. 자신의 전공이 인문학이라서 순혈이 아니라고 보는 세상의 선입견을 종종 접하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사회적 리더가 되려면 학생들에게 인문학 과목을 많이 이수하라고 한다. 스티브 잡스도 자신의 멋진 작품들의 밑바탕에는 대학에서 청강한 서예 등 인문학 과목 이수가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훌륭한 교수나 명의는 전공 외에 역사, 문학을 섭렵하여 인생을 좀 아는 전문가가 되고 싶어한다.
물론 우리도 사회적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순혈주의를 버려야 성공한다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높이 사는 사회가 발전 가능성을 가진 사회이다. 법학을 전공한 사람만이 진정한 법조인이 되고, 내 고향, 내 학교 출신만 중용하는 것이 최선인 세상은 매우 주관적인 순혈주의이다.
고뇌하는 청춘들의 길라잡이(!)인 김난도 교수는 전공은 물론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존경받는 멘토 교수의 반열에 올랐다. 그 역시 법대생으로 고시 지망생이었다가 낙방하고 방향을 바꾸어 전공과는 다른 소비자학을 강의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한 때 사시에 불합격하였지만 지금은 매일 죄인만 잡으러 다니는 검사보다, 송사로 분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판사보다 더 행복하다. 그가 쓰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가 하는 말에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감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요즈음 출간하자마자 십만 권이 나갔다는 ‘남자들의 물건’(사십 대 이상의 남성들은 꼭 읽어 보시길!)의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 역시 늦은 나이까지 눈물의 빵을 먹어 보았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심리학이 얼마나 배고픈 학문인가를 시간강사를 하면서 절절히 겪었다.
그는 책뿐만이 아니라 방송매체 섭외 1순위로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정작 그는 평범하며 겸손하다. ‘팔뚝 굵은’ 아내가 차려준 아침밥상에 감사하며, 아침마다 그날 가지고 나갈 ‘만년필 고르기’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고, 거리의 ‘망사스타킹’을 보면 가슴이 뛰어 낚시가게 그물만 봐도 흥분하고, 자동차 운전석에서 슈베르트의 가곡을 목 놓아 따라 부르며 울기를 마다 않는 사십 끝물의 한국 남자이다.
이야기를 조금 바꾸면 올 해 처음 사회로 진출한 로스쿨 출신 젊은 새내기 변호사 명단을 보고 그들의 다채로운 경력에 놀랐다. 학교 전공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이미 1~5년씩 다양한 분야에서 일한 경력들이 눈길을 끌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고, 공인회계사로 기업을 감사해 본 경험이 있거나, 경찰에서 현장을 뛰어 본 젊은이도 있었다. 외국에서 공부하여 해외 분위기와 어학에 발군인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의 약력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참신함과 다양성이었다. 젊은이들이 정상적으로 대학생활을 하고, 외국어도 공부하고, 취직도 하여 사회생활도 하여보았으므로 변호사로서 세상을 보는 눈이 보다 합리적이고 보편적일 것이라는 느낌 이 들었다.
반면에 사법연수원 출신 변호사 리스트를 보니 늘 보던 대로 약력은 간단명료하였다. 법대 졸업, 사법연수원 졸업이 다였다. 약력대로라면 그들은 변호사 되기까지 오로지 사법시험만 준비하느라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해보지 아니한 집단이었다. 어학연수도, 법학 외의 다른 공부도, 세상경험도 전무한.
로스쿨(법무전문대학원) 출신 변호사들이 올 해 처음 배출되었다. 말도 많고 기대도 많은 로스쿨 첫 졸업자들이 제1회 변호사시험을 치르고 1,400여명의 젊은이가 세상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들의 전문성을 걱정한다. 그러나 이는 기우라고 본다. 이 역시 주관적 순혈주의자들의 고정된 시각이 문제이다. 전문직종은 평생 천착(穿鑿)하는 과정이 중요하지 시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작 역시 로스쿨 출신들의 자질과 경력에서 볼 때 만만하게 볼 이유가 없다.
검사 임용 대상자 중에는 전산보안 연구원 출신도 있고, 의사 출신, 회계사 출신, 경찰관 출신, 기자 출신 등이 포함됐다. 이런 것이 바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하려는 취지였을 것이다.
변화가 가속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다양성이 권장되어야 한다. 기업이든 행정부든 사람을 뽑고 요직에 기용할 때 단일민족과 배달민족을 되뇌고, 특정지역이나 특정출신만 노래하면 곤란하다.
미국은 한국계 김용 총장을 호평 속에 세계은행 총재로 추천하였다. 백인도 아닌 그를 왜? 하버드대학 출신이라서인가? 명문 다트머스대학 총장이라서? 죄다 아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서 진심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고상하게 대학 교수만 해도 될 법한 그가 굳이 돈 안되는(?) 인류학까지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그렇거니와 에이즈와 결핵이 창궐하는 지역을 돌아 다니며 헌신한 것은 그가 지닌 사회에 대한 애정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그가 작년에 법인화 작업 중이던 서울대학교에 한 말은 이렇다. “대학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하여 세상 문제와 씨름하는 사람을 기르는 곳”이라고. 이런 가치관을 가졌기에 세상이 그를 알아 보나 보다.
행정부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큰 지도자로 성장하려면 먼저 다양성의 인정과 홍익인간을 고민하여야 할 것 같다. 소소하게 자신의 출신학교나 출신지역에 정을 주는 구태나 부처이기주의는 벗어나야 할 것이다. 미구(未久)에는 우리도 베트남 엄마를 둔 다문화가정 자녀가 국세청장이 되고, 필리핀 엄마를 둔 자녀가 대통령이 되는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