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稅政칼럼] 엄정과 관용

金鎭雄本紙 論說委員

2012-01-20     kukse
   
 
 
[음양의 조화] 음양사상에 의하면 하늘과 땅, 해와 달, 남과 여, 강(强)과 유(柔)가 공존 상호작용하며 우주 현상 및 인간 사회가 발현되는데 고래로 음양(陰陽)은 동양인들의 우주관, 인생관, 한의학의 근저를 구성하는 틀이 되어왔다.

음양사상의 단초를 찾아 올라가면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음양가에서 그 유래를 찾게 된다고 한다. 이 것이 송대에 이르러 성리학을 통해서 유학과 음양이 결합되었다고 한다.

음양사상은 상대적으로 사물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사상적으로 우수하고 철학적으로도 유용하다고 한다. 강온(强溫)이 조화로운 음양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음양철학은 세정에도 유용할 듯 하다.

세상 일이 강수만 두어서 잘 되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강(强)이 있으면 온(溫)도 있어야 조화로운 법이니 세정 역시 추상 같은 하드파워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권력이 주어질수록 하드파워보다는 소프트파워를 앞세우라는 것은 하버드 교수 조지프 나이 박사의 권고이기도 하다. 추상 같은 세정과 세제에도 관용이 녹아있고 약자에게는 아량도 내려주는 소프트파워의 지혜로움이 함께 하였으면 싶다.

[관용 프로그램] 국세청은 지난 6일 2012년도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를 열어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차질 없는 시행을 다짐하였는데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아이디어 중 하나는 관용(Leniency) 프로그램의 도입이다.

탈세거래를 한 납세자가 탈세사실을 자수(자진신고)하면 가산세를 감면하고 처벌을 경감하는 소위 ‘자진 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를 도입하자는 방안이 그 것이다. 대신 과세관청은 거래 상대방의 탈세거래를 포착할 수 있으므로 새로운 탈세방지 수단이 될 수 있겠다.

이런 류의 유사한 사례는 미국 수사기관이 애용하고 있는 소위 플리 바겐(Plea bargain) 제도를 들 수 있다. 조직원이 범법사실을 시인하면 그의 형량은 감면해주되 그의 증언으로 해당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할 수 있어 유용하다.

[국부유출] 국부 유출로 고민하는 나라가 미국이라면 의아하겠지만 사실이다. 오죽하면 의회가 나서서 2004년에 해외분산 자산의 자진신고 프로그램을 통과시켰겠는가. 미국기업들에게 해외 자회사 등에 꼭꼭 쌓아둔 돈들을 미국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경우 5.25%만 법인세를 내도록 파격적인 국부 회수기간을 선포하였더니 843개 미국법인이 무려 3,620억불(약 434조원)을 미국에 가지고 들어오는 흐뭇한(?) 성과를 거뒀다. 관용이 엄벌을 이긴 셈이다.

국부유출의 주범은 세율이다. 미국은 최고세율이 35%인데 비하여 해외에는 낮은 세율의 국가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소득을 해외로 돌리려는 유인이 크기 때문이다.

미시건 대학의 국제조세과정 학과장 아비 요나 교수는 ‘향후 미국기업들이 저세율 국가로 소득을 이전하여 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미국은 법인 세원의 유지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종국에는 소득과세제도를 포기하여야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할 정도이다.

[증세 포퓰리즘] 미국은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데 목하 한국정치권은 여야가 모여 증세 합창단이라도 되는 양 서로 화음을 넣으면서 세율을 올린다고 야단법석(野壇法席)이다.

더욱이 현재처럼 돈 많은 이들의 투자소득(주식투자, 미술품 투자 등)은 비과세로 놔둔 채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근로소득과 자영업자들의 사업소득 세율만 자꾸 올려서야 어찌 옳은 일이라 하겠는가.

오바마 대통령도 세율인상을 부르짖고 있지만 근로소득 등 일반 소득(ordinary income)은 그대로 두고, ‘투자소득(capital gain)’에 한해서, 그 것도 11억 원 이상의 고소득에만 30% 정도 세금을 매기자는 이야기이니 우리의 증세방향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이야기이다.

국회는 세율을 올리려는 강수에만 골몰할 게 아니라 세원을 가능하면 넓히는 고민을 하는 것이 온당한 방향이요 세제 운용의 ABC라 하겠다. ‘낮은 세율, 넓은 세원’이야 말로 최고의 관용정책이다.

올해 선거에서 ‘공정’한 관용정책을 내놓는 정치인은 없을까? 가령 납세자가 과도하게 납부한 세금을 반환할 때는 정부가 3.7%의 이자(환급이자)를 주는 반면에 납세자가 돈이 없어 제 때 세금을 못 내면 무려 세 배에 달하는 10.95%(미납이자)를 정부가 받아 가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는 정치인 말이다. (미국은 3%의 동일한 이자율로 납세자를 모신다.)

돈이 없어 제 때 세금 못 내는 납세자를 환급이자율의 세배로 징벌하겠다는 정치인에게는 표를 던지기가 어려울 것 같다. 무신고자를 제재(무신고 가산세)하는 건 수긍이 가지만 사정이 어려워 세금을 제 때 내지 못하는 딱한 납세자를 징벌적으로 다루겠다는 건 과하기 때문이다.

세제가 고품위가 되려면 그 내용에 엄정과 관용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개선할 아이디어는 현행 세법에도 많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장강(長江)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