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지금은 세금 쓰기 전쟁 중
Ⅰ
나라 곳곳이 난리다. 마치 쌀 떨어진 집에서 ‘밥’ 다투듯 곳간이 빈 정부재원을 놓고 끝없는 이견이 노정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마땅한 방법도 없다. 세금 들어 올 곳은 뻔하고 쓸 곳을 줄여야 하는데 이것마저도 여의치가 못하다. 이미 약속한 것이고, 사연이 있는 지출이라 한발자국도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런 사연과 약속은 ‘요순시절’에 한 것이었고 현실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이를 결정하는 정치권에서는 자기 입장만 강조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급기야 야권에서는 ‘증세’를 본격적으로 들고 나왔다. 무상급식이고, 무상보육이고 이미 약속했거나 시행하고 있는 것을 줄일 수는 없고, 굳이 재원이 모자라면 세금을 더 거둬서라도 시행하자는 주장이다.
이 경기에 증세를 하면 가뜩이나 빈사상태에 처해 있는 경제에 치명타가 가해진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재원대책 없이 정치권이 남발한 복지에는 각자 ‘임전무퇴’의 결기가 가득하다.
단순한 진영논리나 편 가르기 차원에서 다뤄질 문제가 분명 아니지만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복지’는 이미 정상적인 ‘복지정책’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경제의 골든타임을 강조했지만 올해는 세월호에, 복지에 온통 다툼뿐이다. 정말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Ⅱ
갑자기 벌어진 현상이 아니고 이미 전조는 훨씬 전에 나왔다. 그러나 이 일을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표’만 의식했고, 시행을 위한 구체적 재원대책은 소홀히 하면서 알면서도 모르는 척 ‘폭탄 돌리기’를 해왔다.
급기야 세수가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문제가 불거졌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간 극심한 대립으로 이어졌다. 다시 매사 입장이 확연히 다른 여야로 갈리고 국민들 사이에서는 빈부로 확실히 갈렸다. 재원도 재원이지만 비용이 엄청나게 드는 국민 분열이라는 악재로도 이용되고 있다.
이미 상당수 지자체가 ‘복지 디폴트’를 우려하는 상황이다.
무상 복지 공약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시리즈로 대거 등장했다. 초·중·고 무상 급식을 필두로 65세 이상 노인에게 주는 기초연금, 18세 이상 중증장애인에게 지급하는 장애인연금, 만 0~5세 아동들의 유치원·어린이집 학비와 양육수당을 주는 무상 보육, 대학생 반값 등록금 등 5대 무상 복지 예산이 핵심이다.
5대 무상 복지 예산은 올해 24조539억 원으로, 전체 복지 예산 106조원의 22.6%에 달한다. 그나마 순수 사업성 복지 예산 63조 원을 놓고 보면 무려 38.1%를 차지하는 액수다. 실제로 보편적 무상 복지 예산이 대폭 늘어나면서 다른 복지 예산들은 줄어들고 있다.
무상 복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무상 보육 예산이다. 만 0~5세 아동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면 학비를 대주고, 가정에서 만 0~2세 영유아를 돌보면 양육수당을 지급한다. 보육료와 양육수당은 2011년 4조1033억원에서 올해 10조3546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지방비 부담이 매년 커지자 지자체들은 내년도 영유아 보육료 예산을 편성조차 거부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방정부를 가장 옥죄는 게 기초연금이다. 기초연금 예산은 작년 4조2810억원에서 올해 6조9230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매년 65세 노인 수가 급증해 기초연금 예산도 급증한다. 내년에는 10조280억원, 2016년 10조9000억원, 2017년 11조4000억원이 예상된다.
쟁점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도 이제 아이들 밥그릇 문제를 넘어 서고 있다. 무상 급식은 2010년 처음 도입한 뒤 전국으로 확대돼 전국 17개 시도에서 나가는 돈이 올해만 2조6239억 원에 달한다. 지난 5년간 무상급식으로 쓴 돈이 8조9592억원에 달한다.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예산도 작년 2조7750억 원에서 올해 3조4575억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지급 대상자가 기존의 기초수급자에서 소득 2분위까지 확대됐기 때문이다.
모두 명분 있는 일이고 필요한 정책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너무 경쟁적으로 도입됐다. 그것도 별 대책 없이.
Ⅲ
복지는 분명 좋은 것이지만 재원대책 없는 복지는 재앙의 원인이 된다. 무상급식 예산으로 학교의 안전예산이 전용되는 돌려막기 식 복지는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복지는 ‘착한 개념’의 윗자리에 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입만 열면 복지다.
정작 세금 거두는 국세청이나 지방정부는 캄캄하기만 하다. 경기가 바닥권에서 장기적으로 헤어나지 못하는데도, 어영부영 눈치 보는 사이에 세월호 결정타까지 맞았다. 생산이고, 소비고, 부동산이고 엉망이 됐다. 경제 현장에서는 ‘앞이 안 보인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됐는데도 정치권에서는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듣는다.
그렇게 소중한 복지를 제대로 돌리기 위해서는 재원확보가 필수고, 세금 거두려면 경기 살리는 일이 우선인데 세금 쓰는 일에만 골몰하지 정작 세금 마련하는 일에는 관심조차 없다.
당연히 ‘다툼’은 필수가 됐다. 없는 살림에 서로 쓰겠다고 나서니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앞뒤가 없고 시작과 끝이 없는 이 혼란이 언제까지 갈 것인지, 그때까지 국민들은 ‘편안하게 계실는지’ 정말 걱정이다. 큰 틀을 보고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