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칼럼] ‘稅피아’ 증후군

2014-06-05     日刊 NTN

세피아’. 잊혀져가는 자동차 이름이 아니다.

국세공무원 출신으로 퇴직 후 재취업해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요즘 ‘稅피아’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다양한 폐해와 우려를 지적하는 여론이 비등하다. 말 그대로 세월호 파장이 세정가를 강타하고 있다.

해양분야 공무원들이 퇴직한 뒤 해운업계에 둥지를 트는 관행이 이어졌고, 부실과 짬짜미에 전관예우 사례가 드러나면서 이것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자연스럽게 ‘관피아’가 등장했고, 좀 더 세부적으로 ‘해피아’ ‘산피아’ ‘금피아’ 등 마피아식 후렴구의 각종 ‘피아’가 나오더니 결국 ‘세피아’가 급부상했다.

국내 10대 대형 법무법인(로펌)에서 활동하는 경제 부처 고위관료가 180여명에 달하고 있고 이들 중 절반 정도는 국세청과 관세청 등 이른바 ‘세피아’(세무공무원+마피아) 출신으로,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는 내용이 지면을 장식했다.

실제로 이들 대형 법무법인에 재취업한 전직 경제부처 고위공무원의 경우 국세청 출신이 68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금융감독원(37명)과 공정거래위원회(34명), 관세청(19명), 기획재정부(15명) 순으로 나타났다.

대형 법무법인이 이처럼 세무 관료 출신을 선호하는 이유는 기업들이 세무조사로 치명적 타격을 입을 것에 대비해 대응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요가 몰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뒤를 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부정적이었고, ‘우리 사회 곳곳이 썩어있다’고 혀를 차는 분위기다.

세무사 자격을 갖고 있는 국세공무원들은 퇴직 후 자연스럽게 세무사의 길로 들어선다. 이들이 조세전문가인 세무사로 새롭게 출발하면서 마음속으로 다지는 각오이자 염원이 ‘제2의 세무인생’이다. ‘그동안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이제는 납세자 입장에서 일하고, 납세자 권익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출발 일성이다. 물론 과세당국과 납세자간 가교(架橋) 역할을 하겠다는 희망찬 포부도 빼놓지 않는다.

국세공무원으로 재직할 때 그들의 시각은 다분히 국고주의적이었고,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모든 납세자를 잠재적 탈세자’로 보는 일종의 ‘습관’도 몸에 익어 있었다.

실제로 국세공무원이 납세자 입장에서 일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이를 믿는 납세자는 없다. 아니 세금의 속성을 감안한다면 세무서 직원이 납세자 입장에서 베풀고 헤아리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세법은 복잡하고 그 해석은 아주 보수적이다. 여기에다 국세행정의 지향점은 ‘세수’에 고정돼 있고, 운영방향 역시 적극적인 가변성을 띄고 있다. 조세전문가인 세무사조차 잠시 눈을 팔면 세법의 개정과 국세행정의 변화를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다.

글로벌 기업들이 앞장서 우수한 인재를 채용해 ‘세무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세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자 정설이다. 초우량 글로벌 기업들조차 고문세무사, 실무자문 세무사 등 주렁주렁 세무사, 회계사들로 구성된 조세전문가의 조력을 받고 있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세법과 국세행정의 시종일관을 꿰뚫고 있는 조세전문가의 조력 없이는 회사 경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납세기업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실제로 대기업 세무조사 현장에서는 고위직 출신 선배 세무사들이 법무법인이나 세무·회계법인 소속으로 일하면서 후배 조사요원들과 조우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분위기는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쟁점을 두고 불꽃 튀는 공방을 벌이는 경우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선배가 수임한 업체이니 어쩔 수 없이 ‘대충 가겠다’는 현상은 옛날이야기가 됐다. 대형 로펌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는 한 ‘세피아’(?)는 “납세자 입장에서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말하면서 “연봉이 많다고 하지만 단위 시간당 임금으로 따진다면 우리는 짠 편”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을 퇴직한 뒤 세무사로 재취업한 이들을 두고 국민들은 ‘세피아’라 부르며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고, 정작 당사자들은 소중한 납세자 권익을 지켜주는 ‘숭고한 일’을 하는 우리에게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불편해 하고 있다.

이번에 ‘세피아’를 경험하면서 국세공무원 출신 세무사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정당한 노력을 하고 합당한 보수를 받는 것을 두고 밑도 끝도, 근거도 없이 ‘세피아’로 몰아붙이는 현상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세법을 모르거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불이익을 겪는 납세자 편에서 일하는 것을 두고 단지 출신이 국세청이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일은 오히려 권장하고 격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과세권의 남용을 막을 수 있다.

다만, 국세청, 그것도 고위직 출신이라는 권위에 어깨를 세우고, 그 후광을 기대하는 일부 인사들의 풍조나 기대가 남아 있다면 이번 기회에 바로 잡아야 한다. 지금은 많이 희석됐지만 ‘평일 골프장 출입이 가장 많은 자격사는 세무사’라는 말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세법을 뒤지고, 거꾸로 자문까지 받아가며 납세자를 위해 뛰는 국세청 출신 세무사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현직에서 갈고 닦은 지식과 경험은 그대로 납세자에게 약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세피아’는 사라져야겠지만 납세자를 위해 땀 흘리는 많은 세무사들을 ‘세피아’로 모는 풍조는 분명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