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 칼럼] 세수부족과 성실납세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월 20일 기획재정부를 대상으로 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는 올해 발생한 세수부족에 대한 원인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고 한다.
야당은 올해 예상되는 약 60조에 가까운 대규모 세수부족이 법인세 최고세율의 인하 등 이른 바 현정부의 부자감세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한 반면, 정부는 세제개편으로 인한 세수감소는 6조원 가량에 불과하고 세수추계 오차의 주된 원인은 경기둔화에 따른 경제상황 악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지난 9월 ‘2023년 세수 재추계 결과 및 재정 대응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국세수입이 당초 예상액 400조 5000억원에서 59조1000억원이 감소한 341조 4000억원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세수부족의 원인을 작년 4/4분기 이후 올 상반기까지 대내외 경제여건의 급격한 악화로 인해 기업의 영업이익이 급감하면서 법인세수가 당초 예상을 크게 하회했고, 또한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침체로 양도세 등 자산시장 관련 세수도 당초 예상했던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 점 등을 들고 있다.
이에 정부는 경기, 법인이익 및 자산관련 세수 등의 변동선 확대 등에 따른 세수전망 정확도 제고를 위한 다양한 개선방안을 강구하면서 동시에 올해 세수부족사태에도 불구하고 일반회계 등 4조원 내외의 세계잉여금과 외평기금 등 24조원 내외의 기금 여유재원을 활용해 민생 및 경제활력 지원 등 재정사업이 차질 없이 집행될 수 있도록 한다는 대응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세수추계의 정확도를 높이려는 정부의 노력과 세수부족 사태에 대한 임시방편적인 대처방안에도 불구하고, 현재 세계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고금리 등의 영향으로 인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과 경기부진으로 인한 수출과 투자, 소비 등의 위축으로 앞으로도 세수부족사태가 크게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조세국가라고 일컬어지는 현대국가에서 안정적인 재정조달이야말로 국가경영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정부 입장에서 세수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최근 시중에서는 정부가 세수부족을 메꾸기 위해 무리한 세무조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생겨나고 있는 듯한데, 실제로 국세청의 세무조사 건수를 보면 2019년 1만 6008건, 2020년 1만 4190건, 2021년 1만 4454건, 2022년 1만 4174건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다 국세청은 정부의 국정기조에 보폭을 맞춘다는 이유로 내년 세무조사 건수 목표를 역대 최저치인 1만 3600건으로 낮춰 잡았다고 한다.
결국 실제 세무조사 건수만 따져보면 납세자가 체감하는 세무조사에 대한 부담감이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정부도 국민의 정서를 감안해서 강압적인 방식의 세수확보 정책보다는 자발적인 성실납세를 통해 재정건전성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가를 경영하기 위한 재정조달의 수단으로 법에서 정한대로 세금을 징수할 수밖에 없지만,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왜 세금을 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성실한 납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고 생각되거나, 형편이 좋을 때 많은 세금을 내고도 정작 본인이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국가로부터 제대로 구제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가능하면 세금을 내지 않거나 적게 내려고 할 것이다.
미국의 대법관이자 사상가였던 올리버 홈즈(Oliver Wendell Holmes) 법관은 “세금은 문명사회에 대한 대가(Taxes are what we pay for civilized society)”라는 멋진 말을 남겼지만, 현실 사회에서 세금을 기꺼이 내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는 의문이다.
마침 지난 9월 국세청은 납세자의 세금포인트 사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국립생태원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등과의 업무협약 체결과 더불어, 기존의 세금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온라인 할인쇼핑몰 외에 오프라인 매장까지 사용처를 확대하기 위해 중소기업유통센터와도 업무협약을 추가로 체결했다고 밝혔는데, 국세청은 이런 업무협약들을 통해 실생활에 밀접한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성실납세 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세금포인트 사용처를 다양화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참고로 국세청이 시행하고 있는 세금포인트제도는 성실납세를 유도하고 세금납부에 대한 자긍심 고취를 위해 2004년에 도입됐는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송언석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22년까지 국세청이 개인 및 법인납세자 3746만명에게 부여한 세금포인트 95억4000만점 중 실제로 사용한 포인트는 6600만점으로 사용률이 0.6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서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납세자가 사용하지 못하고 보유하고 있는 세금포인트는 94억7400만점이며 이를 화폐 가치로 환산해 보면 무려 9조474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세금포인트 사용처를 확대하는 국세청의 업무협약으로 세금포인트 사용이 조금은 활성화되겠지만, 전체 누적 세금포인트를 감안한면 좀 더 적극적인 세금포인트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조치를 통해 성실납세에 대한 혜택이 납세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실납세의 제고를 위한 제도에는 국세청의 세금포인트제도 외에도 모범납세자제도가 있는데, 모범납세자란 납세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서 성숙한 납세문화를 조성하고, 납세를 통해 국가재정에 크게 기여하는 등 타의 모범이 되는 자로 매년 납세자의 날에 포상 또는 표창을 수여받은 자를 말한다.
이런 모범납세자에게는 훈격에 따라 세무조사 유예 및 순환조사 대상 법인조사 시기 선택, 납세담보 제공 면제, 모범납세자 전용창구 이용, 국세공무원교육원 시설 이용 등 세정상 우대 혜택과 철도운임할인, 무역보험료 할인 및 가입한도 우대, 공항 출입국 우대, 공영주차장 무료 이용, 물품이나 용역 등 구매적격 심사 시 가점부여 등 사회적 우대혜택이 주어진다.
일반적으로 조세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등 공권력을 가진 단체가 재정조달의 목적으로 그의 과세권력에 의해 법률에 규정된 과세요건을 충족한 모든 사람에 대해 특별한 반대급부 없이 강제적으로 부과징수하는 금전급부”라고 정의되는 것처럼, 과세요건을 충족하는 납세자는 선택의 여지없이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조세를 회피하거나 탈세를 하려는 것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나 과세형평성에 대한 불만 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사례는 아니지만 놀랍게도 세금을 더 많이 내게 해달라고 하는 부자들도 있다고 하는데, 2023년 1월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스스로를 ‘애국적 백만장자들(Patriotic Millionaires)’이라고 일컫는 월트디즈니 가문의 상속녀 애비게일 디즈니나 마블 영화 속 ‘헐크’ 역할을 맡은 배우 마크 러펄로 등 전 세계 부자 205명이 세계경제포럼(WEF, 일명 “다보스포럼”)에 모인 각국 지도자들에게 자신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서 극심한 부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게 부유세 도입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워런 버핏(Warren Buffett) 버크셔 헤더웨이 회장도 2010년 부시 미국 대통령의 감세 연장안에 반대하면서 저소득층이나 중산층에게는 세금을 감면하고 자신과 같은 고소득층은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세수부족시대에 직면한 우리나라도 성실한 납세자를 우대해서 자발적인 납세를 이끌어냄으로써 실질적인 과세 공평성을 실현하면서도 지속적인 세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
• 현) 세무회계 조이 대표세무사
• 현)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 법무서비스지원단 전문위원
• 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교우회 회장
• 전) 한국세무사고시회 회장
• 국립세무대학 내국세학과 졸업
•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 호주 시드니대학교 로스쿨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