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위기의 세무사’ ⓷비판? 용납 못해…‘자유게시판’ 폐쇄로 ‘불통’
- 유일 소통창구 없애 회원과 단절…건전한 비판·토론과 대안 제시 실종 - “‘회장과의 대화방’서 직접 의견 수렴”?…2년간 답변 없이 ‘접수’ 상태 - “국민과 직접소통 대통령되겠다”며 ‘국민청원’ 폐지한 윤석열 정부 닮은 꼴
# 지난 6월 23일 윤석열 대통령실은 문재인 정부가 운영해온 대국민 온라인 소통창구인 청와대 ‘국민청원’을 폐지하고 ‘국민제안’을 새로 개설했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윤 대통령 의지를 반영한 대국민 소통 창구”라는 소개와 함께. 출범 1개월여 만이다.
기존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건 이상 동의 건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답변해 대다수 민원이 답변을 받지 못한 채 사장됐다”고 폐지 이유를 설명했다. 완전 실명제와 ‘비공개’로 운영한다.
# 2020년 6월 10일 한국세무사회는 홈페이지의 회원 ‘자유게시판’을 폐지하고, ‘회장과의 대화방’으로 대체했다.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 “본래 취지와 다르게 회원 화합과 단합을 해치기 때문”이라고 폐지 이유를 밝혔다.
원경희 회장이 ‘대화방’을 통해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과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회원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화방은 ‘비공개’로 운영된다.
윤석열 대통령실과 세무사회 원경희 집행부가 ‘국민청원’과 ‘자유게시판’을 폐지한 이유 및 운영방식이 판박이처럼 닮은꼴이다. 국민, 회원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명분으로 ‘비공개’를 고수하는 점도 똑같다.
그런데 한국세무사회와 회장은 과연 회원과 직접 소통을 하고 있을까? 자유게시판 폐지 이후 개편된 정보교류게시판-‘회장과의 대화방’을 이용한 세무사 회원들의 이용 후기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반응 일색이다. 듣기 좋은 말만 듣고, 불편한 내용은 ‘패싱’한다는 것이다.
회원 간 정보교류는 원천 차단되고, 집행부 비판을 철저히 차단하는, ‘불통’ 구조라는 비판이 거세다. 소통을 위해 ‘자유게시판’을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 지역 한 회원은 “자유게시판 폐지 석 달 뒤인 2020년 9월 건의사항을 ‘회장과의 대화방’에 올렸는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 없이 ‘접수’ 상태로 방치돼 있다”고 했다. “회원 건의를 이렇게 방치해 놓고 무시하는 게 ‘직접 소통’인지 되묻고 싶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이후에도 몇 건을 더 올렸는데 마찬가지로 ‘접수중’”이라며 “자유게시판을 폐쇄하고 세무사회장 혼자 1만4천여 회원과 직접 상대하며 소통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수였음이 드러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회장과의 대화방은 당사자 외에는 볼 수 없는 구조여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상당수 게시 글이 이렇게 방치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비판이나 듣기 거북한 글은 무시하고 답변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회장과 집행부의 권위적 사고에서 비롯됐다고 그는 지적한다. “답변을 못 듣고 무시당해도 이런 사실을 글 올린 당사자 외에 여타 회원들은 몰라 집행부가 여론화를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회장과의 대화방’ 뿐 아니라 세무사 전용의 분야별 게시판·건의방도 비공개 등 폐쇄적 방식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회원과 집행부 간, 회원 간 원활한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불통’의 구조라고 많은 회원들은 지적한다.
복수의 세무사들이 전하는 한국세무사회의 세무사전용 정보교류게시판은 ‘회장과의 대화방’ ‘세정세법게시판’ ‘세법개정건의함’ ‘회무개선건의방’ ‘세무사랑Pro게시판’ ‘회원공유자료실’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세무사들이 회 업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공간인 ‘회장과의 대화방’과 ‘회무개선건의방’은 철저한 비공개다. 특정 회원이 올린 글을 다른 회원이 볼 수 없어 공유가 불가능한 구조라는 것이다.
경기 성남의 한 회원은 “‘회무개선건의방’에서 중요 현안 처리와 관련한 집행부의 대응에 대해 질의하고 답변을 듣긴 했지만, 개운하지 않았다”며 “삼쩜삼 같은 세무사 장래가 걸린 문제에 관한 의견이 다른 회원들과 전혀 공유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마포의 세무사도 “주요 이슈에 대해서는 회원 간 토론으로 대안을 찾고, 그것을 집행부에 건의도 하는 통로가 있어야 한다”면서 “글을 올리고도 나만 위기감을 느끼는지, 다른 회원들 생각은 어떤지, 세무사회 처리에 공감하는지 등을 전혀 알 수 없어 답답하다”며 게시판 구조와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글이 타 회원들과 공유되지 않는 구조라는 걸 알아차린 일부 회원들이 댓글을 달 수 있는 ‘세정세법게시판’ ‘세법개정건의함’에 올리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성격이 다른 범주여서 공론화에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역삼동의 한 회원은 “상명하복이 강조되는 국세청과 감사원 등 국가기관조차 내부 인트라넷 자유게시판을, 그것도 익명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세무사회가 회원들의 비판적 여론을 수렴할 생각을 않고 유일 소통공간을 폐쇄한 것은 회원 무시의 독선적이고 오만한 행태”라고 비난하며 자유게시판 복원을 요구했다.
국세청·감사원 등 ‘익명게시판’서 자유롭게 의견 표명…소통의 장 자리매김
“집행부 포장 정보 일방적 전달의 소통부재 구도로는 세무사회 발전 없어”
실제 자유게시판을 없애버린 한국세무사회와 달리 국세청과 감사원 등은 ‘익명’으로 운영되는 자유게시판을 운영하며 직원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보장하고 있다.
국세청은 인사상 불이익 없도록 익명으로 마음껏 의견을 내놓는 환경을 만들고 게재된 불만 사항은 주관 부서에서 검토해 개선하는 익명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이 게시판은 전직원 소통의 장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실명제’로 운영하던 2009년 태광실업 세무조사와 관련한 정치적 이슈의 글이 게재돼 한때 폐지론이 일기도 했으나 소통확대 측면에서 오히려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도록 개선했다.
감사원 역시 내부망 ‘오아시스’에 감사원 내부 문제 등을 직원들이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익명게시판 ‘감나무숲’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지난 6월15일 취임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의 조직운영 방향 등을 비판하는 글이 자주 올라왔고, 8월 하순 유 총장이 ‘명예훼손성 내용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할 수 있다’는 취지의 공지까지 한 것으로 보도되는 상황이다. 공무원 조직임에도 자유로운 의견개진이 보장되고 있는 현장이다.
보수적인 국세청과 감사원 등이 이렇게 ‘익명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는데, 정작 전문자격사 개개인의 의사표현이 자유롭게 보장돼야 할 한국세무사회는 이런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그나마 있던 ‘자유게시판’을 폐쇄해 언로를 막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포장된 정보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불통 구도가 집행부에 당장은 편할지 모르겠지만 세무사와 한국세무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어리석은 행태”라는 한 회원의 지적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